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4-3 신학교나 성경학교에서 훈련된 사람이 목회하는 편이 좋지않을까요?
1. 우선 신학교나 성경학교의 성경적 근거를 자신이 직접 찾아봐 주십시오. 당신이라면, 어느 성구를 신학교, 성경학교의 근거라고 말하겠습니까?
나는 이전에 성경학교 설립취지서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취지서에는 「신약성경의 패턴」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 형식적인 훈련이 아니었다(마가복음3장14절, 마태복음13장54절, 요한복음7장15절, 사도행전4장13절)
*바울 ― 가말리엘로부터 훈련을 받았다(사도행전22장3절)
두란노 서원을 사용했다(사도행전19장9절)
일하는 한 가운데서 디모데와 디도를 훈련했다(사도행전16장3절)
같은 일을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행하도록 디모데에게 지시했다(디모데후서2장2절)
「형식적인 훈련이 아니다」「가말리엘로부터 훈련」「서원을 사용했다」…… 이 성구들이 어떻게 「성경학교」가 나오는 근거가 되겠습니까?
2. 성경은 교회를 목회하기 위하여 신학교나 성경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편이 좋다고 권하고 있는지요?
(1) 「장로의 한 사람」이며, 목회에 대하여 기록한 베드로(베드로전서5장1절)는 그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대사도는 「학문없는 범인(凡人)」(사도행전4장13절)이었습니다.
(2) 「장로」인 요한(요한2서1절, 요한3서1절)도 동일하게 그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3)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습니다만, 그는 다른 형제들에게 동일하게 훈련을 받을 것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찬란한 경력에 대하여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빌립보서3장7절).
(4) 에베소교회의 장로(감독)들은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있어서 「3년이나 …… 훈계하던」사람들(사도행전20장31절)이었으며, 별도의 교육기관을 졸업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이 지역교회에서 훈련된 사람들을 「성령이 저들 가운데 감독자를 삼았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디모데전서3장, 디도서1장에서 나타나있는 감독(목자)의 조건은 어떠한 것인가요? 디모데전서3장2절 이하, 디도서1장6절 이하를 보아주십시오.
여기를 보면 먼저, 무엇보다도 행동과 품격이 요구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가정을 다스리는 것을 중시하는 것도 매우 시사적입니다. 「가르치기를 잘 하며」(디모데전서3장2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디도서1장9절)라는 내용도 있습니다만, 이것들은 신학교나 성경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아닐 뿐더러 신학교나 성경학교 출신자 쪽이 목회를 잘 할 수 있다든가 신학교나 성경학교 출신자가 아니면 목회를 잘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디모데전서나 디도서에 기록되어 있는 감독(목자)의 조건을 성경을 펴서 주의 깊게 묵상해 주십시오.
4. 신약성경에서 일군의 훈련은 어떤 방법으로 행하여진 것일까요?
조금 전에 본대로 에베소 목자들은 그 지역의 교회 가운데서 「(바울이)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는 방법으로 말미암아 훈련되었습니다(사도행전20장31절)
그레데 여러 교회의 목자들도 그레데에 있는 교회 가운데서 바울과 디도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 중에서 세워졌습니다(디도서1장5절).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 교회의 목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사도행전14장23절)
성경의 모범은 은사 있는 형제가 각 지역 교회에서 가르치며 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일은 늘 지역교회가 중심이었던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디모데전서3장15절)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진리를 유지하고, 전하고, 훈련하는 일은 지역교회의 책임이었습니다.
물론 전도자에 의한 개인적인 훈련도 행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육시설을 설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도여행에 동행시켜 같이 수고하게 하고, 모범을 나타내는 방법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와 같이 하여 디모데와 디도, 마가에게 영적인 훈련을 시켰습니다.
5. 이상, 목자와 일군의 훈련에 대한 실례를 살펴보았습니다. 성경말씀은 어느 곳에도 신학교를 나온 사람이 목회를 잘 할 수 있다는 인간적인 생각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신학교나 성경학교의 설립은 「진리의 기둥과 터」(디모데전서3장15절)가 되어있는 지역교회의 입장을 끌어내림과 동시에 교직자제도라고 하는 성경으로부터의 일탈을 전제로 하고 있기도 하고, 또는 그와 같은 일탈에 연결되기 쉬운 것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방법입니다.
디모데후서3장16∼17절을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3장16∼17절)
만약 당신이 이 말씀대로 「성경은 ……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믿고, 이 성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할 수 있다고 정말로 믿는다면, 이 성경에 나타나 있는 베드로, 요한, 바울, 에베소 장로들, 디모데, 그리고 디도 등의 모범을 그대로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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