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구경꾼
먼 여행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던 노인은 자신의 집이 벌건 불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놀랬습니다. 그 집은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모두가 탐을 내어 사겠다는 사람이 여럿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노인은 그때 마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불에 타고 있는 것 입니다. 노인은 사색이 된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물을 나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굼떠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노인이 팔을 걷어붙이고 물지게를 지려 하자 어느 새 달려온 큰 아들이 아버지를 말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귀에다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아버지 실은 제가 요 며칠 전에 저 집을 팔았습니다. 값을 너무나 후하게 쳐주는 바람에 아버지 올 때를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금방 화색이 돌아온 노인은 아들을 칭찬하였습니다. 물지게를 내려 놓은 노인은 먼 발치서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도 여느 구경꾼과 똑같아 보였습니다. 똑같은 집 똑같은 불에 모든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불타고 있는 집은 노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뒷짐을 지고 있는 노인에게 둘째 아들이 뛰어 왔습니다.
“아버지 큰일났습니다. 우리집에 불이 났습니다.”
헐레벌떡 뛰어온 아들에게 노인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얘야, 괜찮다. 저 집은 얼마 전에 네 형이 팔았다더구나. 너만 모르고 있었나 보구나.”
둘째 아들은 어이없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아버지 저도 그 얘기는 들었으나 계약서 한 장도 없는데 집을 팔기는 팔았어요? 저 집은 아직도 우리집이라고요.”
다시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노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고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은 다시 집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물지게를 지기 위해 둘레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 때 셋째 아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걱정 마세요. 제가 우리집을 샀다는 주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일이 잘 해결되어 집값을 모두 주겠다더군요.”
노인은 셋째 아들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물지게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또다시 구경꾼이 되었습니다(S회사의 사보에서).
이 이야기는 주인으로서의 의식과 주변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의식은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교회는 모든 성도들의 집합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각 지체에 해당합니다. 각 지체가 머리를 통한 각각의 역할에 따른 유기적인 활동이 이루어질 때 견고한 몸을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지체도 스스로 몸에서 분리되어 그 역할을 할 수가 없듯이 각 지체는 몸에 붙어 있을 때만이 주어진 역할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각 지체는 마디를 통하여 하나로 연결되어 있듯이 성도들 또한 성령을 통하여 한 몸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모든 성도들은 교회 안의 모든 일에 대한 주인이지 결코 구경꾼이 될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주인으로 일하여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스스로 구경꾼의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과 주변으로부터 구경꾼으로 여김을 받아서 구경꾼이 되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스스로 구경꾼으로 자처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구경꾼들의 습성은 바라만 보며 구경하다가 쉽게 판단과 불평 하기를 좋아합니다. 주인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 잘되든 잘못 되든 책임을 가지고 행하며 불평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불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구경꾼의 자세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연약하게 보이는 지체를 구경 꾼으로 여기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연약하다 해서 구경꾼처럼 여겨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구경꾼처럼 여기면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보면 각각의 악기는 서로 다른 음색과 음량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계속해서 소리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쉬기도 합니다. 같은 악기라도 음량이 달라서 악보에 따라 한 악기만의 소리를 듣는다면 그다지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만, 전체의 악기가 각기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성실하게 할 때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훌륭한 음율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의 악기라도 제 위치를 이탈하거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오케스트라는 불협화음을 이루기 때문에 오히려 듣기에 거북한 소리를 연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오케스트라는 잘 훈련된 연주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각각의 역할에서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각각의 하나님께서 주어진 은사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필요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주인이 되어 성실하게 행할 때 하모니를 이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역할이 좋아 보인다 해서 다른 사람의 역할을 흉내내거나 자신을 더 나타내 보이고자 한다면 불협화음이 나타나게 되어 어지러움이 있게 되며 구경꾼이 늘어나게 될 때 교회의 일에는 공백이 생겨나게 됩니다.
교회는 주인이 필요하지 구경꾼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구경꾼은 영화관이나 경기장이나 놀이터에나 필요합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주인과 구경꾼은 그 의식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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