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만찬에 대하여
“꼭 떡이나 잔에 대해 사례한 형제가 어디에 앉았든 간에 앞에 나와서 그 상징물들을 직접 건네주어야 할까요?”
제가 알기에 이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성경구절은 고린도전서
만찬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거나 성도들 한 가운데 앉아있는 형제가 상징물을 취하기 위해 무리를 헤치고 나온다는 것은 위의 지침에 맞지 않는 듯 합니다. “질서대로”(in order)라는 표현은, 그런 상황에서는 편리한 위치에 있는, 그리고 동료 성도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형제가 대신 나와서 상징물을 취할 수 있다는 의미를 시사해 줍니다.
“사도행전과 그밖에 여러 곳에 ‘떡을 떼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어느 것이 주의 만찬을 가리키고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은지 구분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 두가지 이유 중 어느 하나나 둘 모두에 기인합니다. 첫째로, 유대인의 일반적인 식사 방법에 따르면 으레 떡을 편리한대로 여러 조각으로 떼어놓고 식사를 시작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떡을 떼었다”는 말은 단순히 그가 식사를 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사도시대에 주의 만찬은 종종 성도들이 함께 교제하며 나누던 식사와 연관이 있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따라서 “떡을 떼다”는 말이 음식을 먹는 것과 관련되어 있을 때는 주의 만찬을 의미하는지 일상적인 식사를 의미하는지 의문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사도행전 27:35과, 주님께서 허기진 무리를 먹이시기 위해 떡을 떼신 것을 기록한 복음서의 구절들은 물론 의식에 대한 암시가 일절 없습니다. 저는 여기에 누가복음
위 경우의 반대편에 우리는 사도행전
사도행전
“둘 이상의 잔을 사용하는 것은 비성경적이 아닐까요?”
비록 잔의 일체성이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한 몸을 상징하는 백의 일체성(고전 10장)과 같이 성경에 명시되어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항상 “그 잔”(the cup)-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독특한 용기(容器)-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떡의 경우에도 참석한 각 사람에 의해 떼어짐으로 떡의 외적인 일체성은 보존되지 않습니다. 물론, 떡에 대해 감사한 형제가 그것을 떼어 편의상 여러 그릇에 나누기 전에 그것은 한 떡이므로 몸의 일체성에 대한 상징적 의미는 전혀 훼손되지 않습니다.
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잔도 원래 한 용기에서 편의상 여러 잔으로 부어지므로 여전히 “한 잔”입니다. 그러나 소위 각각의 “참여자”를 위한 “각 잔”이란 것이 도입되어 용기 자체가 많아질 때는 잔의 일체성이 완전히 상실되고 교제의 개념이 방해를 받습니다. 따라서 만찬예식을 실행할 때는 편의상 둘 이상의 잔을 준비하더라도 포도주를 하나의 용기에 담아둠으로써 “그 잔”-그리스도의 피 -에 참여하는 의미를 살려야 할 것입니다. - W. H.
“지역 교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은 신자들의 무리가 주님을 기억하기 위해 주의 첫째날에 함께 모이는 것은 성경적일까요?”
이 점에 대해서 제가 깨달은 바로는 주의 만찬은 “우선적으로” 지역 교회의 예식으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 때마다(자주)”란 표현(고전
“주의 만찬은 장래 일의 그림자일까요? 다시 말해서, 그것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참예할 주님의 천상 잔치를 예표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현재에 국한시킵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99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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