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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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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의 여자들의 책임

교회의 집회들

거투루드 할로우

 

이제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 또는 기도, 성경 공부, 복음전도를 위해 교회가 함께 모였을 때 여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잠잠함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와 같은 활동은 남자들이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들은 모든 참석자의 예배와 찬양을 육성으로 표현해야 할 책임과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를 인도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활동에 있어서 여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찬송을 부를 때에는 여자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지만 다른 때에는 속으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34과 디모데전서 2:11을 주의깊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와 같은 명령들을 분개해야 할 사항으로 생각하기보다 하나의 도전으로 여깁니다. 왜 도전이냐고요? 그 이유는 자매들은 자칫하다간 그저 뒤로 물러 앉아 남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는 태도를 보이기가 매우 쉽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를 인도하는 일은 관심과 노력을 요구합니다. 이와 같은 일은 남자들이 하기로 되어 있으며 때문에 그들은 이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이 일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듣는다든지 들은 말씀에 대해 감사를 표명한다든지 하는 등등의 보상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소리 없이 마음 속으로만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일은 훨씬 더 많은 훈련과 집중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러분의 마음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것을 아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명하신 것을 우리가 하는 것을 보실 때 그분은 기뻐하십니다. 비록 여자들이 소리없이 예배를 드릴지라도 주님께서는 소리로 표현된 것과 동일하게 그것을 귀히 여기십니다. 그분이 예배에 관한 최고의 가르침을 주신 대상이 바로 여자였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21~24). 또 그분은 다른 여자의 예배의 행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26:6~13).

어떤 여자들은 여자들이 교회 집회 때에 잠잠해야 된다는 명령에 화를 내며 생각하기를 그 명령은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기들도 남자들 못지않게 전도하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왜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란 것을 말씀을 통해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를 원할까요? 공적인 입장을 취하려는 이 욕심은 자신도 모르는 교만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닐까요? 이것은 그들이 자기들도 남자들 못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를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일 그렇다면 여자들이 공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정말로 주님을 영화롭게 해드릴까요? 자매들이 다음과 같이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주님, 저는 이 명령에 대한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님의 위대하신 지혜를 믿으며 그것을 순종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분과 저는 교회의 전도와 가르침 시간에 입을 열지 않고서도 뚜렷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요? 기도를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책임은 주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들과 교사들을 인도하셔서 그들이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는 일을 도와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성령님께서 듣는 자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감동시켜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축복도 없고 열매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 전하는 형제를 기도로 지원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말씀을 전하는 형제들과 동일하게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결혼한 자매이면 여러분의 남편이 모임에서 하는 역할과 그것을 얼마나 잘 하느냐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남편에게 어떤 종류의 아내가 되고 있습니까? 자기 남편을 영적으로 도와 주며 기도로 남편을 지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주님께 대한 여러분 자신의 헌신의 본으로써 남편을 격려하여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일을 일요일에만 제한하고 나머지 날에는 세상과 여러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삶으로써 남편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여자는 교회의 집회에서 조용해야 하지만 교회에게 미치는 여자의 영향은 선한 쪽이든 악한 쪽이든 지대한 것입니다.

교회의 집회에서 가져야 할 자매들의 또 하나의 책임은 방문자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며 특히 복음 집회 후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환영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어야 하며 마음 편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권유하여 다시 오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큰 교회의 두 자매는 복음집회 동안 뒤에 앉아있으면서 방문자들을 쉽게 알아낸 다음집회가 끝나면 그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음으로 해서 여러분의 교회를 다시는 방문하지 않는 불신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팀을 지어 갖가지 중요한 책임을 수행함으로써 모두 다 주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축복을 위해 합력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교회의 공적 집회가 아닌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는 여자들도 육성으로 공적으로 참여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될 것입니다. 그런 모임에서는 여자들도 질문이나 설명 따위를 할 수 있을까요? 자유로운 가정 성경공부나 캠프 또는 다른 집회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자 선교사가 자신의 사역에 관해 교회에 보고를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집회는 교회의 집회로 간주하고 어떤 집회는 교회의 집회로 간주할 수 없을까요? 이와 같은 문제들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을 참조하시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

1. 성경은 자매들이 주님 안에 있는 형제들을 주관하는 기미를 보이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금하고 있습니다(딤전 2:12).

2. 우리는 주님 안에서 우리를 다스리는 교회의 장로들의 뜻에 불평하거나 비평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 기쁘게 순복해야 하며 이것이 우리가 그들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때도 그리해야 합니다. 이것은 화합과 복된 교제에 기여할 것이며 우리의 구주께 영광을 들리게 될 것입니다.

 

머리를 가림(너울을 씀)

교회의 집회에 관한 중요한 가르침이 고린도전서 11 17, 18, 20,33,34절에 주어져 있습니다. 이 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징을 볼 수 있습니다 :

머리, , 포도주. 우리가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모일 때마다 우리는 부수어진 그리스도의 몸과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에 참예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예식을 친히 제정하셨으며, 우리가 이것을 행하여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분과 그분의 죽음을 그분이 우리를 데리러 오실 때까지 기념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본 장에 나오는 세 번째 상징인 머리, 곧 벗은 머리와 쓴 머리는 똑같이 중요한 상징입니다.

왜 남자는 교회에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예배와 기도를 드려야 하며, 왜 여자는 미리에 쓰고 예배와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이것은 머리됨의 문제를 예시하기 위함입니다. 3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1.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2.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3.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성경은 주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5:18, 2:6).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머리가 하나님이시란 말씀을 읽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머리됨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또는 남자와 여자의 동등성을 부인하는 것과 전혀 관계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 질서의 문제와 관계 있습니다.

4절은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면 자기 머리를 욕되게 한고 말합니다. 이 머리는 어떤 머리를 가리킬까요? 실제의 자기 머리가 아니라 주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남자가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기 때문입니다(7). 그러므로 남자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에나 기도를 인도할 때 또는 예배를 드릴 때 자기 머리를 가리워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감취어져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5절은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고 기도나 예언을 하면 자기 머리, 곧 남자를 욕되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에 대한 이유는 7절 끝에 주어져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므로 남자의 영광은 반드시 가리워지거나 감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교회 안에 드러나야 되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영광(여자)이 가리워지지 않는 것은 남자에게 부끄러움을 갖다 줍니다. "욕되게 하다"에 해당하는 헬라 원어는 완전히 부끄럽게 하다는 뜻을 지닌 강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남자가 자기 머리를 가리고 나타난다든지 여자가 자기 머리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것은(설혹 고의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남자의 머리시라는 것을 부인하는 행위요, 그리스도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존귀를 받지 못하시게 만드는 행위 입니다.

10절은 여자의 너울을 "권세 아래 있는 표"라고 칭합니다. 여자가 너울을 쓰면 그것은 그 여자가 남자에게 주어진 권세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여자는 자기 지도자한테 복종한다는 뜻입니다. 여자는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남자에게 복종하고 남자는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이 땅 위의 질서입니다.

왜 여자는 권세 아래 있는 표를 자기머리에 두어야 할까요? 남자들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천사들 때문에 그렇습니다(10) 그렇다면 여자들의 너울 쓰는 것이 천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에베소서 3:10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한 천사이건 악한 천사이건 간에 하늘에 있는 천사적 존재들에게 자신의 위대한 지혜를 보시기 위해 교회를 상징, 또는 실물교수로 사용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개인 즉 (머리에 쓰지 않은)남자와 (머리에 쓴) 여자를 사용하여 동일한 존재들에게 머리됨, 권세, 복종에 관하여 가르치고 계십니다. 교회의 집회에서 자기 머리를 가리운 여자는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머리되심에 대한 복종을 실물교수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행위로 그녀는 악한 천사를 몹시 책망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들의 죄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순종의 천사들이 아무것도 쓰지 않은 남자의 머리를 볼 때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이것은 가리워지지 않은 하나님의 영광과 받아들여진 하나님의 권위를 잘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의 머리카락이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어졌다고 말합니다(15). 그러나 여러분이 15절을 5절과 함께 대조하면서 읽어 보면 이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머리카락이 쓰는 것과 같다면 5절은 다음과 같이 고쳐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여자로서 머리카락 없이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6절에서 우리는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머리카락이 쓰는 것과 같다면 머리에 쓰지 않거든" 이란 표현은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을 뜻할 수 밖에 없으며 이렇게 되면 머리카락은 깎여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자기는 머리에 쓰는 주제에 대해 성경을 친히 상고해 본 후 주님을 기념하는 집회 이외에는 너울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그 때조차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설혹 진실한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틀림 없다 해도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말씀 공부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자기들보다 선배인 사람들, 그래서 그 주제에 대해 달리 생각하는 주님 안의 많은 형제들보다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과 저는 각기 개인의 견해를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 견해가 하나님께서 저 위에 세우신 분들의 견해, 주님께 대해 저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의 견해( 13:17)와 다를 때 저는 그 견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남자들을 기쁘게 할 목적으로 너울을 쓰는 것이 위선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그런 동기로 너울을 쓴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만약 여러분의 뜻에 어긋날지라도 장로들에게 순종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너울을 쓴다면 이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할 정도로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물론 여러분이 이 행위의 의미를 이해하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어떤 형태로든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너울을 쓴다면 그것은 훨씬 더 좋은 일입니다.

15절에서 우리는 긴 머리가 여자에게 영광이 된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자들의 머리가 얼마나 길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읽을 수 없지만 남자들의 머리보다 더 길어야 합니다(남자의 긴 머리는 그 머리를 가진 남자를 욕되게 합니다. 14). 여자의 머리는 본래 남자의 머리보다 깁니다. 여자는 이와 같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자기는 남자처럼 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원하시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이 고린도전서 11장을 다시 주의깊게 읽는다면 여러분은 여자가 두 가지 영광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7절에서 우리는 여자가 남자의 영광이라는 것을 보게 되며, 15절에서는 여자의 긴 머리가 여자의 영광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두 가지가 다 가려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너울로 자기 머리를 얼마만큼 덮어야 할까요? 이 크기에 대해서는 성경에 언급된 바가 없지만 리본같은 조그만 머리장식이나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망사 같은 것은 실제로 머리를 가리지 않는거나 다름 없다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머리(영광)를 가린다기보다 머리의 외관에다 무엇을 갖다 붙인 꼴 밖에 안됩니다. 또 값비싼 모자는 다른 여자들의 주의를 끌므로 좋지 않습니다. 머리에 쓰는 것은 베일이나 너울 정도면 합당하다 하겠습니다.

여자는 몇 살부터 너울을 써야 할까요? 얼마나 어리건 간에 주님을 자기 구주로 영접한 여자는 누구나 이 명령을 순종함으로써 주님께 대한 자기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려 할 것입니다.

언제(또는 어떤 장소에서) 여자는 너울을 써야 할까요? 저의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교회의 집회에서.

2. 기도나 성경 공부 시간에 다른 여자들을 인도할 때.

3. 너울을 써야 될지 안 써야 될지 확신할 수 없을 때. 왜냐하면 자기를 위해 너무나 많은 일을 해주신 주님을 슬프시게 해드리는 모험을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의 머리를 가리우라는 명령은 우리 여자들에게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주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하는 셈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며 시간과 돈과 힘의 소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사용해야 할 때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잘 접어 손가방 속에 넣어둔 베일이나 너울뿐입니다.

하지만 이 명령은 결코 경히 취급되어서는 안됩니다. "경건한 모세가 반석을 두 번이나 침으로써 영광의 주님에 대한 상징을 망쳐 놓은 결과로 비통한 손실을 감수해야만 했던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모두는, 우리도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영계의 눈에 사랑하는 주님과 그분의 권위, 그분의 영광의 찌그러진 그림을 보여주는 죄를 범하고 있지나 않나 하는 두려움으로 몸을 떨어야 합니다. "

어떤 사람들은 외모보다 마음 상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한 자매가 머리를 가리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면서도 냉랭한 마음을 갖고 다른 일에 주님께 불순종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자매는 진짜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신실히, 효과적으로 섬기면서도 이 행위의 의미에 대한 가르침을 받지 않은 탓으로 교회 집회에서 자기 머리를 가리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그녀에게 설명해 주면 그녀는 이 명령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하고, 만약 그녀가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참으로 원한다면 그녀는 이것을 기꺼이 순종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자매들이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이 소위 다른 사람들이 "형제들"이라고 칭하는 그리스도인들 그룹의 여자들만이 갖는 독단적인 관습이 아니라는 것과 장로들이 권위를 세우기 위한 한 방편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무 것도 진리를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은 아름다운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주님의 만찬의 떡과 잔의 상징처럼 똑같이 중요합니다.

 

요약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를 인간의 가정에 견주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인간의 가정 안에서 남편은 일정한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있고 아내는 아내대로 다른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 다 동일하게 중요하고 동일하게 필요하며, 어느 한 쪽도 다른 한쪽을 온전히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 중 어느 한 쪽이 빠진 가정 안에는 얼마나 큰 간격이 있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 안에서도 남자들과 여자들이 둘 다 필요한 것입니다. 남자들은 일정한 재능과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일정한 재능과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그룹 다 필수적입니다. 각 그룹이 하나님께서 특히 각자에게 적합하게 만드신 임무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지정하신 업무들을 잘 수행해 나갈 때 그 교회는 복이 있는 모임입니다.

가정에서는 아내가 자가 남편에게 새는 지붕이나 새는 수도 꼭지 등을 고치는 일을 떠맡길 때 매우 즐겁습니다. 그렇다면 왜 교회에서 여자가 하나님께서 남자들에게 맡기신 업무와 책임을 떠맡아야 할까요?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그분은 항상 아버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 행하셨으며( 8:29), 아버님의 뜻은 그분의 첫째 관심사였습니다( 22:42). 이보다 수 세기 전의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삼상 15:22). 이것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떤 놀라운 희생적인 방법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에 대해 말하면서도 때때로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작고 쉽고 하찮게 보이는 일에 주님께 순종하지 않으려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다 중요하다는 것과 하나님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의 사랑의 순종을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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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