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6)
어거스트 반린
빌라델비아교회에 보내는 편지(2)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열린 문!”그 열린 문은 “누구든지 들어가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요
만일 어떤 은행금고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려있고 아무나 들어가서 그 안에 쌓인 돈무더기를 마음껏 가져가도록 초청된다면 얼마나 큰 아우성 소리가 나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부요를 취하라는 초청을 받고, 이 가련한 세상이 내세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축복으로 인도하는 이 열린문을 이용하는 사람은 얼마나 적은지요. “나는 네 행위를 안다”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뒤에는 사데나 라오디게아의 경우와 달리 아무런 책망도 없습니다. 그분은 비록 다른 이들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충성된 신자가 그분을 위해 행하고 있는 것을 아십니다. 그분은 성공을 그 외적인 결과로 평가하시지 않고 그분에 대한 충성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평가하십니다.
“적은 능력”은 자의식적인 연약함을 의미합니다. 사실 문을 열 만큼의 충분한 능력이 없었으며 따라서 그분께서 그 문을 여시고는 아무도 닫지 못한다고 경계하셨습니다. 적은 능력은 열린 문을 통해서 들어가 하나님 안에 있는 자원들을 취함으로써 큰 능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열린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는 한가지 이유는 자비를 얻고 곤란한 때에 도움을 줄 은혜를 발견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하다고 고백했는데 이는 신자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을 때 그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능력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보다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는 그분의 말씀을 지키기에 적합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모든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 데로 행하는 이 세상에서 진리를 고수하는 데는 하나님의 모든 능력이 필요함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조차도 종종 “주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에 대해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지요? 진실된 신자들조차도 종종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의해서보다 그들이 생각하거나 기대하는 바에 의해 그들의 행위를 결정짓곤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는 데에는 인내가 요구됩니다.
“그분의 이름.” 우리는 죄인으로서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 그 이름을 시인합니다(행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많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참된 교회(Church)는 밖으로 불리움을 받은 모임(에클레시아)인데 비해 여기에 나오는 교회는 한데 모인 집단입니다. 제 생각에 로마카톨릭은 하나의 조직으로서 이 “사단의 회”에 대한 최상의 표현입니다. 그것은 참 것, 즉 그리스도 안의 참 신자들로 구성된 참 교회를 본뜬 사단의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언젠가 참 신부가 주님 곁에 있게 될 때 이 모조품은 그분 발 아래 엎드려야 할 것입니다.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교회는 종종 고난받는 교회였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사단은 핍박과 모방을 통해서 그들을 괴롭혀왔으며 헤아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영원한 파멸로 이끄는 길로 유인해왔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임을 당한 것을 아십니다. 그분만이 얼마나 많은 모욕과 경멸과 비방이 그분의 소유이며 그분과 그분의 말씀에 충성한 자들의 분깃이었는지를 아십니다. 우리 구주께서 말씀하셨듯이 그들은 실로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구속받은 자들을 핍박한 모든 자들을 포함한 사단의 추종자들은 그분의 발 아래뿐 아니라 그분의 산부의 발 아래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 신부가, 오빌의 금으로 장식된 옷을 입은 왕후가 그분과 함께 다스리기 위해 올 때 우리의 복스런 주님께서 그리스도를 거절한 모든 자들을 그녀의 발아래 엎드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녀가 자신이 사랑한 자이며 위해서 깊은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준 자인 것을 그들로 알게 하실 것입니다. 사단은 그분의 발 아래뿐 아니라 우리의 발 아래서도 상함을 당할 것입니다(롬
그 때에 그분께서, 비록 오랜 세월 동안 극한 고통을 당하게 허락하셨지만, 교회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입니다. 그 때에 교회의 슬픔이 기쁨으로 변할 것이며 그 때에 교회는 자신의 눈물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며, 그 때에 교회는 자신의 당한 모든 슬픔과 고통과 수치(이 땅에서는 종종 매우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여겨지던)의 “이유”를 알게 될 것이며, 그 때에 영광이 모든 상처자국을 영원히 지워버릴 것입니다. 그 위대한 대관식 날을 대망하십시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여기에 오늘날 신자가 장차 온 세상에 임할 두려운 환난의 때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라는 영광스런 약속이 있습니다. 이 우주적인 파멸의 때는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말씀인데 이는 교회는 땅에 거하는 자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신자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행인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은 계시록에서 10회 가량 발견되는데 모든 경우에 그것은 배도자들, 즉
신자는 환난의 때로부터(from) 보호받을 뿐 아니라 거기에서 나와서(out of) 보호받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그 환난이 임할 때 전혀 이 땅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유인즉, 교회는 장차올 주님을, 그분의 백성을 “장래 노하심”에서 구원하실(살전
교회는 본 절이 보여주듯이 환난을 통과하지 않을 것인데, 이 사실은 다른 많은 성경구절들에 의해 지지를 받습니다. 그 모든 구절들이 한결같이 동일한 복스런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에녹과 같이 교회는 노아시대에 발생한 바, 홍수-두려운 심판의 대홍수-가 이 세상을 휩쓸기 전에 영광 가운데로 끌어올려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자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날에는 이 세상에 없게 될 것입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일곱 교회 가운데 주님의 속히 오심이 그분의 백성에 대한 격려로 제시된 유일한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에게는 그것이 경고로 주어져 있으며 버가모 교회에도 다가올 심판에 대한 경고로 주어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이 보배로운 위로의 말씀을 세번씩이나 거듭해서 사용하며 그분의 백성에게 자신이 속히 올 것을 확증해 주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곧(soon)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속히(quickly)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그분의 오심의 시기가 아니라 그 방법을 가리킨 표현입니다. 그것은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분께서 오실 것이냐를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오래 참으심과 속히 오심은 표면상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분의 오심의 시간이 차기만 하면 그분은 다른 시간으로 미루지 않으실 것이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곳에 있기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자신과 함께 영광 중에 있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현재의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음”의 나라입니다(
여기서 그분은 이 복스런 소망으로 그분의 사랑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격려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언제, 어느 순간에라도 오실 수 있다는 약속을 우리의 영혼 앞에 항상 선명하게 밝혀놓아야 합니다. 그날을 바라보며 우리는 주인이 오기를 깨어 기다리는 충성된 종들처럼 되어야 합니다. ♠
(199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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