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에서 가나안까지(26)
요단강을 건너면서
죤 리치
오랫동안 바라던 날이 드디어 이르렀고 여호와의 명령이 떨어졌다.
“일어나 요딘강을 건너가라.”
강둑을 넘쳐 흐르며 요동치는 요단강이 가나안 땅으로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여호와의 백성들을 기업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려는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40년 전에는 모세의 지팡이가 홍해를 가르는 도구였었지만 그 지팡이와 지팡이를 잡고 휘두르던 손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제사장 의복을 입은 레위 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있는 언약궤와 속죄소와 청색 덮개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도구가 된 것이다.
거룩한 기구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에 잠기자마자 그 강은 갈라져서 멀리 아담읍까지 물러나 쌓였다. 아담읍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으나 그 이름이 첫 사람과 관련되어 있고 그로 인해 사망이 왔다는 함축된 의미를 보여준다. 갈라진 곳의 아래 쪽에 있던 강물은 사해로 흘러 들어가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날에는 요단강이 이스라엘의 눈 앞에서 사라졌으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은 요단강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강을 건너갔던 것이다(수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매고 요단강 가운데의 마른 땅 위에 굳게 서 있는 한 단 한방울의 물도 백성들을 건드릴 수 없었으며 만일 그 강물이 이스라엘 백성 중의 지극히 작은 어린아이 하나라도 건드리려면 제사장들과 언약궤를 먼저 덮쳐 넘어야만 했다.
그러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바닥에 굳게 서 있는 한 백성들은 절대적으로 안전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친히 역사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사, 노인, 어린아이, 모든 백성이 대낮에 요단강을 완전히 건너서 가나안 땅을 밟게 되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감과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애굽에서의 유월절 양과 뿌려진 피는 우리를 죄와 장차 임할 진노에서 구원해 주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킨다. 홍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사단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어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요단강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나타내며 따라서 이제 사망은 폐지되었고 심판은 지나갔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마련된 것이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마른 땅을 통과한 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장사되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된 경험을 아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이와같은 영광스러운 진리를 믿음으로 소유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질 무진장한 영적인 축복들을 받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축복의 땅에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들이 있으며(엡
그리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만이 그러한 축복들을 알고 있으며 누리고 있다. 이 땅에 속한 사람이나 육에 속한사람은 그러한 축복들에 대해 쓴 글을 읽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수는 있다 하더라도 결코 그 축복들을 소유하고 즐기지는 못한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리심을 받은 것을 깨달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 것이다.
(198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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