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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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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 16. 10:37 말씀 안으로

나무의 비유

 

구약성경 사사기에서는 이스라엘 역사의 실패와 망함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계 2,3장의 일곱교회와도 유사한 점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그들을 다스리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데 사용함을 받았던 하나님의 사람을, 그들은 너무나도 성급히 높이기를 원하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으로부터 그 요청을 거절당하자 그들은 대립되는 기드온의 칠십 아들을 악하게 살해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아비멜렉에게로 향했던 것입니다. 그때 아비멜렉이 기드온의 칠십아들을 살해할 때에 말째아들 요담이 그 위험 가운데서 몸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상황을 나무의 비유로 선명한 예를 들어 선언했던 것입니다. 이 비유를 읽고 또한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교훈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감람나무(9:8,9) 제일 먼저 이 나무에게 모든 나무들을 다스려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나무는 세상에서 여호와를 나타내며,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로서 열매가 풍성한 생산적인 나무입니다( 4장 참조). 그러나 이 나무는 제의를 거절하며 이르기를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높여 왕좌에 앉는 그것보다도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열매맺는 봉사를 즐거이 택하였던 것입니다.

 

2. 무화과 나무(10,11) - 감람나무에게 거절 당하자 이번에는 무화과 나무에게로 가 동일한 제의를 했습니다. 이 나무 또한 힘과 생명력을 유지케 해 주는 것을 공급하는 나무이며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좋은 열매맺는 무화과 나무이어야 했었습니다만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24장 참조).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시장함을 느끼셔서 가까이에 있었던 무화과 나무에게로 열매를 얻을까하여 다가가셨습니다. 그러나 아무 과실도 발견치 못하시자 그것을 보시고 저주하셨습니다. 이것은 후에 열방에게 닥칠 심판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무화과 나무의 대답을 주의해 봅시다.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그것 또한 자기를 높이고 남의 눈에 띄는 위치를 택하는 것보다 다른 이들을 위한 열매맺는 봉사를 더 기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3. 포도나무(12,13) - 이도 또한 동일한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 나무 역시 포도를 냄으로 포도주를 공급하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나무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위한 좋은 열매맺는 포도나무로 심기워서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습니다 (5:1~4). 이스라엘은 참포도나무가 아니었습니다. 참포도 나무는 주 예수님이십니다. 포도나무가 이르기를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라고 했습니다. 포도나무 역시도 자기를 높이는 것이나 권력의 자리보다도 차라리 열매가 풍성한 봉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4. 가시나무(14,15) -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열매없고 가치없으며 비생산적인 나무입니다. 그러한 그에게 모든 나무들 위에 왕이 될 것을 제의했습니다. 이 나무가 우월감에 젖어있는 모습을 이 말씀에서 암시해주고 있는데 독재적인 법은 불순종 할 때 협박이 따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아비멜렉의 뒤에 일어나는 역사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를 삼년간 삼켰음을 그늘로 묘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위해 열매맺는 봉사보다 다스리기를 더 원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리스도의 다스림보다 사람의 다스림을 더 원함으로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요담의 심판과 멸망의 예언이 아비멜렉과 그를 좇은 자들 위에 내려진 것을 삿 9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비유의 가르침은 교회역사를 통하여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인데 사람들은 언제나 영적 봉사와 열매맺음 보다는 다스리기를 더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것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지역모임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기보다는 다스리기를 더 원하는 함정으로 빠져버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참 영적 지도자에게는 열매맺는 봉사에 의하여 그 증거가 분명이 나타납니다. 마치 감람나무나 무화과 나무 그리고 포도나무처럼 - 조용하고 성실하며 희생적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쁨으로 섬기는 자입니다. 이러한 것을 떠나서는 가시나무의 다스림뿐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비춰봅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23:12)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