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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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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18. 12:58 횃불/1993년

복된 소망

이 춘 원

소망은 생명 안에서 나옵니다.

죽은 자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전혀 소망이 없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소망 중에 삽니다.

 

어느 날 필자가 시장에 갔다가 시장통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아주 장사를 잘하고 사교적으로 친절하고 싹싹하게 사람을 끄는 부인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나도 그 아주머니에게 호감을 느껴 물건을 살 때는 주로 그 가게로 갔습니다. 비록 가난한 부인이었으나 남편과 더불어 열심히 벌어서 몇 년만에 자기 가게 터가 딸린 주택도 구하고 행복하게 자녀들과 같이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날 만난 아주머니는 동일한 시장통 아주머니였으나 그녀의 얼굴에는 큰 불행의 그림자가 어려있었습니다. 평상시와 같이 물건을 사면서 그녀에게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했더니, 뜻밖에도 남편에게서 얻어 맞은 상처를 가리키면서 자기는 더 이상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때는 부자가 되려고 두 부부가 함께 열심히 일했으나 막상 돈을 벌어 잘 살게 되니 남편이 바람을 피워 딴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것입니다. 불행한 여자가 된 정도가 아니라 무시받고 버림받은 여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더 불쌍한 여인이 되다 못해 이혼을 당하여 아주 잊어진 여자가 될 것입니다. 모든 의욕을 잃은 부인은 아주 절망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부인처럼 더 이상 무력해지거나 침체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비록 어둠이 빛을 몰아내는 것 같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 같으며 육신적인 것들이 신령한 것들을 무시하는 현실 속에서 전혀 소망이 없는 것 같지만, 우리에게 찬란한 큰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같이 새 생명에 참예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일찌기 전도자는, 모든 인생들이 그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모든 산 자 중에 참여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9:3,4)라고 말씀했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 구원과 속죄와 칭의와 거룩함과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입니까! 죽은 자, 비구원자, 세상 사람, 지옥으로 멸망하는 불신자들에게 무슨 소망이 있으리요.

소망은 생명 안에서 나옵니다. 죽은 자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전혀 소망이 없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소망 중에 삽니다. 거듭난 성도는 그 죽음에도 기뻐하고 소망이 있음은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고 그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보호함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146:5).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성도의 소망이 전적으로 주님께 있으매 비록 이 세상에 잠시 살 동안에도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신자가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것은 그 믿음의 소망을 주님께 두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대상이 주님께 있지 않고(비록 구원을 받았다 해도) 세상과 정욕과 쾌락과 물질과 이익추구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있는 사람들은(그리스도인) 참으로 불행합니다. 그것들은 다 쇠하고 낡고 불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고 사는 자는 인생의 소망이 끊어지고 그 영혼이 취해감을 당할 때 그는 진노를 당하고 그의 모든 재물과 영화는 사라지고 맙니다.

 

필자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한 성도는 구원 초기에는 주님을 성실히 섬겼습니다. 그러나 사업이 바빠지다보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교회에 나오는 것도 힘들어지다가 급기야는 한 달에 한 두번 나오는 출석도 어려워졌습니다. 그간 사업이 번창하여 돈도 제법 벌고 주위에서 명성도 얻게 되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고 세상적으로 변해 갔습니다. 어쩌다가 그를 만나 교제해 보아도 그의 영성은 아주 어두워있고 간증도 기쁨도 그에게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저희 집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그의 부인 자매의 다급한 요청이었습니다. 남편이 고혈압으로 쓰러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필자가 병원으로 급히 달려가 보니 그 형제는 혼수상태에서 중환자실에 아무 말없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 형제의 창백한 얼굴에서는 아무런 빛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두 눈에는 눈물도 없었고 오직 충혈된 힘없는 눈동자만 보였습니다. 그것이 그 형제의 최후였습니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우리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것이 전부입니까? 아닙니다. 구원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열매를 맺어야 하고 구원에 이를 때까지 전심으로 주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결혼도, 사업도, 공부도, 아니 세상의 육체적인 연습을 약간씩 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인양 그 일에만 몰두하고 주님을 잊고 등한히 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 모든 일들이 주님을 믿고 섬기기 위한 도구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본업입니다.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은 항상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을 위한 일이 아니면 안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지금 주님께 자복하고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지혜와 용단과 인내를 구하고, 하나님을 알고 배우기를 힘쓰고, 깨끗한 심령으로 주님을 경외하는 성도들과의 예배와 모든 교제에 힘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을 계속 유지시키고 충만케 하는 근거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실천하는 것이며, 겸손히 회개하고 근신하는 자세로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믿음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겸손히 섬겨가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는 구원에 이를 때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을 경외하여 섬기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2:12). 소망이 없는 이방 세인처럼 살아가면 그 결국은 부끄러운 불 가운데서 겨우 건짐을 받는 구원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구원의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된 것을 말씀 안에서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강한 믿음을 소유한 심령 속에 있는 새 의지(意志)입니다. 육신의 눈은 가까운 것만을 보지만 내적인 영의 눈을 가진 사람은 먼 것을 바라봅니다. 그의 얼굴과 눈은 빛을 향해 해바라기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청초한 수목들은 빛과 이슬을 소망합니다. 무엇을 소망하고 어떻게 간구드리느냐에 따라서 인물의 존재 가치와 생활 방식이 결정됩니다.

 

구체적으로 새 해에는 이런 소망과 이런 비젼(vision)을 가지고 주님을 위하여 살고 싶습니다.

처음 구원을 받았을 때와 같은, 그런 새 믿음, 새 소망, 새 사랑, 새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 모든 것이 주님 안에서 순수하게 영적으로 성장하고 세상적으로 발전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순전한 말씀만을 먹고 온전히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안위하심 속에서 사랑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형제 자매님들을 육신의 기준으로 간주하지 말고 영적인 눈으로 주님처럼 대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관용하고 존경함으로써 신뢰하기를 원합니다. 육체대로 알고 연약한 단점을 말하거나 주님에 관한 것보다 세상에 관계된 이야기를 많이 하던 나쁜 버릇을 고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영적인 계시의 눈을 밝게 뜨고, 신약 교회의 진리를 따라서, 한 몸된 모임을 흠과 티와 주름 잡힌 것이 없도록 보전하고 연합하고 봉사하여, 그 기업의 영광이 풍성하게 나타나도록 힘을 씁시다( 1:18, 4:4).

우리 성도 속에 계신 영광의 소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 땅과 온 이웃에게 광포하는 복음의 소망이 넘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불변하는 영생의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늘에 쌓아둔 좋은 소망으로 인하여 날마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오시는 복스럽고 환희에 넘치는 소망을 모든 신자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가진 모든 신자들은 영생의 소망을 따라 기업을 이을 후사가 되는 약속을 얻었습니다.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서는 복음의 소망으로 전파되고 성도들에게는 내재하시는 그리스도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소망은, 죽은 자의 소망인 부활을 믿는 신앙 고백으로 인하여 고난의 대열에 용감하게 나아갔습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 모든 성도들도 피조물과 함께 탄식하며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휴거의 소망을 뜨겁게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참 소망을 가지고 믿음의 담대한 용기로써 선한 싸움을 경주하는 것이 마지막 세대의 주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는 비밀의 경륜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되신 교회는 전혀 불변하고 부동하는 견고한 약속의 말씀으로 영원히 보장을 받고 있습니다. 이 소망의 진리가 엄청나게 커서 아골의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을 수도 있고, 십자가에 처형 당하는 비참한 희생도 감수할 수 있으며, 감옥과 사자굴도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이는 그 믿음과 소망이 영생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39:7).

 

(1993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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