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상태에 대하여(1)
1. 육체(flesh)와 몸(body)의 차이점
“육체와 ‘몸’이란 용어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몸의 구속’은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만일 질문자가, 예컨대 사용된 문맥에 따른 어휘의 다양한 의미를 소개해주는 바인(Vine)의 주해사전과 같은 훌륭한 헬라어 신약성경 사전을 참조해 본다면, 짧은 지면을 통해 해답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영(Young)이나 위그램(Wigram)의 성구사전을 이용하여 각 단어의 모든 용례를 살펴보는 것이 아마도 다른 어떤 정형화된 답변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어떤 대목에 사용되어 있듯이, 이 두 단어 사이에는 거의, 혹은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반면에 어떤 대목에는 그 둘 사이에 분명한 구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후서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취할 경우 “몸”은 조직된 전체로서 본, 인간의 물리적인, 혹은 물질적인 부분이며(살전
때때로 이 두 단어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상태로든 성향으로든 악(惡)의 개념이 암시되어 있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육체”안에 라는 표현은 로마서
아울러 “육체”라는 표현에는 때때로 “악한 성향”의 의미가 내포될 수 있는데 특히 “육체를 좇아”등과 같은 문구에서 그러합니다. 반면에 “몸”은 “죄의 몸”(롬
몸은 종종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으며(롬 12:1등) 몸의 지체 역시 그러합니다(롬
2. 모세의 몸에 대하여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몸(시체)에 대하여 사단과 더불어 변론했다는 기록은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지요?”
우리는
만일 오늘날 모세의 묘를 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빈 채로 발견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혹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고전 15장)와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로 불리우는데 어떻게 모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할 수 있었겠는가? 라고 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실 때까지는 어떤 사람도 진정한 부활(다시는 죽음을 맛보지 않는)의 기초 위에서 부활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모세가 부활했다면, 그것은, 사렙다 과부의 아들과 수넴 여인의 아들, 나사로, 나인 성의 과부의 아들 등, 우리 주님의 부활에 앞서 부활한 신구약성경의 여러 경우들과 같이 다시 죽음을 맛보아야 하는 불완전한 부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결국 다시 죽음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유다서에 기록된 사건은 지상적인 수준에서의 모세의 부활을 가리킨다고 생각됩니다. 만일 그가 증인들 중 하나라면 그는 다시 죽을 것입니다. 진정한 부활 후에는 아무도 육체적으로 죽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산 위에 펼쳐진 장면에 추가적인 완전함을 더해 줍니다. 주님께서 가운데 계셨고, 그 옆에 결코 죽음을 통과하지 않을 사람들을 대표하는 엘리야와 부활한 자 모세가 있었습니다.
사단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모세의 불완전한 부활에 대해서는 합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으나, 모세가 일시적으로 죽음의 상태에서 벗어난데 대해서는 아무런 합법 적인 이의도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증인들 중 하나라면 그의 죽음은 진정한 죽음일 것입니다.
3. 인간의 구성요소에 대하여
“인간은 속성상 이중적입니까, 아니면 삼중적입니까? 만일 후자라면 영과 혼은 어떻게 구분됩니까?”
데살로니가전서
고(故) 불링거(Bullinger) 박사는 인간이 이중적인 존재 -영과, 혼을 구성하는 몸의 결합체-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것은 지지할만한 견해가 못됩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다면 위의 표현은 영과 몸, 즉 혼의 순서가 될 것이며, 그리고 죽음시에 인간의 실체(personality)는 해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후자는 이른바 “영혼의 수면”이란 교리보다 훨씬 해로운 교리입니다. 영과 혼은 인간의 정신적인 측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때로는 영으로, 때로는 혼으로 불리웁니다. 그 둘은 구분되는 것이긴 하나 “혼과 영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히
영은 고차원적인 부분으로 그것으로 인간은 이해하며(고전
혼은 원하고 사랑하고 슬퍼하는 등등의 기능을 합니다. “내 혼(우리말 성경에는 “영혼”으로 되어 있음-역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시 42:6; 삼상
인간의 실체(personaity)는 때때로 혼과 연결되기도 하며(예를 들어,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혼이라”(우리말 성경에는 “여덟 명”으로 되어 있음-역주) - 벧전
4. 중간상태에 대하여
“만일 우리가 죽는 그 순간 우리 주님의 품으로 들어간다면 실제 몸으로(bodily) 들어가는 것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몸으로 들어갈까요? 만일 이러한 즉각적인 들어감이 사실이라면 부활이란 과정이 불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것을 데살로니가전서
확실히 성경은 죽는 그 순간 신자가 그리스도의 임재 안으로 “실제 몸으로” 들어간다고 가르치지 않으며, 사도바울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라고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빌
그러나 그는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덧붙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은 “육신”에 거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실제 몸”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은 무덤 속에 놓인 채 부활을 기다리며 잠자는 것입니다.
이어서 고린도후서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8절).
데살로니가전서
고린도후서
(199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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