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는 자를 고치심
(요한복음
대부분의 그리스도의 기적은 갈릴리에서 있었다. 그런데 요한은 예루살렘 가까이에서 일어났던 3대 이적을 들고 있다. (1) 요한복음 5장의 무력한 사람, (2) 요한복음 9장의 장님, (3) 요한복음 11장의 나사로의 죽음. 요한복음 2장 23절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초기의 이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그리나 이 세 가지 이적으로 인해서 유대인들은 더욱더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에 행하신 이적은 기록상으로 일곱가지가 있다.
(1) 마가복음 l 장 29절의 베드로의 장모.
(2) 누가복음 4장 31-36절의 더러운 귀신들린 자.
(3) 누가복음 6장 6-11절의 손마른 자.
(4) 누가복음 13장 10-16절 허리 굽은 여인.
(5) 누가복음 14장 1-6절의 고창병 든 사람.
(6) 누가복음 5장 병약자.
(7) 요한복음 9장의 장님.
메시아가 오실 당시 병자의 큰 무리가 이스라엘 도시에 있었던 것은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는가를 말해준다. 왜냐하면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보면,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한 나쁜 질병이 그들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는 보 장을 받았다. 이러한 경륜은 오늘날에 와서는 꼭 그렇지 않다. 많은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러 종류의 질병으로 시달렸다(딤전
4절 이 연못에서의 고침 받는 조건과 그리스도께서 주신 축복을 대조해 보라. 전자는 어떤 시기에만 가능했으며 그것도 가장 강한 자 혹은 가장 빠른 자(1등)가 차지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약한 자, 그것도 최악에 처한 병자를 고치셨다. 그리고 즉시 고치셨다(9절). 그리스도는 왜 그 한 사람만을 치료 하셨는가? 그것은 그 모든 병자 중에서 그 중풍병자 만이 그 연못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먼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를 도울 사람이 없었다. 누가복음 5장에서 네 명의 친구가 메고 온 중풍병자와 대조해 보 라.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 받으려는 희망을 포기한 죄인들은 예수께서 구원하신다.
이 연못은 어느 면에서 율법과 비슷하다. 율법은 거룩하고, 바르며, 선하다. 그러나 그 조문을 지킬 수 없는 절망적인 죄인들에게는 율법은 축복이 될 수 없다. 여기 쓰인 “무력자(병약자)”라는 단어는 “힘이 없는 자”라는 의미이다. 로마서 5장 6절에는 형용사 형태로 쓰였다.
8,9절 예수께서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렇게 할 수 있는 힘까지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렇게 할만큼 충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중풍병자와 같이, 그는 지금 그를 운반해 주는 들것을 메고 갈 수 있었다. 그는 조금 전만해도 걸을 수 없는 무력한 사람이었다.
14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를 발견하시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 대신에 “더 나쁜 것이 네게 임하지 않도록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는 명령을 하신다. 이로 보아 이 질병은 죄 때문인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오늘날도 죄는 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9장 3절에서 말씀하신, “이 병은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의 죄가 아니다”라는 말씀과 대조해보라.
16절 여기의 유대인들은 7장 23절에서 이 일에 대해서 여전히 주님께 성내고 있는데, 그것은 그동안 두 절기가 지난 여러 날 후의 일이었다(
*기억해 둘 말씀/롬
(198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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