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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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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러지

오후에는 신약 성경에서 특히 성도들 사이에 역사하는 성령님에 대해서 보고자 합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것에 대해서 먼저 보고자 합니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 속에 성령님이 영원히 내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린도서 6:19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바울이 여기서 너희라고 말할 때 육체적인 몸, 거룩한 성령님이 육체의 몸인 우리 속에 내주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몸은 성령님의 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 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요한복음 14장도 보겠습니다. 이 내주하는 것에 대한 또 다른 구절입니다. 시간이 되면 성도 속에 역사하는 성령님의 5가지를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가 믿는 사람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뿐 아니라 요한복음 14장에도 나오는 구절입니다. 제자들에게 다락방에서 말씀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1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혜사라는 것은 그 사람을 강하게 하고 그 사람을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령님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해서 그 성도를 강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 뒤에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또 성령님의 다른 이름은 진리의 영입니다.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이때는 성령님이 제자들 속에 계신 게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제는 오순절 날에 성령님의 제자들 속에 계신 게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제 조금 더 있다가 오순절에 대한 사건을 보겠습니다. 이 장에 또 하나 놀라운 구절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내주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21절에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제자들이 이것을 이해했습니다.

충분히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23절에 보충 설명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거처를 함께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약속을 하신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과 아버지, 하나님을 언급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저에게 와서”라는 이 표현을 기억하십니까? 이것은 장래가 아니고 하늘에서도 아니고 현재 이 땅에서 말입니다. 아버지와 주 예수님이 믿는 사람들의 몸에 거처를 삼으신다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성령님으로 가능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여기서 성령님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은 믿는 사람들 속을 거처로 삼습니다. 성령님이 거처로 삼는 그곳에 우리라고 하는 대명사가 말하듯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가 거처로 삼는 것입니다. 앞으로 찾을 말씀과 이 말씀에 복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것에서 조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적용도 성경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오늘 특히 고린도전서 6장과 요한복음 14장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이 땅에 내려왔다는 것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그 인격 속에 하나님이 계신 것은 놀라운 일이고, 또한 사람 속에 있는 것도 놀라운 양쪽 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 땅에 오신 것도 놀랍지만 성령님이 우리 속에 내주하는 것은 더욱더 놀랍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육체로 계실 때, 또한 그때보다 지금이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믿는 사람 속에 거처를 함께 한다는 것은 더욱더 놀라운 일입니다. 이 경륜에 있어서 참으로 특이한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성령님이 사람 속에 영원히 거주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영원히 내려왔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서는 “너희 속에”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는 “너희에게 내주하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양쪽을 합쳐서 보면 성령님은 믿는 사람 속에 거처를 마련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가정집을 삼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성령님의 내주로 하나님과 좋고 기쁜 교제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은 특히 성령님이 내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하나님의 거처를 형성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내주를 고린도전서 6장에서 보면 거기는 특히 거룩함을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성이 우리 가운데 내주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내주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거룩을 요구합니다. 우리 속에 계신 그분이 거룩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도 거룩을 나타낼 책임을 요구받습니다. 따라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받은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몸은 성령님의 전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 속에는 어떤 부정과 어떤 더러움도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처를 삼으셨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는 것과 우리의 삶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놀랍게도 성령님이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것은 우리들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들을 강하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과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아주 무거운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성령님이 정말로 우리 속에 내주해 계신다면 우리는 성령님이 거룩한 것처럼 거룩해야 합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도 성령님의 내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사도행전으로 잠시 가서 하나를 찾아볼까요?

사도행전 1장으로 가서 성령 침례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령 침례는 실제로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님이 강림할 때 일어났습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성령님이 장래에 올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까지는 제자들 속에 성령님이 영원히 내주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순절 날에 성령 침례 때 성령님이 주어진 것을 지금 보고자 합니다. 1:5절에서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제 머지않아 예수님이 승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아” 이 말씀이 성취되는 2:1절을 보십시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이 집에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는 상징입니다. 성령님이 이 집에 가득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 집이 바로 성령님이 임한 그날 집이라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제자들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님이 임해서 집에 가득했습니다.

성령님 침례에 대한 잘못을 생각을 잘못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침례라는 말을 갖기 때문에 침례는 물로 침례를 주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물로 침례를 받을 때 사람이 물 밑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침례 받는 사람을 침례에 사용되는 물질이 그 사람을 전부 감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침례의 의미입니다. 물 침례를 가지고 이해하자면 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속에 내주할 뿐 아니라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에는, 다른 말로 말하면 그 집에 성령님이 가득했기 때문에 제자들이 성령님 안에 있었습니다.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 침례는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고린도전서 12:13절을 보면 바울은 성령님 침례에 대한 가르침의 일환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읽으실 때 주의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한 성령님이라고 하는 단어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성령님을 수단으로 해서 침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만약에 침례를 수단으로 한다면 성령 침례를 베푸는 자가 누굽니까? 예를 들어서 물로 침례를 베풀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침례를 받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침례를 베푸는 사람이 있고 그 침례를 받는 자리에 있는 물질인 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성령 침례입니다. 첫 번째로 누가 침례를 받습니까? 물론 다락방에 있던 믿는 사람들이 침례를 받는 대상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말하기를 “우리가 한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아” “우리가”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2장에 없었지만 우리가 받았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때 침례를 베풀 때 쓰였던 마치 물침례 물질 같은 물이 성령님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 침례를 베풀었습니까? 우리는 이미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이 성령 침례를 베푸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해서 하늘로 가셨습니다. 성령님으로 오셨습니다. 그 성령님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베푸셨습니다.

13절에 바울이 하는 말하는 바는 영어로 말하면 by라는 전치사를 썼는데 성령님이 침례 베푸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바울은 by를 안 쓰고 in이라고 썼습니다. 한국어 성경은 안 나오지만 한 성령님으로 할 때 영어로 말하면 by 와 in이 있는데 by가 아닌 in을 썼기 때문에 이 말은 성령님이 침례를 베푸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어로 말하면 이 시제는 과거입니다. 과거로 쓰여서 한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미 과거형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 침례로 한 몸인 몸된 교회가 시작된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한 성령님으로 말입니다.

이 성령님은 이 모든 사람을 한 몸으로 유기적으로 만듭니다. 또 다 한 성령님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성령님 안에 침례를 받을뿐아니라 또한 그 성령님을 음료처럼 마신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어떤 액체를 마시면 그 액체가 몸 안으로 들어갑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가 성령님 안에 있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하는 양쪽 다 진리입니다.

오순절 날의 중요함을 아는 것은 대단히 유익합니다. 오순절날 성령 침례는 참으로 특이한 한 번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딱 한 번 일어난 특이한 일입니다. 성령 침례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하늘에서 이 땅에 강림하시는 것은 한 번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도 성령 침례를 베푼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한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현재도 성령 침례를 받는다고 합니다. 영적인 사람들이 그 성령 침례를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잘못됐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이 교회를 바울은 이 안에는 고린도 모임에는 육신적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다 한 성령님으로” 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영적인 사람이든 육신적인 사람이든 구분이 없어 그리고 성령 침례는 과거에 이미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다 한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성령님이 강림해서 성령 침례가 이루어진 것은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날에 딱 한 번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구원받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님으로 믿는 순간에 여러분이 사도행전 2장에 일어난 그 몸된 교회 그대로 주 예수님이 더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몸된 교회 전체가 사도행전 2장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난 그 일이 구원받는 순간에 구원받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됩니다. 이것이 언제 완성되는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여기는 두 가지 중요한 게 있습니다. 첫 번째로 13절에 보면 한 몸이라고 말씀하는데 바울은 이 말을 할 때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난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때 일어난 두 가지 큰 일이 있습니다. 새로운 단체가 형성이 됐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한 몸으로 전부 다 연결이 돼 있습니다. 여러분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유대인이 이방이든 관계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지체들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몸의 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 2장에 딱 한 번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한몸으로 연결돼 있을 뿐 아니라 그 연결된 몸은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이 몸이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설명하는 대단히 중요한 진리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한 몸의 머리이십니다. 이 땅에 있는 몸과 생명적으로 부활한 머리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들은 한 몸에 같은 지체입니다. 서로 돌보고 사랑하는 관계인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것이 진리임을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특별히 로마서와 고린도전서의 이 진리를 바울은 말합니다.

두 번째는 높아지신 머리와 모든 지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하늘에 있는 그분이 우리에 대한 주권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지시하십니다. 또한 우리들을 지지하고 우리들을 돕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발견되는 진리입니다. 여기서 성령 침례를 그래도 앞으로 또 기다리겠습니까? 이것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구원받는 순간에 성령 침례에 동참이 됐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는 순간에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난 그 사건에 바로 연결이 됐습니다. 이 몸인 교회에 말이죠.

성령님이 우리 속에 내주하시고 그리고 성령 침례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이것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신약 성경 전체가 이 진리를 설명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서신에서 비밀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비밀의 경륜이라고 말할 때 그 머리와 몸의 관계를 말할 때 그 말을 사용합니다.

세 번째는 성령님의 인치심으로 에베소서 1:13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여기서 그리스어에서는 현재 시제로 썼습니다. 그 안에 그리고 믿을 때라고 하는 현재형을 썼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믿는 순간에 성령님의 인을 쳤다고 하는 시제를 현재형으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인치심입니다. 14절에서는 성령은 또한 기업의 보증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내주하는 성령님을 받고 그리고 성령 침례를 받습니다.

약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과 성령님의 보증을 보겠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믿는 순간에 성령님의 인치심을 모든 믿는 자들은 받았다고 말합니다. 인쳤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인치심은 소유권에 관한 표시입니다. 동물을 키우는 농장주들은 그 동물이 자기 것임을 알리기 위해서 그 동물에게 인을 칩니다. 어떤 마크 어떤 표시를 그 동물에게 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이 동물은 나에게 속했다는 표시로 말이지요. 구원받을 때 여러분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인치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권이라고 하는 주장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에게 속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 성령님은 소유권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또한 보호한다고 하는 의미도 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장사되었을 때 어떤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돌 무덤의 입구를 돌로 막고 인친 것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이 무덤에서 못 나오도록 거기에 안전 장치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바로 돌이 막혀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없도록 말이죠. 따라서 돌에 인봉했다는 말은 그 돌을 안전하게 지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아서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인침 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전체 몸이 구속 받을 때까지 믿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는 사람은 영원히 안전하다고. 여러분이 만약에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은 영원히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바로 내주하는 성령님이 또한 보증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인치심의 의미입니다.

14절에 기업의 보증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 보증이란 말은 상업적인 용어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 사람에게 어떤 물건을 맡길 때 만약에 어떤 물건을 사는데 그 물건의 값이 너무 비싸고, 차라든가 이런 물건을 살 때 그 차값을 한 번에 다 지불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차를 사면서 일부 돈을 지불하고 그 보증을 받습니다. 마치 할부로 차를 사는 것처럼 처음에 지불하는 그 지불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보증입니다.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복이 많습니다. 그 많은 것들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처음 마치 할부로 차를 살 때 처음 지불하는 그 돈은 앞으로 약속된 매달 돈을 지불한다는 약속인 것처럼, 하나님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들을 성령님을 주실 때 앞으로 나머지는 전부 지불하겠다는 그런 약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보증으로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받을 모든 복들을 성령님을 주심으로 보증하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나타내는 구약의 좋은 예가 또 하나 있습니다. 광야 생활을 여러분들이 기억할 겁니다. 민수기 13장에서 12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습니다. 약속의 땅이 어떤지를 정탐들이 가서 보았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광야 장막진으로 돌아올 때에 그 땅이 어떠함을 보이는 어떤 물건들을 거기서 가져왔습니다. 그들이 갖고 온 것은 가나안 땅에 있는 전체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을 가져왔습니다. 거기서 가져온 물건이 양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가나안 땅이 좋지 않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포도 큰 송이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한 송이를 가져왔는데 큰 포도송이를 가져왔습니다. 혼자 못 들어서 사람들이 메고 왔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매고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이 정탐들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 약속된 땅이 얼마나 위대한 땅인지 보라. 이 한 송이의 큰 포도송이를 보라. 그 큰 포도송이는 가나안 땅이 어떠함을 증명하는 보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장래 믿는 자들이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 속에 성령님으로 보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얼 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인격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것보다 더 큰 것을 주실 게 있겠습니까? 우리 속에 하나님의 인격이 들어왔습니다. 앞으로 올 영광에 관한 보증으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서 8장을 보겠습니다. 내주하는 성령님을 받고 성령 침례를 받았습니다. 성령님의 인치심과 성령님의 보증도 보았습니다. 성령님이 중보하는 것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8:26절을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여기서 말하는 탄식은 그리스어로 읽으면 성령님의 탄식이 아닙니다. 이 탄식은 우리의 탄식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믿는 사람들의 삶 속에 탄식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탄식을 알기 때문입니다.

27절에서는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중보 또는 간구가 뭔지를 잠시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은 탄식에 관한 장이기도 합니다. 22절에 보면 피조물이 탄식합니다. 23절에는 우리도 탄식을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내주해 계시지만 성령님은 새로운 생명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옛 창조에 속한 요소를 우리가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아담에게 속한 육체에 관한 영향을 받는 요소를 우리가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새 창조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새 창조에 속했지만, 우리의 육은 아직도 옛 창조에 속해 있습니다. 왜 우리가 건강하지 않고 병이 드는가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 우리가 고통하고 어려움을 당하는지 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제가 있는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암이 걸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은 아직도 첫 창조에 속한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때때로 탄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함께 몇 줄을 읽어보겠습니다.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어느 한 날 예수님이 공중에 오시는 그날에 또는 우리가 부활하는 날에 첫 창조에 속했던 우리의 몸은 그 순간에 모두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몸과 함께 결합이 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때는 탄식이 더 이상 거기는 암이 없을 겁니다. 이제 병도 없고 죽음도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도 탄식을 합니다. 그리고 계속 탄식하면서 늙어갑니다. 피조물도 탄식하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종 된 피조물들에게 순종하는 피조물들이 탄식을 하고 다른 말로 말하면 이 세상에 죄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탄식하는 것을 종종 경험할 것입니다. 땅도 탄식하는 걸 볼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진이라든가 화산 같은 것들도 그와 연관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죄의 영향으로 피조물도 탄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피조물도 탄식하고 구원받은 우리도 탄식하고 우리들은 때때로 위로를 받지만 피조물들은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믿는 사람들은 성령님이 내주하기 때문에 탄식 중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26절에서 바울이 말하는 바입니다.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의 몸이 첫 창조에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첫 창조에 속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고난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너무 첫 창조에 속한 영향이 커서 감당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만큼 영향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 믿는 사람일지라도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기보다는 탄식만 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성령님이 무엇을 합니까? 우리의 탄식을 돌봅니다. 우리가 탄식하는 요소가 너무 많아서 무얼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이때 성령님이 우리의 탄식을 하나님 앞에 간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돕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울뿐아니라 직접 간구를 하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성령님이 친히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탄식하고 있을 때, 성령님은 하나님 앞에 우리의 탄식을 친히 간구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성령님의 일입니까?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8절을 봐주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도 탄식할 일들이 많은 것을 조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왜 하나님이 믿는 사람인데도 이런 많은 고난을 허락하시는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과거에 많은 탄식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을 닮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셨습니다. 따라서 28절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모든 일어나는 일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서로 합력하도록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모든 환경 요소들을 아우를 수 있는 힘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기뻐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고통스러운 환경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믿는 사람 삶 속에서 합력시키는 힘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합력을 시키되 선을 위해서 말이죠. 선이 나타나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2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우리가 삶에서 통과하는 모든 환경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환경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큰 어려움을 당했다 할지라도 누구보다도 큰 환란을 당한 사람은 욥이었습니다. 욥은 그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이 욥 속에서 형성이 됐습니다. 하늘이 맑고 해가 밝은 날에, 어떤 경우는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과 지혜로 이것을 합력시킬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여러분의 삶에서 모든 환경을 합력을 시켜서 선을 이루는 지혜를 하나님이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닮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 보시겠습니까? 어떤 융단에다가 수를 넣는다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어떤 경우는 금색실을 가지고 수를 넣고 어떤 경우에는 초록색 또는 청색 실로 수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중간중간에 검은 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을 가까이 볼 때는 아름답게 안 보이지만 멀리 떨어져 보면 그 수를 놓은 그림이 전체가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 것을 알 수 있고 전체 그림은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와 같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면에서 볼 때 우리는 흰색이나 검은색이나 주님 앞에서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아름답게 안 보일지 모르지만은 그림 전체가 완성될 때는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그 목적은 아들의 형상을 닮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시기를 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사랑하는 독생자 같은 사람이 하늘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닮은 아들들이 될 때 하늘에 독생자를 닮은 수많은 아들들이 가득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이 말씀을 통해 나타난 성령님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또한 성령님을 근심케 말고 성령님을 소멸치 말라는 말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열매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주님이 복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26년 5월 5일 말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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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