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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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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14:49 횃불/1981년

간증문•

차라리 절 죽여주옵소서

 - 아라비아에서 온 편지 - 마영일

 제 나이 사십여세. 남들에겐 한창 일하고 봉사하며 살아가는 나이이지만 나에겐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은 생애였습니다. 때론 화창했고 때론 비바람이 몰아쳤으며, 어떤 때에는 생명의 위협까지 당할 뻔 했습니다. 또한 한 아내의 존경 밭는 남편으로서 자식들을 사랑하는 가장으로서 비록 부족한 것은 많았지만 스스로 부끄러운 것은 없었습니다. 여느 사람과 똑같이, 저도 마시고 놀고 세상을 즐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잔술이 병술이 되었고 한개피 두개피의 담배가 한갑 두갑으로 늘어만 갔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쾌락을 맛보면서 살다보니까 나에겐 종교라는 것이 한갖 웃음거리 밖엔 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나가는 자, 또 예수 믿는 자를 가리켜 저 미친 놈들혹은 저 바보같은 사람들 교회에 나가면 돈을 주나, 뭘 주나하면서 손가락질 내지는 마음 속으로 저주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아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차 방해를 했습니다. 때론 성경을 감춰두기도 했으며 때론 아내가 읽어보라고 준 성경을 술집에까지 들고 가, 동료들과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1979 11월경, 마지못해 하는 나를 이끌고 아내와 난 당신이 계신 곳을 가보았습니다. 서대문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곳에 들어섰을 때 난 주님을 따르는 많은 종들을 보았습니다. 똑같이 살아가는 세상인데 그들의 얼굴에, 육신엔 형언키 어려운 기쁨이 감돌았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십자가와 나라와 사회의 십자가를 질려고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전에 내가 미친 자들”  “바보같은 자들이라 욕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내 아내의 교우의 입을 빌어서 당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분위기는 엄숙했고 모두들 열심히 간구하고 기도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나는 잔잔한 감동과 어떤 회의에 휩싸이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구원? 영생? 부활? 그것들은 다 뭘까? 도대체 예수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또 영의 생활이란 무엇일까?”하고.

그때부터 나는 아내가 준 성경을 소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한 줄, 두 줄 그저 세상 얘기로 심심풀이로 읽던 그 책이 어느 새 한 장 두 장 넘겨지면서 내 마음에 서서히 당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읽었던 구절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리리라아내는 제가 당신을 더 사모하도록 음으로 양으로 많이 기도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내 마음에 하나는 당신의 모습이, 다른 하나는 세상의 마음이 서로 자리하면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당신의 책 속에서 나는 귀한 말씀을 듣고 깨우쳤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있는 산에 올라가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산상보훈, 아니 네 육신 위에서 저에게 가르치신 말씀이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시작되는 말씀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감사했습니다. 이 나이, 이 생애까지 살아오는 동안 감사할 줄도 몰랐습니다. 사랑할 줄도 몰랐습니다. 나의 죄도 몰랐습니다. 시기했습니다. 음란하였고, 증오하였습니다. 세상의 악한 일에 빠져있었습니다. 허나 그때부터 믿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4).

세상의 온갖 죄에서 끌어내주시고. 당신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그 큰 죄가 사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동했습니다. 돌아온 탕자 얘기도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행적과 말씀을 들었습니다. 난 스스로 당신을 믿고자 했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완악한 마음을 버리게 해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범사에 감사했습니다. 난생 처음 당신에게 기도 하였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난 죄인이오니 죽던지 살던지 당신의 뜻대로 하옵시고 이제부터 내 뜻이 아닌 몸과 영혼을 당신이 맡아 가지옵소서눈물로써 간구했습니다. 이제 난 거듭난 겁니다. 세상 일이, 하는 일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1980 6 6 아무 공로없이 오직 당신만을 믿음으로써 죄를 용서 받았기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후론 내 마음에, 우리 가족과 가정에 행복이 넘쳤습니다. 식사할 때 당신께 기도했습니다. 남보기에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자랑하고 싶어졌습니다. 옛날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로 말입니다. 약한 자가 되지 않게 항상 내 옆에 계셔서 나를 돌보아 주시고, 범사에 감사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올 늦 여름, 회사 일로 국외에 나올 일이 생겨서, 옛날 애굽과 이집트를 거쳐서 이곳 열사의 나라 사우디에 왔습니다. 인종과 풍습과 법률 도덕이 판이한 이곳, 낯설고 물 설은 이곳에서 어떻게 견뎌내나 하는 불안과 초조 속에서 당신을 잊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겼습니다.(교통사고로 다섯명이 죽는 참사) 천하보다도 귀한 목숨들을 빼앗는 사고가 났습니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눈 앞에 있었고 이내 정신을 잃었습니다. 잠시 후에는 사우디 경찰서에 수감되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이곳 형무소, 태형과 단두형이 있는 곳. 고향 산천과 그리운 가족을 두고 온 것만도 가슴이 아픈데, 하물며 죄를 지어 형무소 생활이라니, 내 가슴에 피 눈물이 범벅되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 까? 차라리 이 고통 속에서 헤매이느니 절 죽여 주시옵소서음식을 보아도 넘어가지가 않았고 잠을 자도 선잠이었습니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가족, 아내와 어린 자식들, 죽어 도 한번만 보고 죽었으면, 차라리 고향산천에서 죽었으면, 이제부터 우리가족은 어찌해야 하나만가지 감회와 비탄 속에서 지내는 나날이었습니다. 직접 듣고 보기도 했던 태형, 목숨을 빼앗는 죄는 단두형이니, 난 그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차라리 절 죽여 주옵소서. 왜 나를 이런 시련에 들게 하셨습니까?” 난 때론 주님을 원망도 했었습니다. 당신이 정녕코 나의 주님이라면, 나를 이곳에서, 아니 감방 문이 열리는 기적을 행해보십시오. 날 이 고통 속에서 건져내 주옵소서. 이도 저도 안되면 날 죽여주옵소서

눈물 섞어 밥을 먹고 육신과 영혼은 점점 죽어갔습니다. 이 때에 직장의 상사이자, 주님 안에서 한 형제인 김형제가 찾아왔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된 것도 다 시험입니다. 오히려 주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열심히 간구하고 기도하십시오. 온상의 나무 보다 비바람 속의 나무가 더 튼튼합니다.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그 때가 9 14일이었으니 수감된 지도 한달이 넘었을 때였습니다. 형제가 넣어준 성경책, 요한복음과 출애굽기를 묵상하라고 했을 때, 그 음성은 주님! 정녕 당신의 음성이었습니다. 처음엔 간수의 눈이 무서워, 이 나라 법과 우상이 무서워 몰래 몰래 읽었습니다. 들키 면 더 무서운 형벌이 가해지니까. 요한복음을 읽던 중,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11:25)하신 말씀에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확신했습니다. “절대로 죽진 않는다. 주님이 도와주신다. 주여! 믿습니다라고. 9 16, 난 그날 당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날 위해 죽으시고 이렇게 매일 매일 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감방 안은 천국으로 가득찼고, ‘당신의 나라에 내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붉은 벽돌 담이 당신의 보혈이었고, 내 가슴에 있는 당신의 말씀은 귀중한 떡이었습니다.

그때에 또 김 형제가 찾아왔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왜 이렇게 일이 잘 되는지 피해자 가족과도 원만히 해결보았고, 이곳 정부에서도 달리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만사가 형통되는가 봅니다. 이억만리 이 곳에서도 날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었고 더우기 주님께서 같이 하시니, 원망했던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우린 철장을 사이에 두고 손을 잡고 당신께 구하였습니다. 눈물로써 간구하여 감사했습니다. 그때 고국에서 많은 귀한 얘기와 함께 특히 시편 119편을 사모하라는 아내의 편지가 왔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시편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마지막 판결 날. 나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들키면 죽는다는 성경을 가슴에 품고서 나갔습니다. 당신이 함께해주실 것을 믿고, “죽던지 살던지, 당신의 뜻대로 하옵시고 내 영혼을 당신께 맡기나이다판결문 낭독이 있은 뒤, 형의 언도가 내려질 차례였습니다. 내 손은 떨렸고 가슴과 심장은 방망이 질을 한 채, 꼭 성경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석방이라는 구형이 내려지자,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와 내 동료들, 그리고 김 형제와 함께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당신께 감사했습니다. “정녕코 당신은 나의 주시요, 믿음이며 소망이시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사도 바울과 베드로 생각이 났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출감하기 하루 전 비록 얼굴과 피부색이 틀리더라도 눈으로 손으로 얘기했던 감방 동료들, 유난히 내 처지를 이해하고 격려해 주었던 요르단 친구, 항상 웃어만 주던 태국 친구등, 모두가 정다웠고 고맙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출감할 때, “꼬리아 안녕하며 내 짐을 들어다 주던 키가 작은 간수, 저 철창 너머로 눈으로 손으로만 인사하던 친구들의 손. 한편 기쁘고 한편 서러워 돌아서서 흘리는 눈물 속에 왜 그렇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환했던지, 다시 한번 주님께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서대문에 계신 형제자매님들의 얼굴을 대할 생각을 하니 정말 기뻤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만나 즐거운 해후를 하고, 그때쯤이면 난 당신 계신 곳에 나아가 기쁜 마음으로 감사의 찬송을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셔서, 고난과 고통을 통하여 믿음을 더욱 굳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 기쁨을 무엇으로 보답하리이까. 이제 남은 생애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이 하시는 사업, 당신이 뜻하시는 그 모든 것에 사용하소서라고.

 

(1981 1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