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올바른 해석(13)
죤 필립스
서로 다른 것들
성경해석의 기초 공식은 하나님께서 다르게 해 놓으신 것은 우리도 항상 다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사성이 항상 동일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대인과 이방인과 하나님의 교회”에서 시작해보자.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세 범주로, 즉 유대인과 이방인과 하나님의 교회로 나누셨다(고전
그리스도인은 로마서 8장에서 다루어져 있고 로마서 9장, 10장, 11장은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지금도 성령에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유대인과 하나님의 목적과의 관련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 로마서 9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루셨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유대인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열쇠를 찾아낸다. 로마서 10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현재 다루고 계심을 보면서 이 시대에 유대인을 다루시는 원리가 하나님의 구원임을 본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아무런 “····구별이 없으며 모두에게나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을 근거로 구원이 주어진다.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을 논하면서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열쇠가 있음을 발견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맹세하신 말씀을 지키실 것이다(저자의 “로마서 연구”<Exploring Romans, 무디 출판사> 참조).
로마서 11장을 이해하려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주제임을 먼저 알아야 한다. 바울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라고 쓰고 있다(롬
로마서 11장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그 종교적 특권의 위치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이제 이 특권이 이스라엘이 버린 은혜를 얻게 된 이방인에게로 넘어왔다. 오늘날 이방인(돌감람나무로 비유됨)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종교적 특권의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졌고 원래의 가지(유대인)는 꺾여버렸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감람나무의 뿌리는 아브라함이다. 나무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다. 원 가지는 뿌리의 영양분에 처음으로 참여케 된 유대인이다. 이 유대인이 현 시대엔 꺾이우고 이방인이 접붙여졌다. 그러나 교회의 휴거 후 유대인이 다시 종교적 특권의 자리에 복귀 할 것이며, 천년왕국시대 동안 축복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갈 것이다.
우리 시대에 이방인은 감람나무 뿌리로 접붙여졌다. 그러나 이방인이 아브라함의 영적인 축복 속으로 들어오기 위해 유대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갈라디아인의 실수였다. 또 이방인이 유대인에 속하게 되지도 않는다. 이방인은 계속 이방인이다. 그러나 이방인이 과거에 유대인이 차지했던 특권적 위치를 차지한다.
신약성경은 이것을 쉽게 이해하도록 두 개의 표현을 쓴다. 하나는 “이방인의 때”(눅
“이방인의 때”는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열방을 지배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스라엘이 이 주도권을 빼앗긴 이유는 거듭되는 배교(背敎) 때문이었다. 그 결과 느부갓네살과 그 다음 상속자에게 이방 세계의 권력이 넘어갔다. 이방인의 때라는 표현은 예루살렘이 이방인의 권세 아래 있을 오랜 기간을 가리키는데, 느부갓네살에서 시작되어 짐승의 통치와 아마겟돈 전쟁으로 끝날 것이다.
“이방인의 충만”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주도권과 관계된다. 2,000년 동안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유대인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수많은 종교적 약속과 특권을 주셨고 하나님의 아들을 그들의 메시아로 보내 주심으로 다른 모든 축복의 절정을 이루어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써 배교의 극치를 달렸고, 이에 하나님께서는 종교적 특권을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아 이방인에게 넘겼다.
그러나 교회는 사실상 이방인이 주도권을 쥐고 있긴 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없다. 이방인의 우월함은 사도행전의 처음부터 시작된다. 활동 중심지는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그 후 고린도와 에베소, 로마로 옮겨간다. 복음의 축복의 빛과 힘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의 손에 있다.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 하나님의 원래 계획이 회복될 것이다. 정치적 권세와 종교적 특권이 거듭난 이스라엘에게 회복될 것이다. 교회를 이스라엘과 동일시하는 것은 로마서 11장의 요점 전부를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인, 이방인, 교회를 계속 분리시키고 계시며, 우리도 그래야 한다.
1. 교회와 왕국(하나님 나라)
우리는 또한 교회와 왕국을 구분해야 한다. 교회는 이름만 다른, 그리고 영적인 의미에서의 유대 국가가 아니라, 완전히 서로 다른 실체이다. 그리스도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왕국과 교회를 구별하지 않으면, 웅장한 대성전을 짓고 의식을 집행하는 목사를 임명하고 성례전(聖禮典)이라 부르는 반(半)유대적 의식을 도입하게 된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보이는 머리인 교황은 실제로 모든 나라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며 화려하게 다스리며, 세상 권력자들의 치장과 조직을 대동하고 전제군주처럼 말한다. 그러나 교회는 왕국이 아니다. 주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엡
왕국과 관련된 진리를 보여 주기 위해 신약에 세 개의 표현이 나온다. 우선, 특별히 구원과 관련된 표현인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또 단지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매우 기술적 표현인 “천국(하늘나라)”이 있다. 이 표현은 마태복음
어떤 비유가 하나님 나라와 천국(하늘나라) 모두에 관련되어 사용되고 있음도 사실이나, 어떤 면에서의 유사성이 모든 면에서의 동일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천국에는 포함되나 이들은 결국에는 제해질 것이다(마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에 따르면 천국은 세상이 점진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격변의 심판으로 세워질 것이 분명하다. 이 심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마겟돈에서 지상에 나타날 것이다. 천년 통치 동안 모든 사람들은 이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이다(고전
모든 죄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나라’가 사작 될 것이다(마
하나님의 계획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교회는 오순절과 휴거 사이에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모든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이같이 믿는 자 모두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이 된다. 이 몸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같은 인종적 차이가 없어진다(엡
오늘날 복음이 전파될 때, 이 복음은 사람을 하나님과 네 가지로 관련을 갖게 한다.
(1) 성령 세례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게 하고(고전
(2)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할 책임이 있는 천국 시민이 되고,
(3) 하나님의 생명과 성품(벧후
(4) 또한 주께서 궁극적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권을 세우실 것을 확신하고 더구나 현 세대를 뛰어넘어, 죄가 다시는 들어올 수 없는, 하나님에서 백성들 가운데서 영원히 통치하시는 영원한 상태를 바라보게 한다.
2. 위치와 상태
믿는 자의 위치는 바울이 즐겨 쓴 대로 그리스도 안이다. 그래서 완벽하다. 그러나 그의 상태 즉 그의 어느 한 시점에서의 실제 영적 상태는 결코 완전하지 못하다. 회심하기 전에 그는 영적인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연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는 내주하시는 성령에 대한 반응에 따라 영적이기도 육신적이기도 하다.
믿는 자의 위치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의 결과이다. 이 위치는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완전하고 온전마다. 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단지 믿음으로만 획득한다. 가장 약한 성도의 위치는 가장 훌륭한 사도의 위치만큼이나 안전하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요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사라고 즐거워 하느니라”(롬
다른 한편 믿는 자의 상태는 날마다 순간마다 달라질 수 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 두 가지 부할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이나 똑같은 시간은 아니다. 즉 두 가지 부활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첫째 부활은 세 단계로 일어난다. 첫번째 단계로 ‘첫 열매’가 있다. 부활의 첫 열매들은 이미 과거에 일어났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서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 27:52,53).
이 부활의 두번째 단계는 마치 ‘추수’와 같을 것이다. 주 예수께서 그의 성도들을 위해 공중에 나타나실 때 믿는 자들이 공중에서 주를 만나기 위해 일어날 것이다. 이를 ‘휴거’라고 부른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 그리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것이다(살전
이 부활의 마지막 단계는 ‘이삭 줍기’와 같을 것이다. 환난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순교하게 될 것이다(계 7장). 이들 가운데는 두 증인이 있을 것이며(계
그리고 나서 마지막 부활이 있다. 천년 통치 후 모든 시대에 죽은 악한 자들이 심판 받으러 부활할 것이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계
4. 네 가지 심판
성경에는 미래의 심판이 네 가지가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것들을 서로 구별해야 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심판을 받는지 또 그 결과는 무엇인지 항상 주의해야 한다.
(1) 성경은 죄의 심판을 말한다.
믿는 자의 죄는 이미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은 것이다. 주 예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벧전
(2) 성경은 성도의 심판을 말한다.
앞에서 나온대로 믿는 자의 위치와 상태는 다르다. 성도의 심판은 상태와 관련된다. 성도에게 심판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첫째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심판, 즉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일어나는 심판이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하나님이 선하다고 부르실 수 있는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는 성품이 조금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최선의 노력일지라도 타락한 본성에 이미 물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한다”고 바울은 썼다(롬
그는 새로운 성품을 받게 된다. 옛 성품이 근절되지는 않으나 새로운 성품이 함께 있게 된다. 이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의 성품은 잘못을 할 수 없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로마서 7장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쓰라린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믿는 자 안에 있는 이 두 성품은 서로 싸운다. 죄(sin : 단수)는 우리 안에 있는 뿌리깊은 원칙이고, 죄들(sins : 복수)은 삶 가운데 죄가 겉으로 나타난 결과들이다. 우리는 항상 성령께서 우리에게 죄에 관해 책망하시는대로 이같은 죄들을 심판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앨런 레드패스(Alan Redpath)는 어린 소년 둘이 있는 집을 방문한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 주었다.
어느 날 저녁 부모님이 교회의 특별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가시자 이 소년 둘만 남게 되었다. 부모님이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이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알고 보니 아주 비싼 그릇이 깨져 있고 조각들을 쓸어 테이블 위에 모아놓았다. 그릇 파편 옆에 이런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그릇을 깨버렸어요. 저녁은 굶고 침대에 들어가 있을께요.” 지미와 조 레드패스는 이렇게 말하고 물었다. “당신 생각엔 이 소년의 부모가 침실로 올라가서 이 둘을 침대에서 끌어내 그 잘못에 대해 벌을 주었겠느냐? 물론 아니다. 이 두 소년은 스스로를 심판했기 때문에 처벌은 없었다. “ 이것이 우리를 심판해야 할 의무이고, 그럼으로써 아버지의 징계를 받지 않게 된다.
둘째로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 살 동안 지금 당장 받는 심판 외에도,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미래의 심판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은 사실이나 믿는 자로서 우리의 행위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의 삶과 행위는 교회의 휴거 후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조사될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
물론 이 주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구절은 고린도전서
(3) 성경은 열국의 심판을 말한다.
성경에 나오는 또 다른 종류의 심판으로는 모든 민족이 심판대에 설 때의 열국의 심판이 있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계속 거부한 것에 대해 한 민족으로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 심판은 대환난 기간 동안 행해질 것이다. 심판의 초점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이 될 것이다.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다시 모일 것이다. 그들은 불신의 상태로 돌아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게”하실 것이다(겔
이방 민족 역시 심판을 받는다. 이 심판은 아마겟돈 전쟁 이후 주께서 왕국을 세우기 위해 지상’재림 하실 때 행해진다(저자의 ‘미래 연구’<Exploring The Future, 토마스 넬슨 출판사> 참고). 장소는 예루살렘 바로 옆의 여호사밧 골짜기일 것이다(욜
(4) 마지막 심판은 죄인의 심판이다.
이 심판은 천년왕국의 끝에 영원의 첫 행동으로 행해질 것이다. 베드로는 이 심판을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이라 불렀다(벧후
(199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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