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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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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20. 21:40 말씀 안으로/제물

A. J. Higgins

다섯 가지 제물 중 세 번째 또는 중심의 제물에는 화목제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완전한 그림을 얻기 위하여 레위기 7장에 제시된 제물의 율법을 보아야 합니다. 거기서 우리가 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물의 율법에 관한 지침을 주실 때 마지막으로 설명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따라서 그것을 초기 제물의 중심에 있지만, 그분이 지향하는 근본적인 것입니다. 이 제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발견하든, 이것이 우리와 그분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큰 바램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을 묘사하는 진리

이 제물의 의미나 가르침은 번제나 소제 중 하나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인식에 의해 제시됩니다. 제물의 세부사항을 살펴볼 때, 제사장, 제사장의 가족,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그의 가족이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제단으로 가져온 것을 함께 먹고 또 모두 함께 먹고 있는 제물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즐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즐기심과 같은 것에 즐기고 있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희생물을 가져왔는데 그것의 일부는 제단에, 일부는 제사장에게, 일부는 제사장 가족에게, 그리고 일부는 그것을 가져온 사람과 그의 가족에게 갔습니다.

 

따라서 제물은 하나님과 사람의 교제를 가져오고,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교제를 가져온 것을 암시합니다. 죄가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죄의 결과로 우리는 본질적으로 “증오하며 서로 미워하였다”( 3:3)는 것 사람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하나님께 먼저 화목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서로간에 화목 될 필요도 있습니다.

 

화목제는 주의 만찬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누리는 삶입니다. 화목제는 단순히 죄책감, 수치와 부담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시려고 의도하신 모든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평화” 또는 샬롬은 복수형이며 강렬하고 충만함을 암시합니다. 누가복음에는 주 예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며(누가복음 15)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상에 앉는 일곱번의 교제를 즐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허용되는 동물들의 유형

희생물로 지명된 동물들을 살펴보면 새로운 허용 사항과 함께 새로운 제한 사항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번제에서는 수컷만 희생물이 되도록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화목제에는 하나님께서 떼나 무리에서 수컷뿐만 아니라 암컷을 제물로 드릴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3:1,6). 더욱, 레위기 22:23은 제물되기에 부족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가진 수소 또는 어린양을 허용했지만 자발적으로 드리는 제물일 경우에만 허용했습니다. 왜 이렇게 희생 동물들의 갑작스러운 확장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교제를 원하시는 것이며, “흠 없는”( 1: 3) 그분의 표준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가요?.

 

그러나 번제에서 허용된 것이 화목제에서 한 가지 빠진 동물이 있습니다: 어떤 새도 화목제로 드려지는 새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먹기에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는 약간의 결핍도 없었다는 한결 같은 암시일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새에게서 귀중하고 적은 기름이 있을 것이고 사람을 위한 음식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제물 되는 희생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에서 한 마리가 포함되었습니다. 이전 글에서 차별에 관한 것과 그 차별이 암시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지만 이 제물의 의미에 비추어 그것들을 다시 한번 묵상해 보겠습니다. 그것들의 의미를 살펴볼 때 이 제물로 확정된 어떤 교제에 비추어 살펴본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기초는 무엇인가요? 나의 일입니까, 그리스도의 일입니까? 당연히 습관적인 대답은 그리스도의 일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 모두 하나님과의 교제에 우리를 이르게 했다는 것을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내가 매일 누리는 것인지는 모두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누리는데 기초가 되거나 방해가 되는 것은 나의 성공이나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그분을 위한 나의 섬김과 수고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나를 위한 그분의 사역입니다.

 

유사한 방법으로, 양떼에서 어린양은 하나님께 그분의 뜻을 양보하고 다른 사람의 뜻을 성취하려고 그분 자신을 내어 주신 분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내가 염소를 바라볼 때 그 염소가 얼마나 확실한 발걸음을 내딛었는지를 생각나게 합니다. 염소는 바위 같은 벼랑과 위험한 절벽 위에서도 걸음에 결코 실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거나 벗어난 걸음을 결코 내딛지 않으신 우리의 주 예수님과 얼마나 닮았는지요!

 

이들을 함께 종합해보면 하나님과의 교제의 즐거움은 그분의 섬김과 복종, 죄 없으심에 근거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초뿐만 아니라 내가 그분과 교제를 누릴 때 내가 하나님께 가져오는 바로 그 실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일, 뜻과 걸음에 헌신하는 삶을 누립니다. 우리가 기껏해야 무익한 종이었다는 후회와 잊혀지지 않는 인식으로 가득 찬 우리가 한 일을 가져와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누립니다!

 

하나님은 나에게서 즐기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아들에게서 즐기십니다. 그것은 거룩하심을 향한 나의 무기력한 시도가 아니라 염소 같은 위엄으로 이곳에 오셨던 분의 완전하고 완벽한 거룩함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뜻에 대한 나의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궁극적인 어린양의 복종입니다. 하나님께 말할 때 내가 누리는 것은 죄로 얼룩진 나의 섬김이 아니라 무리의 아들의 모든 기력과 힘으로 수고하신 분의 완전한 섬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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