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것들
-N. 크로포드
연약함과 죄
R. C. 트렌취가 쓴 “신약의 동의어들”(Synonyms of the New Testament)이란 책의 한 단원에는 죄라는 단어와 이것에 관련된 단어들을 참조해 볼 수 있도록 신약에 사용된 9가지 단어들이 논해져 있습니다. 연약함은 이 목록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연약함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죄와 혼동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연약함이 죄의 결과 중 하나로서 인류에게 주어진 분깃임에는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Astheneia, asthenes, astheneo라는 단어들은 “강한”(Strong)을 뜻하는 단어 Sthenos의 부정형(不定形)이며, 따라서 그 단어들은 로마서
Astheneia라는 단어는 사도행전
이 단어 가족의 여러 가지 용도는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님의 대제사장 사역을 이해하는 일을 돕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연약과 가난과 무능을 수반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이시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만약 이 말씀 가운데 나와 있는 “연약함” 이란 단어를 “죄”라는 단어로 바꾼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일일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대제사장께서는 이 땅에 인자로 계실 때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십니다.” 그분은 죄를 동정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분의 부드러운 마음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십니다. 그분이 연약에 쌓여 있는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시는 것과 그들이 죄를 범했을 때 변호해 주는 대언자의 역할을 수행하시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 앞에서 그처럼 온유하시고 체휼하시는 대제사장이 되실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자(人子)로 계실 때 받으신 고난 때문이며, 만일 믿는 자들이 죄를 범했을 때 그분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실 수 있는 것도 역시 죄를 위해 받으신 그분의 고난 때문입니다(요일
겸손과 자기 비하(卑下)의 차이
죄악된 피조물인 우리는 자칫하면 극단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을 모두 인정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은혜와 진리가 완전한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가치를 살필 때에 참으로 균형을 잡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우리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요.”
우리는 참으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요?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죄로 인해 천국으로 갈 만한 가치가 전혀 없고 오히려 지옥과 불못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치가 없는 사람은 전혀 없으며 사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든 사람은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양 한마리와 동전하나, 그리고 아들 하나는 한 영혼의 가치가 말로 할 수 없이 귀하다는 것을 주요 주제로 담고 있는 3부작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가 자기에게 완전한 파멸을 가져왔다는 것과 자기는 사랑스럽지가 못하며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평가할 때는 참으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님의 눈에는, 그 분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실 정도로 우리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마
우리는 지금 쉬운 주제에 달라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표현하든지 간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오해할 것입니다. 자기를 매우 비하시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교만은 가장 널리 퍼진 죄악들 중의 하나이며, 사단의 타락의 원인이었으며, 그 이후로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라는 말씀과(벧전
수 많은 성도들이 그 중에서도 특히 영적으로 성장한 많은 경건한 자매들이 자기는 참으로 무가치하다고 믿을 정도로 가련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와 같은 종류의 생각은 침체라는 열매를 맺을 뿐만 아니라 사단은 그들에게 가치 없는 자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유용성을 방해하고 주님을 기쁘게 섬기지 못하도록 낙담시킵니다.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 수 년 동안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온 그리스도인이 회의에 빠져 있다고 고백하면서 전도자에게로 접근해 올 때 그는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이 때 상대방의 문제를 잘 듣고 후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때때로 신중한 질문들을 던져보는 것은 상대방이 그리스도인으로써 실패자라고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적인 삶이건 사적인 삶이건 간에 그의 삶의 모든 부문에서 자기 자신을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실패자로 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대개 거짓 고백자가 아니며 그렇다고 이것이 겸손도 아닙니다. 이것은 다만 마비시키는 침체일 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로마서
자기 아들을 사랑하시는 바로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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