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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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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16. 17:37 횃불/2001년

보혜사 성령님(3)

하롤드 p. 바커

오순절의 능력

오순절 성령 강림의 대 사건을 그렇게 중요하게 만든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오순절은 지상에 새로운 것이 창설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기독교가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교회의 탄생일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루려고 뜻하신 새로운 것이 세워질 때는 성령님 자신이 친히 오셔서 그것을 창시하십니다. 창시는 반복되는 적이 없었습니다. 오순절이 두 번 반복된 적이 없습니다. 어찌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어느 사물의 존립이 한번 이상 반복될 수 있겠습니까? 종은 집회가 시작될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기 위하여 울립니다. 집회가 시작되는데도 종이 계속 울리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오순절이 실제로 의미한 바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오늘날 오순절의 재현을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그것이 성령님께서 그것을 존립시키기 위하여 오셨을 때 하나님의 확증의 여러 가지 표시로서 이 지상에 제때에 시작된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성령님의 연합과 능력

구약시대에 주님을 경외하던 사람들은 때때로 서로 가까이 만나서 피차에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생명적 관계란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상자 속에 담겨 있는 사과들과 똑같았습니다.

상자 속의 사과가 서로 꼭꼭 눌러져 있긴 하지만 연합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자에서 쏟아 놓는다면 사과는 제각기 사방으로 굴러갈 것입니다. 사과를 하나로 연합시켜 주는 것이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인 상호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인체를 비유로 사용합니다. 신자들은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입니다. 그래서 어느 사람이 길바닥에 넘어진다 하더라도 그의 손가락들과 발, 눈과 귀는 상자를 쏟았을 때의 사과들처럼 제각기 굴러 동그라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 지체들은 상호 연합되어 한 생명체의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섭리 아래 살던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과들의 경우와 같았습니다. 우리는 오순절 날 성령님께서 모인 각 사람에게 임하시므로 형성된 한 생명체의 지체들입니다. 한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내주하심으로 우리는 함께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몸은 단체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라는 사실을 다시 강조합니다.

친목회는 하나의 단체입니다. 여기에는 회장, 부회장, 서기, 회계 및 운영위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체는 그와 같은 식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체는 회장, 서기, 회계 및 운영위원회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인체를 지배하는 것은 머리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그와 같습니다. 그 몸을 인도하며 지배하는 것은 그 몸의 머리이십니다. 그리고 그 몸의 지체들은 그 머리의 여러 가지 아름다움이 그들 속에 재현되게 하기 위해서 지상에 남겨져 있습니다.

오순절에 형성된 연합의 대 진리가 우리의 삶을 점차 깊어지게 해서 만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한 지체가 된 자로 항상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함으로 우리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게될 것입니다( 4:3).

셋째로, 오순절의 특기할만한 것은 그리스도의 종들이 새롭고 신기한 능력으로 힘입은 사실이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1:8)라고 부활하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24:49)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도들의 동기를 효과 있게 해줄 능력은 칼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위협해서 개종자를 얻는 수법은 마호멧(이슬람)과 그의 후계자들에게 해당된 것이었습니다.

기적들이 그 능력을 대신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적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새로운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증하며,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보증하는데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적이 복음에 대한 신앙을 낳는 능력이 되게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네 지역 사회

성령님의 강림과 관련해서 고찰해 볼 네 지역사회가 있으니, 이른바 그것은

(1) 유대인 그리스도인 사회.

(2) 사마리아인 그리스도인 사회

(3) 이방인 그리스도인 사회,

(4) 세례 요한의 제자들 사회입니다.

이상의 네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성령님과 세례를 받음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부분이 없고, 모두가 똑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는 그 한 몸에 연합되었습니다.

유대인 신자들이 성령님의 세례를 받은 것은 오순절 날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 신자들이 성령님의 세례를 받은 것은 사도행전 8:14~17, 이방인 신자들이 성령님의 세례를 받은 것은 사도행전 10:44~46, 그리고 요한의 제자들이 성령님의 세례를 받은 것은 사도행전 19:6에 각각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성령님의 세례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상의 네 지역사회인들 중에서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이 받은 모든 축복들을 교회에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후에 믿은 사람들은 그와 같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지 않고 오히려 구원 얻을 때 성령님께서 그 사람에게 내주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믿은 사람들은 그 한 몸에 연합되었습니다. 성령님 세례의 역사는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성령님 세례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 네 지역사회인들로 단번에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개개인이 성령님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성령님 세례의 중요성에 대한 유례없는 무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성령님의 임재와 하시는 일과 관련해서 사용한 일곱 가지 중요한 낱말이 있습니다.

(1) 거듭난다( 3:3,5,6).

(2) 안에 거하다, 혹은 내주하다(딤후 1:14, 8:11).

(3) 인치심을 받다(고후 1:22, 1:13, 4:30)

(4) 보증(고후 1:22, 1:14).

(5) 기름부음을 받다(고후 1:21, 요일 2:27)

(6) 충만하다( 1:15,41,67, 4:8,17, 5:18).

(7) 세례를 받다( 3:11, 1:5, 고전 12:13).

 

이상의 낱말들은 결코 서로 바꾸어 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뜻이 똑 같은 낱말이 둘도 없기 때문입니다. 각 낱말마다 그 자체의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하는 바 성경의 모든 낱말 그 자체가 시편 12:6이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이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이 순결하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불순물이 완전히 제거된 말씀입니다. 성경의 낱말 그 자체의 발탁 및 용법에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호소할 곳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아닙니다. <다음 호에 계속>

 

<2001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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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