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구원(3)
H. P. 바커
확실히 알 수 있다
우리가 영생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일”은 가능합니다. 만약 믿는 자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면, 영생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만약 우리가 영생을 잃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와 같이 “안다”는 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만약 우리가 구원을 놓치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역시 불가능할 것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후
우리가 구원을 놓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
오직 영원한 구원을 받은 자만이 “저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저희가 구원을 다시 놓치게 될 수도 있다면 저희의 수고는 헛되게 될 것입니다. 여기 이 구절의 말씀은 마지막 날 교회의 비밀에 관하여 언급하던 끝에 나타난 말씀입니다. 구원을 놓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일으키시러 오실 때 저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자신 있게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고후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이 자기자신에게 일어날 뿐만 아니라, 이 서신을 받는 믿는 자들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구원을 놓치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면 이러한 지식이 가능하겠습니까?
정죄함이 없나니
성경은 믿는 자에게 “정죄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정죄함에 이르지 않습니다. “ 만약 진정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그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을 수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멸망하는 일도 있을 수 있고, 정죄함에 이르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흠정역(King James Version) 성경을 보면 이 구절 말씀에 즘 첨가된 부분이 나타나 있으나 많은 우수한 사본에는 그러한 부분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최근에 번역된 성경들도 대부분 이 부분을 첨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 또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Williams 譯)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저희의 정죄를 갈보리 산에서 대신 담당하시므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저희를 해방시키셨기” 때문입니다(롬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헬라어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이중(二重)부정으로 표현하므로 그 의미를 더욱 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된 이 부분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여 보면 “저희는 영원토록 멸망치 아니하리라. 결단코 멸망치 아니하리라”는 말이 됩니다. 주님께서 멸망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한 번 얻은 구원을 다시 잃어버리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의 장래에 어떠한 일이 닥쳐오든지, 또 어떠한 시험이 우리를 둘러싸든지, 또 마귀가 우리에게 어떠한 역사를 해오든지, 그리고 마귀가 우리를 수렁에 빠뜨린다 할지라도, 우리는 다시 정죄함에 이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이 말씀을 보십시오. 너무나 확실합니다. 믿는 자는 멸망치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 24)
만약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사람이 그 영생을 다시 잃어버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다시 정죄함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믿는 자는 “결코 정죄함에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확합니다. 이와 같이 명확한 하나성의 말씀을 믿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예수님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장래 노하심에서” 건지셨습니다. 이 구절의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를 건질 수도 있다” 라든지, “예수님은 우리들이 참고 견디면 우리를 건지실 것이다”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건짐을 받은 것은 이미 성취된 사실이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새로운 피조물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새로운 성품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동물을 새로운 환경에 옮겨 놓는다든지 혹은 새로운 습관을 가르쳐 준다 할지라도, 그 동물은 과거의 습관과 생활방식을 아주 버리지 못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곤 할 것입니다. 그 동물의 성품은 여전히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개에게 뒷다리로만 걷도록 훈련을 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훈련시키는 기간이 아무리 길다 할지라도 또는 훈련 방법이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개는 여전히 네 다리로 걷는 행동을 아주 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네 다리로 걷는 것이 개의 본성(성품)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습관을 고치고 새로운 습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그리스도인들도 교회에 참석하여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사람들의 성품(본성)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에 결국은 그 본성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진실하게 구원받은 사람은 새로운 성품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곧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는 가끔 죄 가운데 빠지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에게는 새로운 본성이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죄를 기뻐하지 않으며 계속하여 죄를 범하지는 않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피조물”이란 그 어떤 것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피조물 그 자체는 스스로를 만들지 못하며 또 스스로를 다른 그 무엇으로도 바꾸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거듭난 사람들)은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바꾸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믿는 자는 스스로를 죽일 수도 없고 또 다시 살릴 수도 없습니다. 만약 진실로 구원을 받은 믿는 자가 그 구원을 다시 놓칠 수도 있고 다시 찾을 수도 있다면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살리는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갈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 ‘새 사람’은 중생한 사람으로서 옛사람과 구별됩니다(롬
“개는 언제나 개이기 때문에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갑니다(벧후
(199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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