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인색한 엄마
나에게는 전 세상에서 가장 인색한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아침 식사로 사탕을 먹을 때, 나는 밥과 야채, 또는 국을 먹어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점심으로 콜라와 과자를 먹을 때, 나는 도시락을 먹어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추측할 수 있듯이, 나의 저녁 식사도 다른 집 아이들 것과 달랐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나 혼자만 그런 고통을 당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나의 여동생과 두명의 남동생에게도 나와 똑같이 인색한 엄마가 계셨으니까요.
나의 엄마는 우리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항상 엄마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마치 우리가 한 사슬에 묶인 죄수들처럼 생각되죠?). 엄마는 같이 있었던 친구들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했는지를 꼭 아셔야 했던 것입니다. 엄마는 우리가 한 시간만 어딜 갔다 오겠다고 하면 꼭 한 시간이 되어서, 또는 그 전에 집에 들어오도록 하였습니다-일분이라도 초과되면 안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사실 말하기도 부끄럽습니다만, 엄마는 우리에게 매질도 하셨습니다. 한번만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대로 할 때마다 때리셨던 것입니다. 아이가 불순종한다고 해서 정말 때리다니 말이 되나요?
자. 이제부터는 우리 엄마가 정말 얼마나 인색했었는지를 들어보십시오. 다른 여자 아이들이 짧은 미니 치마를 입을 동안 우리는 마치 할머니처럼 옷을 입어서 구식이라고 놀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엄마는 엄마가 혼자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영화를 우리끼리 보러 가는 것도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인색할 수 있을까요?
나의 엄마는 어머니로서 완전히 실패하셨던 분입니다. 나와 내 동생들은 한번도 수감되거나, 우리의 부인, 또는 남편들과 이혼이나 별거를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나의 남동생들은 충실하게 군에서 복무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지독한 길로 빠진 것이 누구 때문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바로 우리 인색한 엄마 때문입니다. 더 나빴던 일들도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엄마는 항상 우리에게 사실 그대로 진실을 말하도록 강조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죽음을 당할지라도 오직 진실만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 진실 때문에 거의 죽을 뻔 한적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십대가 되었을 즈음엔 엄마는 더욱 지혜로워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더욱 힘든 것이었습니다. 나의 친구들은 성숙한 나이인 열 넷, 열 다섯에 데이트를 했는데, 나의 인색한 엄마는 우리가 열 여섯 이상이 될 때까지 데이트를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항상 단체 데이트만 허락되었는데, 그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놓쳐버린 기회들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항의 데모대에 끼어 행진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단체 싸움에 가담하는 등, 다른 아이들이 했던 수 많은 일들을 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엄마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며, 교양 있고, 정직한 어른으로 자라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나의 이 배경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나는 세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때때로 나의 아이들이 나더러 인색하다고 할 때면 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 고개를 높이 듭니다.
잠언
시편
(198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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