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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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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19. 16:15 카테고리 없음

주님의 기도

요한복음 17:1~12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셨는지를 성도님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라는 기도를 가르치신 것을 기억하시죠. 이것을 베드로는 주의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의 기도가 아닙니다. 그 기도는 주의 기도가 아니고 제자의 기도입니다. 오늘 본 이 말씀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성경에 15번이나 주님께서 기도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 중에 11번이 누가복음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누가는 주님을 의지하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이 기도는 주님께서 하신 기도 중에 가장 긴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다락방 가르침이라는 가르침의 일부분이며, 성경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부분입니다.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까지가 한 단락입니다.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락방 교제, 또는 다락방 가르침이라고 흔히 불리는 부분입니다. 이것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앞의 4개의 장(13~16)은 주님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버지께 아뢰고 있습니다. 17장에서는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것, 주님 자신을 아버지께 의뢰합니다.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아버지께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을 먼저 말씀하셨고,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아버지께 아뢰는 것입니다. 13~16장은 먼저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르치고 난 뒤에 기도를 하는 것은 좋습니다. 주님께 속한 자들의 삶에 있어서 그 가르침이 영향을 끼치도록 그 가르침 끝에 기도를 하는 것이 과연 필요합니다. 이 다락방 교제에서 주님께서는 13장에서 시작하실 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위해서 내려다 보시고, 일어서시고, 그 다음에 앉으셨습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하심을 나타냅니다. 17장에 오게 되면 더 이상 밑을 내려다 보거나 아래를 향하지 않습니다. 17장에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보겠습니다.

1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 교제는 처음에 내려오시는 것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말씀을 마치고 기도하실 때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셨습니다.

이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13~16장까지 가르치는 이 부분을 시작하는 부분은 처음에 때와 아버지를 가지고 시작하였습니다. 13:1절을 보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가 이른 줄 아시고 여기서 때를 말씀하시고 아버지를 말씀하셨습니다. 16장의 마지막 32절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처음에 시작할 때 때와 아버지를 말씀하셨고, 그 가르침의 마지막에서 또 때와 아버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야 말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때였습니다. 요한은 복음서에서 때라는 말을 10번 기록하였습니다.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13:1에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을 주님께서는 아셨습니다. 16:32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고난과 슬픔의 때가 벌써 왔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60분이 이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6시간을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습니다. 때가 이르렀다는 그 의미입니다.

17장 기도의 부분으로 돌아가서 여기서도 역시 아버지와 때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그래서 기도의 부분은 아버지와 때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의 마지막 25절을 보면 의로우신 아버지여 여기서 아버지를 언급하셨지만 때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기도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더 이상 땅에 계시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기도하는 가운데 하늘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이 기도를 하는 동안 주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제자들과 함께 땅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다시보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지금 다락방에 있으며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상태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인데도 이미 영광가운데 들어가신 채로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이미 갈보리 십자가의 일을 이루신 것으로 여기고 계십니다. 11절을 보면 좀더 명확해 지는데요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런데 지금 세상에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계시지 않습니까? 이것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주님의 기도라는 것을 여러분이 염두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제자들과 땅에 계시지만, 이미 하늘에 계신 것으로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오늘밤 이것을 배우겠습니다.

17장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첫번째 부분은 1~5절까지입니다. 여기서는 주님께서 자기 자신에 관련해서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두번째 단락은 6~19절입니다. 제자들과 관련해서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는 아버지께 속한 자들을 위하여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세번째 단락은 20~26절입니다. 여기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하시는 부분입니다. 표현을 좀더 잘하자면 20절에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이 사람들만이라 함은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그 당시에는 구원받지 않았지만 이제 구원받을 사람들을 위해서 이때도 같이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교회시대를 포함하는 기도입니다.

좀더 다른 곳을 보면 우리는 17장을 세 구역으로 나누었는데 먼저 1~5절이었는데 주님께서 자신과 관련하여 아버지게 기도를 드린 부분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는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6~19절을 보면 주님께 속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때에 11절 중반에서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주님께 속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때에 거룩하신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한국의 여러 형제자매님들! 여러분은 로마 바티칸에 앉아 있는 사람을 아시죠? 그를 교황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룩하신 아버지라는 뜻의 교황은 이 거룩하신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한 분뿐이십니다. 그래서 땅에 있는 그 누구를 거룩하신 아버지(교황)이라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때에 왜 거룩하신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셨을까요? 고린도 후서에서 바울이 성도들에게 어떻게 쓰셨는지 기억하십니까? 7장에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으로 두려워하라고 기억합니다. 12:14에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버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또한 아드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성령께서 또한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도(거룩한 자)입니다. 벧전 1: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주님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를 거룩하신 아버지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25절에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세상과 관련되어서 아버지께 기도하실 때에는 의로우신 아버지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왜 그런지 저는 의문스럽습니다. 이 세상에는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불의한 세상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 동안에는 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32:1에 기록하기를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주님께서는 이후에 불의한 심판을 다루십니다. 그 날에는 우리가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위해서 옳은 판단을 해 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의를 위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기회인 것입니다. 거룩하게, 불의한 가운데서 의롭게 말이죠.

영어성경에는 I have라고 해서 완료형의 표현이 있습니다만 매우 소중한 표현입니다. 4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이루셔서 완료했다는 뜻의 이루어 입니다. 또 하나의 이루어가 나오는데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를 땅에서 영화롭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6절에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8절에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이 하셨다는 과거형은 주님께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14절에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26절에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을 향해서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이제 아버지께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나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었나이다. 다시 말해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말씀하시기를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어떻게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구원하셨는지를 아시지요? 주님을 영화롭게 하시므로 이 땅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라는 반응을 보이실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다(고전 6:2). 주님께서 구원하시는 일을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때에 아버지께 대하여 내가 아버지를 이 땅에서 영화롭게 하였나이다라는 말을 하실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주신 일을 내가 다 이루었나이다라는 고백을 하실 수 있습니까? 제가 고개를 떨구고 절레절레 흔들어 댈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일을 내가 다 이루었습니다라고 저도 말하고 싶습니다. 때가 주어졌을 때 내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실망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한 분을 잊을 수가 없는데요. 우리가 할 수 없는 두 가지 일 가운데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는 어떤 분이 한 말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하기 싫어하는 작은 일들과 그리고 우리가 하지 않으려는 여러가지 것들, 사람들은 무언가 크고 대단한 일을 하기 원합니다. 작은 일은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마음을 쓰지도 않고 하려고도 않습니다. 우리가 하지 않은 일 가운데 끼어버렸습니다. 우리 각자가 하기를 바라는 일 가운데 주님이 하신 일도 저희에게 주님의 뜻을 주셨습니다.

1~5절을 보면 아드님이 아버지와 동등하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 아버지가 16번 언급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요한복음에서만 아버지란 표현이 114번 나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42, 마가복음은 5, 무가복음은 17번 아버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아버지란 표현을 114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요한복음은 아버지와 아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0:30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동등하심을 보는 관점입니다. 5개의 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에는 영광과 영화롭게 하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은 첫 5개 절에서 이것을 5번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1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오직 지엄하신 분만이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 하나님께 로빈 매키온을 영화롭게 하옵소서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신 분만이 이러한 요구를 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 관련된 부분을 보시면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시고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합니다. 이 둘은 동등한 것입니다.

2절에 주신다는 동사를 주목하십시오. 제가 기억하기로는 준다는 표현이 이 장에서 13번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2절의 중간에 (아들이)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처음에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에서 시작하여 중간에 아들이 주는 것으로 연결되고 다음에 아버지가 주시는 것으로 끝납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께서 주시고 아들이 주십니다. 동등하십니다.

3절에는 안다는 동사로 연결이 됩니다. 요한의 기록에 모든 것을 관통하는 단어는 안다는 말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참 하나님을 알고 아들을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드님이 아버지와 동등하시기 때문입니다.

5절은 매우 흥미로운 절입니다. 아버지여 .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나 자신을. 여기에 아버지와 함께 라는 전치사를 주목하십시오. 3(우리말에 2)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이것은 바로 이어질 장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다음에 바로 아버지게 영광을 얻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창세 전에 가졌던 여기서 무언가를 하나 알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어질 장면을 위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얻으실 곧 이어질 영광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 전으로 되돌아보셨습니다.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신 것일까요? 세상이 있기 전에 아버지께서 계셨고 나도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이 시작하는 부분을 기억하시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오늘날 세상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거역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주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주님이십니다. 이런 문맥에서 24절을 보셔도 같습니다. 아버지여.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하시면서 주님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저는 한번도 이런 식으로 기도를 한 적이 없습니다. Will이라는 의지를 나타내는 동사는 오직 주님만이 쓰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여 내가 바라노니 주님께서 이전에 한번도 이런 식으로 기도하신 적은 없습니다. 겟세마네 기도를 하실 때에는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를 통하여는 완전히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임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이제 매우 실제적인 부분을 가겠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를 하실 때에 세상과 주님께 속한 자들을 분명하고 완벽한 구분을 지으셨습니다. 9절에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여기서 말씀하는 것은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라고 말씀하는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똑 같은 이 복음서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하셨는데 문맥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지금 주님께 속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입니다. 이 기도는 세상을 돌보는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21절의 마지막에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것이야말로 세상과 관련해서 하신 기도입니다. 23절의 마지막을 보면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 기도의 핵심은 주님께 속한 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러나 기도에 있어서 주님께 속한 자들에 대해서 매우 파격적입니다. 세상도 자기에게 속한 자에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리스도에게도 자기에게 속한 자들이 있습니다. 13:1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갖고 계셨습니다. 세상도 자기 사람들을 갖고 있습니다. 15:18,19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매우 흥미롭습니다.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라고 했습니다. 13:1에서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디에 저희들은 속해 있습니까? 제가 구원받기 전에는 세상에 것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저는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그리스도의 자기 사람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기도를 하실 때 세상과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분명히 나누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것을 좀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전치사에 주의를 좀 해 보겠습니다. 17:6절에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이 구절의 중간에 세상 중에서 끄집어 내어 내게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이 중에 더 이상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데 세상 중에서 꺼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세상과 분리되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도덕이나 윤리에 더 이상 맞추어서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 중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11절에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이 말은 6절과 반대되지 않습니까? 6절은 세상 중에서 끄집어 내었다고 했는데 그러데 11절에서는 세상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세상 안에 있습니까? 나와 있습니까?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는 세상에서 우리는 나왔습니다. 그러나 신체적인 몸을 가지고는 여전히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시간에 김포에 있지 않습니까? 한국에, 세상에 육체적으로는 지금 이 땅에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기 이전에 이 장을 천천히 읽고 생각하는데 40분이 걸렸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중요한 기도의 부분을 놓치고 지나갈 것입니다. 현재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도 놓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나온 자들이며, 다른 편으로는 역시 세상에 있습니다. 이 구분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14절에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여기에 또 다른 전개가 나옵니다. 여기에 말씀하시기를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11절에 따르면 몸으로는 이 세상에 분명히 있지만 세상에 속한 자는 아닙니다. 이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것을 보기 이전에 16절을 보면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똑 같은 말이 나옵니다. 14,16절에서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장이 말하는 그 복음 그대로 아닙니까?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주님께서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우리의 특성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도 아니며 세상에 속한 자처럼 행동해서도 안됩니다. 왜요?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것을 우리의 특징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술집이 있고, 디스코 클럽이 있으며 여러가지 유흥가들과 관련되어서 참람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미워하기 전에 먼저 나를 미워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에 속했다면 세상이 우리를 사랑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특징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입니다. 주님께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닮아야 합니다만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15절에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또 다른 전개가 이루어지는데 여러분 성도님들께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말씀입니다. 무언가 기도를 하지 말아야 될 것에 대해서 주님께서 알려주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기도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6절에서는 분명히 우리가 세상 중에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나온 자로 말씀하셨습니다. 11절에서는 몸과 육체적으로 땅에 살고 있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15절에서는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하여 기도하시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육체를 가진 부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죽거나 장사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저들이 세상에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입니다. 왜요? 저들이 수행해야 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형제 자매님들! 왜 여기 남아 계십니까? 모두 건강해서? 전부 건강하게 살다가 가끔 하늘나라로 가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뜻이 있어서 남겨 두신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과 관련되어서 말씀하고 있는 이것이 그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저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세상에서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보겠습니다.

18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1절에 의하면 우리는 이미 육체적으로 땅에 있습니다. 세상 안으로라는 표현으로 세상에 보내신다 하였습니다.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기도하지 않는 이유가 이런 목적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아직까지 세상에 계신 이유가 바로 이 이유입니다. 우리는 모일 수 있습니다. 힘을 내십시다. 여기에 목적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으로 기억됩니다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죄인들이었습니다.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우상을 섬기는 것에서 돌아섰습니다. 하늘로서 내려오실 아들을 기다린다 하였습니다. 그 기다리는 동안에 섬기는 것입니다. 둘 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섬기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입니다. 이것을 모아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지옥 가지 않도록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구원받았을 때에 즉시로 하늘로 데려가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분명히 우리는 지옥 갈 자들이었습니다. 구원받아서 영원히 하늘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저희들로 하여금 섬기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 목적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18절을 다시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그래서 이 사람들은 주님께서 보내셨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부내 주실 때에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에 아무 메시지도 없이 그냥 보내지는 않으셨습니다.

20절에서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저희 말을 인하여를 주의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에 전언을 가지고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줄 말이 있습니다. 아마 옆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할 말일지도 모릅니다. 직장 동료에게 할 말일지도 모릅니다. 학교에 있는 친구들에게 해야 할 말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전할 말이 있습니다. 어제 런던지하철에서의 여인에 대해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여자는 공적으로 가르치는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구원받지 않은 자에게 할 말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한가지가 제 마음 가운데 들어옵니다. 어떤 문둥병자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왕하 5장에 어떤 이스라엘 아이인데 포로로 잡혀 왔습니다. 종이 되어 있었는데 문둥병이 든 자기 주인에게 용기를 내어서 말을 했습니다. 이스라엘로 가서 뵈이라고 했습니다. 그 젊은 여자 아이를 통해서 이 문둥병자가 나았습니다. 그 여자 아이는 전할 말을 갖고 있었습니다. 좋은 것은 그 여자아이가 혼자 그 말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문제는 전할 말을 갖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증거하는데 실패합니다.

이제 마치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두가지를 알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주님께 속한 자들에 대한 두가지 대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로 보전해 주시는 두 존재가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세상이라는 말을 67번 말하고 있습니다. 13~17장까지는 34번을 세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17장에서만 세상을 19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의 매우 오묘한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세상에 벗 된 자가 하나님께 원수 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를 대적하는 두 가지 존재가 있는데 15절에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이 구절을 이미 보았습니다만 악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는데 이것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악한 존재로부터 지켜 보전하시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요한복음은 사단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왕들에 대해서 12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14장에도 이 세상 임금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16장에도 이 세상 왕을 말하고 있습니다. 13~16장에서 두번이나 가르침의 장에서 사단을 이 세상 왕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사단은 함께 갑니다. 2:2에 바울이 쓴 것도 그 내용입니다. 이 세상은 정해진 대로 가거니와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임금들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습니다. 사단이 이 세상의 왕입니다. 이 악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대적하는 존재는 사단과 악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이 기도 가운데는 보전을 해주는 존재가 두분 계십니다. 6절에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11절에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12절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이것은 보전한다는 말씀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26절에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우리를 보전해 주시는 놀라운 보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주의 이름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우리가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주의 이름 아래 우리가 모입니다. 주의 이름을 전파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것이 주의 이름으로 됩니다. 계시록 3장에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서신을 기억하십니까? 3:8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그 이름을 핍박 가운데서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보전되었습니다.

보전의 두번째를 보겠습니다. 다시 6절에서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8절에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아버지의 말씀의 중요함을 주목해 주십시오. 14절에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17절에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여기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라고 하였습니다. 19절에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보전해 주십니다. 시편은 무어라고 말씀합니까?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내가 다시는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다시 보면 내 말을 지키며라 했습니다. 여기에 큰 보전의 도구가 있습니다. 성경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하나님의 말씀은 유익하고 여러분을 보존해 주십니다. 주님의 이름이 여러분을 보전해 주십니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기도 가운데 보전한다는 말씀을 주목해 주십시오. 우리는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으로부터 보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루지 못한 내용들이 여전히 이 기도에 담겨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모든 여러분들의 마음을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김포에 오게 된 것은 큰 영광입니다.

2009 1 30() 김포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