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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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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22. 15:00 말씀 안으로

우림과 둠밈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출 28:30).

우리는 이제 모든 비밀 중에 가장 비밀한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자주 우림과 둠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이 되어왔는지요. 그것들의 모양과 그것들의 작용 방법에 관한 많은 대답들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그 모든 것에 대해 여기서 살펴보지는 않겠습니다(만일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여러 주석에서 그에 관해 읽어볼 수 있습니다). 그 대부분의 개념들이 어떤 타당한 근거없는 단순한 추측입니다. 보다 더 깊이 그 뜻을 알기 원하지만, 또 그렇게 될 때에 보다 더 권위있는 해석이 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아마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분간 감추어두신 일종의 “감추어진 만나”로서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 가서야 확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것의 의미를 전개해 나가기 전에 먼저 그 두 단어의 의미가 “우림은 빛을, 둠밈은 완전함”을 뜻한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가 빛이심과 그분 안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과 지혜와 계시의 빛이십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완전하십니다. 만물이 그분에 의해, 그분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모든 만물의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그분만이 진정한 심판자이십니다.
성경 해석의 첫번째 원칙 중의 하나는 그것이 근동의 책이므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생활과 습관과 배경 등을 고려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구약에 사용한 모든 예들은 사람들이 일반적인 상식을 사용하여 기꺼이 분별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처럼 내용을 더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예화를 사용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흉패 안에 있는 우림과 둠밈은 검고 흰 돌이라고 합니다. 검은 돌은 부정적인 면을 흰 돌은 긍정적인 측면을 나타냅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 검고 흰 돌을 사용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기에 그들은 그 돌들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하였을 것입니다.
이같은 일은 근동의 관습과 성경의 기록에 함께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성경은 제비뽑는 것이 하나의 두드러진 관습임을 나타냅니다. 물론 이것은 오늘날의 도박과 같은 성격은 아닙니다. 또한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미신적인 세대에서 행운의 여신을 믿는 일 같은 것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은 악하고 완고한 군병들과 같은 악인들도 있었고 요나가 당한 경험에서 그 폭풍의 원인자를 발견키 위해 제비를 뽑았던 미신적인 선원들도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대제사장들이 주 여호와의 뜻을 구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과 같이 사도의 직분을 위해 맛디아를 제비쁩은 정직하고 고귀한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악들은 한때 인간에게 쓰이기 위해 주어진 방법들을 남용하므로 초래된 것입니다. 사도들이 제비 뽑았던 것은 하나의 기도였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믿는 행위였습니다. 계시록 2장 17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여기에서는 희고 검은 돌의 성격에 대한 단서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 흰 돌에는 이기는 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희고 검은 돌들은 근동에서 판결을 선포하는 방법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유대 법정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살인죄를 범한 것으로 드러나게 되면 재판관은 검은 모자를 씀으로 사형언도를 선언합니다. 유사한 방법으로 근동의 재판관들은 그 사람에게 검은 돌을 건네줌으로 유죄인 사실을 밝힙니다. 그러므로 그 죄수에게 흰 돌을 건네주는 것은 그가 무죄로 석방됨을 의미합니다.
주지사나 지방장관들을 뽑을 때 많은 검은 돌과 그 특별한 직위가 새겨진 흰 돌 하나를 한 통에 넣어둡니다. 이때에 그 돌들의 수는 후보자들의 수와 일치합니다. 그래서 각 후보자가 그곳으로부터 돌을 하나씩 집어 내는데, 그 중에 흰 돌을 끄집어 낸 사람이 그 직책을 맡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어떤 비밀한 일을 위해 이와 유사한 방법을 받아들입니다.
분배하는 데에 아무런 불공평함이 없도록 하고자 사람들은 기업의 땅을 할당할 때도 주머니에서 돌을 선택했습니다. 흰 돌은 또한 고대의 스포츠나 경주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졌습니다. 흰 돌은 그에게 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계시록에 나오는 이기는 자와 흰 돌과의 관계를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계 12:11) 이긴 자들은 의롭다 함을 얻은 신분과, 왕과 제사장으로 뽑힌 직임과,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로 인도된 사귐과, 성도들과 함께 유산으로 얻는 기업과, 생명의 면류관인 상급을 얻는 표인 흰 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이 돌들은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며 미리 예시하는 방법으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어떤 결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이두 돌은 같은 모양과 같은 크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구하기 위해 기도한 후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에서 손을 내밀어 한 개의 돌을 취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 어떤 문자가 기록되어 있진 않았을 터이지만 어쨌든 긍정의 대답이든지 아니면 부정의 대답을 얻게 됩니다.
이같은 점에 대해 사무엘상 30장 7,8절의 말씀이 명백하게 밝혀줍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그가 에봇을 가져오도록 청한 것은 사실 우림과 둠밈을 요구한 것입니다. 우림과 둠밈은 흉패 안에 있었고 흉패는 보석이 달려있고 에봇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밀하게 안쪽에 있는 우림과 둠밈을 가져 오려면 에봇 전체를 가져와야 되었던 것입니다.)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오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물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그 물음에 대한 결과는 긍정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더 이상 우림과 둠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삼위일체 중에 삼위되신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면 성령께서는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능력과 인도하심에 대해 확신하지만 그렇지만 성령님은 언제나 그때그때 달리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이유를 가졌든지 혹은 어떻게 스스로 생각했든지 상관없이 최종적으로 돌이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해야 합니다.
다음에 기록된 파커(Joseph Parker) 박사의 글은 실제적으로 유용한 가치를 지닙니다.
“우림과 둠밈이 사실상 무엇이었는지는 어떠한 인간도 알아낼 수 없습니다. 그것들이 어떤 위기시나 혼란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데 사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주의를 끄는 일입니다. 어쨌든 그 당시에 우림과 둠밈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오늘날 우리에게 우림과 둠밈이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빛과 완전함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우림과 둠밈은 바로 신, 구약 성경입니다. 성경 말씀들을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그리고 교리, 찬양, 영감, 모든 종류의 교훈 등에 관한 다양한 놀라운 말씀들이 항상 가슴에 머무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의 길을 떠나 방황치 않게 되며 여러분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곧바로 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법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문의하기 위해 엔돌의 마녀나 점장이 술객 등을 찾아가서는 안됩니다. 즉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들을 추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 생애는 신, 구약 성경에 마치 지도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들은 결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함께 읽혀져야 합니다. 또한 신, 구약 성경은 서로서로 설명해 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제각기 떨어져 버린다면 그 통일성과 조화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 66권이 함께 모아졌을 때 마치 꽃에서 뿌리까지 있는 식물과 같이 모든 것이 조화와 통일과 연관을 이룸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성경은 결코 따로 나눌 수 없으며, 전체적인 연관 속에서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십시오. 성경은 인생의 모든 필요에 적합하도록 성령님의 감동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길을 잃고 방황한다면 그것은 빛이 부족하거나 없어서가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계속적으로 우리 자신의 잘못된 본능과 충동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반드시 절망의 수렁이나 곤고한 사막 가운데 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행동하지 마십시오. ‘오직 말씀으로, 오직 성령으로’ 이것이 우리의 모토가 되게 합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확증된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생애가운데 받아들이고 따를 가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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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