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모임 - 순결
제23장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 J. R. 리틀프라우드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Ⅰ. 그 그림
합당치 않은 멍에를 메는 문제는 구약에도 나와 있고 신약에도 나와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그 그림을 볼 수 있으며 신약에서는 그 원칙을 볼 수 있습니다.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신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9절). 종자(씨)는 교훈을 상징합니다. 좋은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마
“양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신
우리가 고려해 보고자 하는 것은 11절의 금지 사항 사이에 나와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여기에서는 혼합된 봉사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금지되어 있는 것은 쟁기로 가는 것이 아님을 주의해야 합니다. 쟁기로 가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소와 나귀를 한 멍에에 메워 밭을 가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멍에란 어떤 동일한 목적의 일을 함께 수행하게 하기 위해 두 짐승을 함께 결합하도록 고안해낸 기구를 말합니다. 그것은 협동 작업을 하게 만들며, 필연적으로 개인 행동을 제한 합니다. 협동 작업은 금지되지 않았습니다. 멍에는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소와 나귀를 함께 결합하는 합당치 않은 멍에는 금지되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1. 인도주의적 이유
소와 나귀의 걸음걸이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두 짐승이 걸을 때는 다른 어깨운동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두 짐승 위에 멍에를 씌우면 두 짐승의 어깨가 함께 까져서 상처가 생길 것입니다. 게다가 이 두 짐승은 걷는 속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두 짐승에게 한 멍에를 메우는 것은 두 짐승 다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2. 의식적(儀式的)인 이유
소는 깨끗한 짐승입니다(레
3. 영적인 이유
구약의 경험들은 종종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당한 일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고····”(고전
Ⅱ. 그 원칙
합당치 않은 멍에를 메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동일한 목적을 위해 함께 묶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각각 다른 난에 다음과 같이 대조시켜 놓으신 것을 통해서 쉽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의 |
불법 |
빛 |
어두움 |
그리스도 |
벨리알 |
믿는 자 |
믿지 않는 자 |
하나님의 성전 |
우상 |
첫째 난에 나와 있는 5가지의 용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둘째 난에 나와 있는 용어 중에는 믿는 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것들은 다만 구원받지 아니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됩니다. 따라서 본문 가운데 부과된 그 분리는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의 분리.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의 분리를 이야기하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때때로 유혹을 받아 합당치 않은 멍에를 멤으로써 슬픔과 손해를 당하는 5가지의 영역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상업적인 멍에-사업 동업
야고보와 요한은 고기 잡는 업에 있어서 시몬과 서로 동업자였습니다(눅
“의인이 불의한 사람의 수준까지 내려갈 때에만, 성도의 부르심의 모든 특성을 당분간 포기할 때에만, 서로간의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콜드웰).
2. 결혼의 멍에-가사(家事)의 동업
하나님께서는 가정 생활을 위한 이상적인 배려로서 결혼을 명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남편과 아내로 함께 살도록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남자나 여자가 구원받지 않은 여자나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리요?” 하나님의 은혜로 비추임을 받은 사람이 아직도 어두움 가운데 앉아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사람과 무슨 교제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와 같은 결합이 어찌 “그리스도와 교회”를 그림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엡
3. 형제의 멍에 - 사교적 동업
세상은 상호간의 행복과 복지를 증진시키려는 사교적인 단체, 예를 들면 피크닉, 왁자지껄한 놀이, 클럽 000회 조직과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와 같은 단체들 중 어떤 것들은 대단히 찬사를 받을 만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쾌락이나 사교적인 앙양 등을 증진시키는 데에 있어서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소와 나귀가 한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벨리알 사이에 친선 협약을 맺게 하려는 노력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함께 조화되어 아름다운 가락을 낼 수 있겠습니까?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아니한 사람의 행위의 기준 중 누구의 것이 더 우세하겠습니까?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아니한 사람의 대화의 기준 중 누구의 것이 채택되겠습니까? 구원받지 아니한 사람이 영적인 일을 말할 수 있겠으며, 구원받은 사람이 세상적인 것을 입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이상(理想)과 속인(俗人)의 이상 중 어떤 것이 더 우세하겠습니까? 어찌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4. 교회적인 멍에-종교적 동업
우리는 이미 교회의 교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어야만 함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에는 인간의 지혜로 고안된 조직들이 많이 있어서 구원받은 사람들과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공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함께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相關)하리요?” 이 두 부류가 어떻게 함께 예배를 드리거나 함께 증거하거나 함께 기도하거나 함께 섬길 수 있겠습니까? 죄인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전파함에 있어서 믿지 않는 자가 무엇을 함께 나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찌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되실 수 있겠습니까
5. 박애적(博愛的) 멍에-봉사적 동업
구원받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과 세력을 합하고 싶은 유혹이 대단히 강하게 일어나는 영역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곧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고자 할 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종종 “선한 일을 하는 것을 도와주는데 무슨 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쟁기로 밭을 가는 일에는 해가 없습니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소와 나귀에 한 멍에를 메우는 것 곧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의 협동 작업을 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하나님을 숭배하는 자와 봉사 클럽, 자선 단체, 사교적 지위 향상 그룹 등에서 황금을 숭배하는 자 간에 어떤 융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Ⅲ. 그 특권
하나님께서는 이상과 같은 동업을 “부정한 것”으로 묘사하셨으며, 자기 백성들에게 명하시기를 그와 같이 합당치 않은 동업들로부터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저희”란 과연 누구일까요? 불법(불의한 자), 어두움. 벨리알, 믿지 않는 자, 우상 즉 황금 숭배자입니다!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이와 같은 용어는 오직 구원받지 않은 속인(俗人)들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속된 것으로 칭함을 받는 것을 용납지 않으실 것이며(행
이와 같은 분리에는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상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은 우리의 자녀 됨에 관계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녀의 신분을 얻는 것은 우리의 행위나 순종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복음을 믿는 것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통해서 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98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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