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관한 고찰⑧
여호사밧
-윌리암 로저스-
거룩한 성경기자들이, 히스기야를 제외한, 다른 모든 유다 왕의 통치기간보다 여호사밧의 25년간의 통치에 관하여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여호사밧의 통치기간이 이스라엘의 역사(歷史) 가운데서 대단히 흥미로운 위치를 점유(占有)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에 관한 모든 기록 중에서도 가장 괄목할 만한 특징은 하나님과 그 집을 떠나 있던 북쪽지파들에 대하여 여호사밧의 태도가 변했다는 점이며, 이것은 그의 통치기간 중 9년째 혹은 10년째 되는 해에 일어났습니다. 이 변화가 얼마나 급진적으로 일어났었는지는 역대하 17장 초반부와 그 다음 장(章)을 비교해 봄으로써 잘 알 수 있습니다.
역대하 17:1에 그의 통치에 관하여 첫 언급이 나와 있는데 그것은, 그가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그가 초기에 하나님을 위해 취했던 입장에 대한 결과가 나와있습니다: “저가 부귀와 영광이 극(極)하였더라.” 그런데 18:1에 가면 반복되어있는 이 표현 위에 “아합으로 더불어 연혼(連婚)하였더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그의 초기의 충성으로 말미암아 받은 상급이 나중에 가서는 이 초기의 길을 떠나게 한 원인이자, 19:2에서 선지자 예후가 그의 행동을 탄핵할 때 그의 친구들에 관하여 묘사한대로, 그가 “악한 자”와 및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와 동맹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부왕(父王) 아사는 자기를 책망하는 예후의 부친 하나니를 옥에 가두었습니다(16:7~10). 그러나 비록 자기 부왕과 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예후의 말을 경청하기는 했을지라도 여호사밧은 그 새로운 노선을 전적으로 따르기 시작했으며, 자기 자신이 아합과 아하시야와 여호람과 더불어 동맹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왕위를 이은 두 아들도 이스라엘과 동맹토록 함으로써 점점 더 그 속으로 빠져 들어 갔던 것입니다(20:35~37, 왕하 3:6~27). 그로 하여금 이와 같은 동맹을 더욱 거부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은 이 동맹들의 초기에 그의 아들 여호람이 아합의 딸 아달랴와 혼인한 것이었는데(21:6), 앞장에서 제시한대로 여호사밧은 이 연합을 통해 두 나라를 재결속 시키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그 악한 여자의 계교로 말미암아 다윗의 왕족을 하마터면 멸절시킬뻔 했습니다(22:10~ 12).
잘 알려진 바대로 고린도후서 6:14~l8 에 제시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는 권면 속에 이와 같은 멍에의 종류가 무엇인지가, 이 명령 뒤에 이어진 다섯 가지 질문 속에 사용된 여러 종류의 용어에 의해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신중히 공부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경제생활과 정치생활과 사회생활, 결혼, 종교에 관하여 시사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며, 우리가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여호사밧의 동맹들이 이 모든 다섯 가지의 생활영역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미 언급한대로 젊은이들의 결혼이 있었습니다. 역대하 18:2에 묘사된 사교상 방문은 그 결혼과 분명한 연관이 있었으며, 이런 과정에서 “저와 종자를 위하여 우양을 많이 잡았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라못 길르앗을 수리아 사람들에게서 취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왕상 22:3) 이 원정 속에는 종교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라못은 아합이 말한대로 이스라엘의 성읍이었을 뿐만 아니라 레위 족속의 성읍이자 살인자의 도피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중에서도 후자는 살인자 아합이 전쟁하다가 그 성문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흥미롭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아들 여호람과 및 에돔 족속과 연합하여 또 다른 전쟁을 하였으며, 그들은 이 전쟁으로 하마터면 모두 멸망 당할 뻔했습니다(왕하 3:6~l3). 그런데 이 전쟁은 종교적인 동기로 치뤄졌다는 어설픈 변명조차 할 수 없는, 순전히 정치적인 전쟁이었으며, 그 목적은 모압의 증대하는 세력을 분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모험적 사업이 있었는데 그는 이 모험에서 아합의 장자인 아하시야와 제휴했으며, 이도 역시 재난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대하 20:35~37).
여호사밧은 통치 초기에는 이 모든 읽힘에서 자신을 지켜 깨끗하게 했으며, 분리된 길을 걸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다윗 및 다른 왕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의 “처음 길”은 가장 좋았었지만 그가 넓은 마음으로(?)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라”는 말을 반복하기를 배우게 되었을 때(왕상 22:4과 왕하 3:7을 비교)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과 자기 백성들에게 전혀 불필요한 어려움들을 수없이 초래하는 장본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고린도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경로를 걸었으며, 그러기에 우리는 고린도전서 10장과 고린도후서 6장의 경고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경고들은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 -다음 호에 계속-
(1991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