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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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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5. 20:13 빛 가운데로 걸으며

기독교계의 폐허상태

- 고린도전서 3 -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이 주님의 명령하신 것을 잊어버리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다. 그것이 우리가 순종해야 할 진리에 관계된 것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또 하나님을 경험할수록 우리는 더욱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 이 말은 어떤 결정의 순간에 우유부단해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 가운데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바로 인정하게 되고, 심령이 가난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님의 영광이 자기 백성들의 실패에 의해 얼마나 자주 가리워지는가 하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가 초대교회의 상태와 위치에서 너무도 멀어진 것으로 인해 마음이 아프다. 교회의 이러한 폐허상태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마음에 짐을 느끼지만 절망만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깨끗한 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과 함께 교회의 이러한 폐허상태에 대해 공감하는 그리스도인들과 약간의 교제를 갖고자 한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두가지 관점을 가져야한다. 그리스도에 의해 건축되는 교회 혹은 모임과 그리고 사람, 즉 그리스도의 종에 의해 건축되는 교회가 그것이다. 그리스도에 의해 친히 세워지는 교회는 결코 실패할 수 없다. "음부의 문이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나 주의 종들에 의해 세워지는 교회는 항상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성쇠가 좌우되어 왔다. 세상적이거나 육신적인 생각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기도 하고, 충분한 생각과 합당한 분별없이 여러 가지 생각을 좇아 교회가 움직임으로써, 주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기도 하고, 교회 스스로 수치를 입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강한 훈계의 말로 권면하는 것을 보게된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무익하다못해 썩어 없어질 것들로 교회를 채우며 화를 자처하고 있었다. "나무나 짚이나 풀"로 교회를 건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거기에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는 커녕 허무는 일에 일조하고 있었다. 가치없는 재료로 교회를 세우는 사람은 장차 그 사람의 일한 것이 불에 타버리게 되지만 구원은 받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을 더럽히거나, 파괴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다 건축자라는 사실을 보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칭의의 두가지 면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에서 죽은 돌이 아닌 산 돌(living stones)로 건축하게 되면 결코 실패는 있을 수 없게 된다. 한편 성공할 수 없는 건축이란 많건 적건 부주의하고, 사람의 생각에 따라 봉사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좇아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을 욕되게 하는 하나님께 가치없는 것으로 건축재료를 삼는 것을 말한다.

그 결과로 혼돈과 무질서가 초래된다. 이러한 교회의 타락된(perishable) 모습이 세상에 가득하다. 이렇게 "나무나 짚이나 풀"과 같이 썩어질 것으로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교회 내에 분열을 가져오고, 다음과 같은 결과를 쉽게 맺게 된다. 즉 이러한 교리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나, 거듭났다 하더라도 육신적인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교회의 폐허상태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사람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불러 내셨으나, 이스라엘은 곧 하나님의 목적에서 실패하게(ruin) 된다. 이방인도 하나님의 인자에 계속해서 거하지 못하는 일로 인해 우리가 놀랄 필요가 있겠는가? 로마서 11장에 보면 사도 바울도 그러한 일로 인해 크게 놀라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원칙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진전되어 간다. 항상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은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못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폐허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로마 카톨릭이나 교회진리로부터 변질되었지, 개혁교회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은 개혁교회에 대해 무엇이라고 할까? 아무튼 선한 양심과 신령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핑계없이 그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다만 일반적인 진리에 대한 경우에 말하고 있다. 첫 사람 아담이 실패하자 온 인류가 실패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위대한 사실이 있다. , 둘째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으로써 영원히 쇠하지 않고, 멸하지 않는 새창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일한 원칙이 더욱 널리 확대되었다. 우리가 사람의 책임문제에 대해 통감하고 있다면, 곧 이러한 폐허와 혼돈상태에 처하게 된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정직하다면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경건하고 양심적인 사람은 그러한 표현에 낯설지라도 그 사실을 통감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미쁘심을 손상시키는 일로 인해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다. 교회가 그것에 대해 애통하는 마음이 없이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는 어떤 유명한 고교회파(high-church) 지도자를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경건한 사람으로 현재 교회 상태에 대해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마음이야말로 실제적인 경건이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요, 그리고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증거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반하는 교회의 상태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없이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지금 19세기 교회의 외적인 성장을 자랑하는 그리스도인보다는 교회의 폐허상태로 인해 애통해 하는 그리스도인들과 마음을 같이 하여, 교회의 수고의 열매로써 장차 나타나게 될 영광을 바라고 있다. 주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 감각이 없는 사람과 어찌 형제 사랑을 나눌 수 있단 말인가? 이 일은 실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사단의 손에서 놀아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 윌리엄 켈리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