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나(3)
W.W. 페러데이
넘어진 자에게 주어진 은혜
“넘어진 자들에게 주님은
얼마나 인자하신지
구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얼마나 선하신지.”
위의 시는 확실히 사실이며, 우리는 종종 진정한 기쁨으로 그렇게 노래합니다. 그에 대한 증거는 신구약 성경 모두에서 발견됩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의 위협을 두려워하여 제 위치에서 피신했을 때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를 위해 불과 조반을 준비했습니다(왕상 19장). 그가 순종의 길을 걷는 동안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릿 시냇가에서는 까마귀들이 그것도 상당 기간 그의 필요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과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천사의 특별한 섬김을 받았습니다. 이 하늘로부터 온 사자는 그가 먹고 마시고 잠자는 동안 그의 곁에 머물러 있다가 다시 한번 그에게 먹을 것을 권하면서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고 부드럽게 일러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사역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잊지 않으셨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이 도피중인 선지자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신약으로 와서, 베드로가 몹시 마음 아프게도(엄숙한 경고를 들은 후에) 주님을 부인했을 때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고 누가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눅 22:61). 그 부드러운 눈길이 그의 마음을 부서뜨렸으며 이에 “베드로는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한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기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하라”고 했습니다(막
요나는 물고기 속에 갇혔을 때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 났다”고 말했습니다(욘
“내가 경겁한 중에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오, “하였사오나”라는 소중한 표현을 보십시오! 아무리 그들이 큰 죄를 범할지라도 그분의 성도들을 버리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분은 그들이 부르짖을 때는 언제든지 그 간구소리를 기꺼이 들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겁한 중에(서둘러) 아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한 고백은 현명치 못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거룩한 산에서 “자기의 하는 말을 알지 못한 채” 말했습니다(눅
오순절 후에, 하나님의 교회가 태어나고 성령께서 그 가운데 계셨을 때,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함이 역사상 유례를 볼 수 없이 놀랍게 선포되었을 때, 바울은 고린도의 형제들에게 심각한 죄로 인해 부득불 쫓아내야 했던 사람을 찾아가서 용서와 위로를 베풀라고 권면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악에 대해 부주의하고 무관심했으나 바울의 책망을 들은 후에는 그 사람을 치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뉘우쳤으며 이제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기게” 해서는 안되었습니다(고후
요나는 낮춰지고 유순해진 상태로 깊은 물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사실이 후에(4장) 드러난 것으로 보아 그는 마음이 “부서졌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분의 뜻을 거스려 높아진 자들을 능히 낮추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으며, 아울러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요나는 그 글이 우리에게 전해진 초기 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짧은 책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문제된 백성뿐만 아니라 그들에 게 보내시는 그분의 사자들도 징벌하시되 오직 그들의 축복을 바라는 풍부한 자비가운데 징벌하신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모쪼록 이 복음 시대의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분 앞에서 겸손히 행하되 불순종의 삶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그릇되이 나타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다른 이들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먼저 스스로 순종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그의 아들에게 할례 행하는 것을 소홀히 한 까닭에 여호와의 엄히 다루심을 맛보았습니다(출
주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 귀 기울입시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알리라”(요
두번째 명령
우리는 그 큰 물고기가 요나가 그 속에 갇혀있던 그 밤낮 사흘 동안 조용히 있었다고 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이동했든 간에 창조주의 눈길이 그 위에 있었으며 그 물고기는 여호와께서 그가 가기 원하시는 바로 그곳에 선지자를 토해 내도록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물고기는 그를 이탈리아나 그리이스로 데려갔을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이스라엘 땅을 밟도록 했을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가장 겸손한 피조물의 순종은 매우 교훈적입니다. 주 예수님은 한 세겔을 소유한 물고기를 원하셨으며 다른 물고기가 아닌 바로 그 물고기가 베드로의 낚시에 걸렸습니다(마
다시 한번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교훈입니다. 사도는 자신의 거취이동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찬양을 발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아브라함의 종 역시 우리에게 아름다운 본을 보여줍니다(창 24장). 그는 그의 주인의 아들을 위한 신부를 구하러 기도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찾던 사람을 발견하자 그는 머리 숙여 여호와께 경배드리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유일한 온전한 종이자 사자는 주 예수님이었습니다. 근심 중에 있던 두 자매가 베다니에서 사람을 보내어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아뢰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셨다”고 복음서 기자는 기록했습니다. 왜 지체하셨을까요? 아버지께로부터 아직 말씀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말씀이 임하자 유대에서 환란이 기다린다는 제자들의 경고도 그분을 만류하지 못했습니다(요 11장).
“여호와의 말씀대로” 니느웨로 떠났을 때 요나의 마음에는 자신의 임무가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 다소 불안했을 것입니다. 요나의 새로운 임무는 모호했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는 명령이 주어졌었습니다. 그것은 그 후에 심판이 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순전히 심판을 통고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임무에는 그런 뜻이 암시되지 않았으며, 니느웨에 도착하자 요나는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치라는 명령을 들었습니다(
(199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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