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파
교파는 하나님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개신교는 전 세계적으로 25,000여 개의 교파로 분열되어 있습니다(l998년 기준). 저는 수 년 전에 한국에 장로교 간판을 달고 있는 교파가 100여 개나 된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었는데 1995년도 판 ‘한국 교회 주소록’에는 한국에 장로교 간판을 달고 있는 교파가 130여 개나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외 다른 교파들까지 다 포함하면 한국에만도 기독교 교파가 얼마나 많은지를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파마다 신학교가 있으며, 400여 개가 넘는 신학교에서 매년 15,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처럼, 한국의 밤하늘을 내려다보면 하늘을 찌를 듯한 붉은 십자가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그 십자가는 바로 주님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와 같다는 말이 맞는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들은 그 많은 교파를 분열 생산해 내면서 항상 자신들만이 정통이고 다른 사람들은 사이비 아니면 이단처럼 취급을 합니다. 아마 망교적인 이 교파병은 주님의 심판이 임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특별히 이 병은 한국인들에게 더 심해서 외국에도 한국인들이 가는 곳마다 한국에 있는 교파병을 전염시키므로 한국 교인 열명만 모여도 교파가 다섯은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미국캘리포니아 일대에도 한국인을 위한 신학교 수가 50여 개가 넘는다고 하니 놀랄 일이 아닙니까?
도대체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난 것일까요?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한 후 바로 나타난 현상 중 하나가 ‘나뉘어 짐’ 또는 ‘깨어짐’이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부부의 하나됨이 깨어졌습니다. 가족의 하나됨도 깨어졌습니다.
그 후 성경에 나타난 인간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래도 평화로울 때는 연합이 이루어졌고, 그렇지 않고 그 연합이 깨어진 때는 항상 전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인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죄로 인해 깨어졌던 하나님과 인간 관계가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대로, 인간의 행위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이 이루신 일로 인해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그래서 은혜의 복음이요 화평의 복음입니다.
십자가는 죄로 인하여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 인간 관계를 화목된 관계로 회복시켰습니다. 또한 서로간에 깨어졌던 인간 관계도 화목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엡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케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이 말씀만 보아도 나뉘어짐, 분열, 파당이 얼마나 십자가의 복음에 역행하는 것인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파를 만든 것도 아닌 교회 안의 파당에 대해서조차 엄하게 책망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름조차도 당파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고전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분열되어(나뉘어) 존재하실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교파를 정당화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교파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가 만들었습니까? 스스로 대답해 보십시오.
특히 한국 기독교인들의 교파 관념은 대단하다 못해 병적입니다. “교파가 어딥니까?” 하고 물어올 때 “교파가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즉시 벌레 씹은 얼굴로 변하고 이단을 보는 눈초리로 바뀝니다. “성경에 교파가 어디 있습니까?” 하면 “그래도····” 하면서 “정통은 다 교파가 있지요” 합니다. 사실 정통은 교파가 없어야 정상인데 언제부터인지 기독교인들의 마음이 이렇게 삐뚫어져 있습니다.
이 책임은 물론 대부분 인도하는 목회자들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교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잘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그들 자신도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14장 10절에는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몰라서 못 믿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그 때 내가 몰라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이 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지독한 악성 전염병과 같은 교파 관념은 한국의 많은 이단들로 하여금 교파 간판을 달게 했습니다. 속에는 마귀가도사리고 있어 영혼을 사냥하는 사이비 이단인데도 일단 잘 알려진 교파 간판만 달아 놓으면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올바른 진리의 복음을 전할지라도 교파가 없으면 “여긴 이상하구나, 이단인가보다” 하고 도망칩니다.
도대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만들지 않은 교파를 믿으며,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도들이 만들지 않은 교파를 더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교파가 자꾸 생기는 것은 대부분 우두머리가 되기를 좋아하는 지도자들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진리를 부르짖지만 실제로 속은 명예욕, 이권, 시기, 질투로 가득합니다.
주님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는데 자기를 부인하기는커녕 ‘날마다 자기를 내세우고’ 다른 사람을 짓밟고, 깎아 내리고, 비판하니 그런 사람들을 어찌 목자라고 하겠습니까?
오스왈드 스미스의 말처럼, 하늘 나라에는 장로교인도, 감리교인도, 성결교인도, 침례교인도, 플리머스 형제들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속에 구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만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파 때문에 싸우고, 교파 때문에 비방하고 판단해야 하겠습니까? 그러고도 하나님 앞에서 낯을 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음 말씀을 주목하여 보십시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교회)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그래도 기독교계에서 ‘교회연합과 일치’ 운동을 벌이는 것을 보면 교파분열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스스로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당신부터 교파관념을 떨쳐 버리십시오.
교파는 하나님이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과연 예수를 믿는가?에서 (전도출판사 출간, 저자:정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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