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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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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구스타프슨

만장일치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G.H. 랭은 요한복음으로부터 만장일치에 기여하도록 가장 많은 기고를 하고 있지만 요한복음 13:34-35도 도움이 된다. `내가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그것을 왜 새 계명이라고 부르시는지 의아해 할 수 있으며 다음을 읽는다 “너희와 함께 거하는 그 나그네를 너희 가운데서 태어난 자같이 여기며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 19:34). 이것은 높은 기준이지만 그분이 우리를 사랑한 만큼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훨씬 높은 기준이고 따라서 새로운 기준이다. 주 예수님은 또한 성령님을 각 신자들에게 주심으로 새로운 역동성을 우리에게 주셨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는 첫 번째 특징은 사랑(갈 5:22-23)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35절).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는 영국에 8개월 동안 주둔했다. 내가 영국에 있는 동안, 내가 모임에 나갈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어느 주의 날, 나는 버밍엄에서 40마일 떨어진 곳에서 방문한 퍼시벌 스미스 부인을 만났다. 그녀는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방문하도록 초대했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했지만, 그녀의 친절한 제의를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때까지 아무도 쉴 틈이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일주일 동안 휴가를 얻었다.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써서 그 주간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내가 일주일 내내 그들과 함께 지내길 원한다고 답장을 써보냈다. 내가 막사에 있는 다른 동료들에게 말했을 때, 그들은 거의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내 이모도 아니었고 나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형제들의 사랑은 그들에게 진정한 증거였다. 1세기 이교도들이 기독교인들을 두고 “보라 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지”라고 말한 것이 아직도 세속사에 기록될 수 있어 감사하다.

 

사도행전: 헬라어 oJmoqumadovn(호모뒤마돈)은 신약에서 열두 번 발견된다. 열한 번의 언급은 사도행전에서, 일곱 번은 신자들의 “한 마음”으로 번역했다. 그 중 네 번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기 위해 “한 마음”이 되는 것을 읽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한 마음”으로 어떤 잘못을 행하는 것을 결코 읽지 못한다.

 

G.H. 랭은 모임에서의 만장일치를 장려하는 사도행전 15장에 대해 두 사건의 유익한 단어를 제공한다. “주의하여 연구했을 때, 이야기는 실제로 논의된 문제에 대한 결정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판단이 영향을 받은 원리, 나아가 우리 주제인 토론의 질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원리를 알려준다. 이 집회는 구성과 성격이 독특했지만, 그 관심사의 방법은 우리의 신성한 모본으로서 제시되기 때문에, 교회 전체의 승인과 함께 안디옥에 있는 형제들에게 ‘한마음으로 모여서 … 좋게 여겼느니라’(25절)라고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교회가 ‘한 마음이 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가 차분하고 자신 있게 자신의 결정에 대해 주님의 권위를 주장할 수 있고 ‘성령님과 우리는 … 좋게 여겼나니’(28절)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로마서: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서로를 향해 같은 마음을 갖게 하사 너희가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5-6). “한 마음”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사도행전에서 열한 번 “한 마음”으로 번역된 같은 단어이다. 그것은 사도행전 외에 여기 로마서에 단 한 번 발견되는데, 바울은 로마에 있는 모임의 신자들이 양심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개인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한 마음일 것이라고 기대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고린도전서: 바울은 3중의 간청을 사용한다. 첫째, 바울은 사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명령하지 않고 있으며, 고린도 모임이 크게 세워진 것을 보면서도 명령하지 않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간청하고 있다. 둘째, 그는 “형제들”(1:10)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그들이 한마음 한 뜻이 되도록 도와야 하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호소력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이다. 처음 아홉 구절에서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 또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다섯 번 이상 사용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10절).

 

고린도전서는 분명히 그분의 주되심의 서신이다. 그리스도를 이후에 합쳐진 어떤 두 서신보다도 더 많은 68번 주로 언급한다. 바울은 그들이 육신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이 세속 클럽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한 마음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3:16). 바울은 그들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그들이 한 마음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린도후서 2:6: “그런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에게서 이같이 벌 받은 것이 충분하니라”. 어떤 사람들은 “많은”이 “다수”를 의미한다고 생각해 왔다. G.H. 랭은 다음과 같이 썼다, “바울 자신의 언급이 다수 만이 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그의 영이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다시 활력을 얻었느니라’(고후 7:13) 그리고 ‘너희 모두의 순종을 기억하고”(7:15) 따라서 2:6의 ‘많은’은 모든 교회를 의미할 것이며 한 지체가 그들 모두에게 징계를 받는 것과 대조될 것이다.”

 

C.F. 호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최근 다수의 행동이 모임의 행동이라는 제안은 나에게 많은 염려를 안겨준다. 순전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통제되는 클럽이나 다른 연합의 수준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축소하는 것 같다. 반면에 나는 그것을 주님에 의해 다스려지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초인적인 기관으로 생각했었다. 나는 형제들이 거룩함에 이르는 주요한 수단으로 판단의 일치를 기다리는 동안 인내의 훈련을 생각했었다.” 또 다른 경우에, C.F. 호그는 자신의 간결한 방식으로 상황을 요약했다: “다수의 지배는 나쁘다: 소수 지배는 더 나쁘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