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들
(1841~1918)
로버트 앤더슨경 유명한 법학자이면서 또한 신앙인으로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오늘날도 독일에 가면 “유명한 검찰 고위층에 있는 형제가 말씀의 사역에 능하여 크리스챤 모임에서도 유명하다”고 하는 말을 듣는데, 주님은 가끔 사회에 높은 분을 모임에 더하시고 쓰시는 것을 본다. 뉴질랜드에도 대법관 형제가 계신데 교회 일에 크게 쓰임을 받고 계신다. 앤더슨 형제는 스콧트 계통 사람이면서도
“오실 왕자님”은 다니엘의 70주를 다루었다. “다니엘의 시련” “히브리서 연구” “그의 이름의 존귀함” 성경과 현대비평” “오해된 성구” 등과 기타의 저서는 그의 펜이 얼마나 달필이고 그의 생이 부지런했는가 입증해 준다. 그의 최근 저서이며 탁월한 작품인 “하늘로부터 오신 주님”은 두어함 감독에게 크게 칭찬을 받은 책이고 또한 그리 피스 토마스 박사나 캐더린 마쉬여사 등 많은 유명한 분들의 추천을 받은 책이다. 그의 책을 읽을 만 하고 유익하게 만든 두 가지 점은 그 자신의 신앙과 그의 표현의 명료함의 힘에 있어서다. 휴즈 라이트 경은 말하기를 “모든 연약과 당혹 중에서 일찌라도 당신의 강한 말을 읽는 것은 하나의 희망을 준다”고 했다. 그의 오랜 친구 페리낙스고르 여사는 “당신의 저서는 특히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각 장에서 그대가 수용하던 배척해야 할 것이 있고 그대가 멈추어 생각해야 하고 또한 돌보아지지 않은 채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더블린에 사실 때는 메리온 교회에 출석하였다. 런던에서는 가끔 캠버웰과 기타 지역에서 신자들과 함께 모였다. 그가 죽기 몇 달 전에 그는 고백하기를 그는 “형제들”과 늦게서야 더 많이 교제하였는데 사역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하였다고 하였다. 공개집회는 그러한 질서존중의 마음을 가진 형제에게는 매력을 주지 못했다. 그라스코의 하프이 여리 집회에서의 그의 사역은 크게 인정을 받았다. 1873년에 앤더슨 형제는 드로게라 백작의 누이 레이디 아그네스 무어 양과 결혼했다. 그의 부인은 모든 선한 일에 그의 진정한 도움의 배필이 되어주었고 런던의 부녀사업의 지도자로서 크게 활약하였다. 이러한 유력한 분이 모임에 일어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그의 임종 전에 간증을 했는데 그 중에 아래와 같은 일이 있다. 그는 크리스챤 가정에서 자랐는데 그러나 구원의 염려 중에 있었다. 그러던 중 1860년에 J. 덴햄 스미스 형제가 더블린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 그의 누나가 구원받고 이로써 새로운 영적 깨우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가 어느 날 누나의 권유로 집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참 빛은 그 다음 주일날 저녁 자기 교회에서의 설교 말씀에 따라 비춰졌다. 전도인은 존 헐이라는 분이었는데 그는 담대하게 죄의 용서와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영생의 선물을 증거하였다. 그의 설교는 크게 감동을 주었지만 그의 교리는 비성서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집회가 끝나 헤어져 집으로 오는 중에 길에서 다시 그를 만나 그와 얘기했는데 길거리에서 그는 엄숙하게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 당신에게 엄숙히 말하는데 당신이 지금 여기서 주를 영접만 하면 당신에게 생명이 주어진다”고 역설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겠소? 배척하겠소? 그 후 몇분 후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가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영접합니다”하고 외쳤다. “다른 말도 없이 그저 손을 흔들어 악수하고 서로 헤어졌는데 집에 오면서 하나님의 평강이 내 가슴에 넘쳐 남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197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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