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식과 찬양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인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 아비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그 아비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로 나의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르우벤이 아비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나의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야곱이 가로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창 42:35~3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위에 밝힌 두 문단을 읽어보면 하나는 비관주의자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낙관주의자에 관한 것입니다. 야곱은 상황의 어두운 면을 보고 있었으며, 바울은 밝은 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비관주의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의 흠을 잡으려 하며, 불평하며, 사물의 부정적인 면만을 봅니다. 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낙관주의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로와 격려를 갖다 줍니다.
야곱의 입에서는 합당치 않은 불평이 터져 나왔지만 바울의 펜에서는 확신에 찬 격려의 찬양이 터져 나왔습니다. 야곱은 상황의 어두운 면을 보고 있었음에 반해, 바울은 많은 슬픔과 시련을 경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의 밝은 면을 보고 있었습니다(고후
때때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한탄하면서 하나님이 은혜 베푸시기를 잊으셨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야곱은 탄식을 했을까요?
첫째로, 야곱은 무지 때문에 탄식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요셉은 죽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야곱은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는 보이는 것으로 상황을 판단했습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볼 수 없는 것은 믿지 못하겠어요.”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뇌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 물론이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뇌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주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한 때 야곱은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려고 술수를 썼던 적이 있었기에 자업자득인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둘째로, 야곱은 망각 때문에 탄식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야곱은 53년 전에 벧엘에서 있었던 일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 때 사닥다리 환상 가운데서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야곱은 하나님의 선하심은 잊어 버리고, 하나님의 징계는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마치 시계 위의 두 침과 같습니다. 그 중 긴 침(분침)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리키고, 짧은 침(시침)은 하나님의 징계를 가리킵니다. 긴 침은 날마다 하루에 24바뀌를 돌아가지만 짧은 침은 하루에 겨우 두 바퀴를 돌아갑니다. 재난을 당할 때에 우리는 자기가 누렸던 수많은 번창과 햇빛 화창한 날들을 잊어버립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 내내 너로 광야의 길을 인도하신 것을 기억하라”(신
그들은 또 쓴 물이 있는 마라에서 “물샘 열 둘과 종료 70주가 있는” 엘림으로 인도받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는 마라보다 훨씬 더 많은 엘림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라 하나 때문에 모든 엘림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 있는 어느 신문 편집인은 사람들보고, 만일 태양이 마이애미 위를 비취지 않는 날이 있다면 그 때 사람들에게 신문을 무료로 나눠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주 후 어느 날이 되자 하루 종일 태양이 비취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모여들어 공짜 신문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때 그 편집인이 대답하기를, 흐린 날이든, 밝은 날이든 태양은 언제나 마이애미 위를 비취고 있다고 했습니다(흐린 날에도 태양은 구름 위에서 언제나 밝게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역자 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히
셋째로, 야곱은 합당치 않은 관점 때문에 탄식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우리말 성경에는 “다 나를····”로 나와 있음~역자 주). 그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것”(즉, 사물)뿐이었습니다. 사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에 비추어 상황을 해석하지 아니하고, 상황에 비추어 하나님을 해석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의 교회들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들의 삶 가운데서도 역시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잊고 있었습니다. 만물이 하나님께 속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면 그분은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결코 여러분을 떠나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넷째로, 야곱은 불신 때문에 탄식했습니다.
야곱은 신뢰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날까지 자기를 부르시고, 인도하시고, 공급하시고, 보호하신 분의 사랑과 말씀과 능력과 지혜와 신실하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그는 다음과 같이 증거했습니다.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네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창 48:15~l6).
불신은 항상 불평의 주원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걱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걱정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그분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시편 106:12에서 우리는 “이제 저희가 그 말씀을 믿고 그 찬송을 불렀도다”라는 표현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24~25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그 낙토를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저희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빌립보서
이제 우리는 바울의 아름다운 찬양을 살펴보겠습니다. 실로 그는 탄식할 이유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감옥으로부터 기쁨과 신뢰와 소망과 확신에 찬 편지들이 기록되어 나왔습니다. 그가 기록한 편지 중에서 로마서
첫째로, 바울은 절대적인 확신 때문에 찬양했습니다.
그의 절대적인 확신은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말씀 속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알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마
둘째로, 바울은 하나님의 활동 때문에 찬양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이루시느니라”는 말씀 속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우리말 성경의 본문에는 “모든 것이····이루느니라”로 나와 있지만 각주에는 “하나님이····이루시느니라”로 나와 있음-역자 주).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다음의 성경 말씀들이 말하는 바대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바쁘게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권고(眷顧)하십니다(벧전
하나님께서는 생각하십니다(시 40:17).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십니다(엡
하나님께서는 필요를 채우십니다(빌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활동입니다.
“셋째로, 바울은 무한한 범위 때문에 찬양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이라는 말씀 속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측량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능력은 한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사용하여 일하십니다(고전
하나님께서는 상반되는 힘을 사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십니다. 예를 들면, 그분은 증발의 법칙과 응결의 법칙을 자연 가운데에 두셨습니다. 만일 이 상반되는 두 법칙이 없다면 우리는 곧 굶어 죽고 말 것입니다.
넷째로, 바울은 조화 때문에 찬양했습니다.
이것은 “합력하여”(together)라는 말씀 속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맛있게 구운 합을 제과점에서 볼 수 있는데 만약 빵을 만드는 사람이 모든 재료를 섞어서 빵을 만들지 않고 그 재료를 따로따로 먹는다고 가정합시다. 그 사람은 밀가루 두 컵을 먼저 먹을 것이며, 이것은 삼키기가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설탕 한 컵을 먹어야 되겠죠. 그 사람이 평소에 설탕을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그 많은 양의 설탕을 한꺼번에 먹기란 괴로운 일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반 파운드나 되는 버터를 먹고, 그 다음에는 이스트 두 숟갈을 먹습니다. 하지만 그 맛이 어떻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이런 식으로 먹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맛있는 빵을 만들려면 조리법대로 모든 재료를 함께 잘 섞어서 반죽을 하여 냄비 위에 올려놓고 시간과 온도를 잘 조절하면서 구워내야 합니다.
의사가 처방전을 써주면 약사는 그것대로 각 재료들을 함께 잘 섞어 약을 조제합니다. 그 재료 중에서 어떤 것은 쓰기도 하고, 어떤 것은 달콤할 것이며, 또 어떤 것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도 할 것이며, 또 어떤 것은 심지어 독성이 있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재료들은 한꺼번에 병 속으로 들어갈 것이며, 우리는 병에 붙어 있는 상표에서 “잘 흔들어서 복용하십시오”라는 안내문을 볼 수 있습니다.
4중창은 화음의 결과로 나오는 조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입니다. 네 명의 성악가가 내는 소리가 함께 잘 조화될 때 비로소 작곡가가 의도한대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굽은 것과 곧은 것, 어두운 것과 밝은 것, 작은 것과 큰 것 등 모든 것을 사용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다섯째로, 바울은 계획된 결과 때문에 찬양했습니다.
이것은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 속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사용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징계도 역시 우리의 선(유익)을 위한 것입니다(히
여섯째로, 바울은 이상의 모든 사항들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찬양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말씀 속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란 거듭난 사람, 곧 구원받은 사람을 의미하며,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에드가 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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