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역사(役事)
어네스트 타담
오늘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성경의 교훈을 따라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에서조차 일반적으로 성령님의 역사가 심히 약화되어 있는 것은 대단히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 놀라우신 성령님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과 성서적인 교회 안에 거하고 계시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성령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잘 분별하여 이분의 놀라운 역사를 실제로 체험하고, 성령님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일에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번역합니다. 이 책은 엠마오 성경학교 교재로 쓰이는 “The Holy Spirit at Work”를 번역한 것입니다 - 역자주.
성령님에 관해서는 오늘날 두 종류의 극단이 존재합니다. 그 중 한 가지 극단은 성령님을 종교적인 의식(儀式)이나 또는, 교계 (敎界)에서 고안해낸 것으로 대치함으로써 성령님을 거의 무시합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참된 영적 능력과 무관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 극단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건전한 분별을 무시하면서까지 성령님의 활동을 전혀 근거없이 강조합니다.
전자는 냉랭한 형식주의로 나타나고, 후자는 열렬한 광신주의(狂信主義)로 나타납니다. 전자는 얼게 하고 후자는 타게 합니다!
이 책의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 속에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게 하신 “또 다른 보혜사”(요
이 책의 내용
[1] 성령님의 개성(個性, 개체성 )
[2] 성령님의 신성(神性)
[3] 시대별로 본 성령님의 역사
[4] 성령님에 대한 비유와 상징들
[5] 죄인들에 대한 성령님의 역사
[6] 성령님의 기름 부음과 인침,
[7] 성령님의 “보증”과 증거.
[8] 성령님으로 드려지는 기도와 예배.
[9] 성령님의 침례와 성령님의 충만.
1. 성령님의 개성(個性)
(요
성경의 제일 첫 부분과 제일 끝부분에 하나님의 성령님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제일 첫 부분에서 성령님이 창조의 사역에서 활동하시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신(神)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답해야 합니다. (1)성령님은 개체(個體)이신가? (2)성령님은 하나님이신가? 우리는 이 두 질문을 이 책의 제1과와 제2과에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은 개체(a Person)이실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수많은 이단들은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개체성을 부인하고, 성령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방출되는 하나의 비개체적인 영향력이라고 확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 같은 가르침을 단연코 배격합니다. 성령님이 육신을 입으신 적이 없다는 사실이 성령님의 개성(개체성)을 결코 손상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부께서는 신성(神性)을 지니신 개체이시면서도 육신을 입으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개체(개체성)는 지성과 감정과 의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성으로 알고, 감정으로 느끼며, 의지로 행동합니다.
지성
성령님은 성경에서 지성적인 존재로 묘사되어 있을까요? 성경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절에서 두 종류의 영(靈)이 제시되어 있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 중 처음 것은 인간의 영이요, 나중 것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인간사에 있어서 인간을 지성적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이 소유한 영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것으로 추론하며, 판단하며, 식별합니다. 인간은 증거를 신중히 생각한 다음 평가합니다.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지성은 인간의 수준에 있는 문제들과 연관이 있습니다. 어떤 동물도 “사람의 사정”을 알게 못합니다. 그 까닭은 동물이 필수적인 인자(因子)인 인간의 영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일들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의 마음에 빛을 비추고, 그들에게 지성과 식별력을 주어 하늘의 실체들을 알게 해주시는 분은 바로 이 성령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크나큰 보배들을 우리에게 거저,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님께서는 그 엄청난 재산을 우리에게 넘겨주시기를 기뻐하시며, 또한 그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에게 확보되어 있다는 것을 보증하십니다. 이제 그것을 알고, 즐기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우리 곁에 앉아, 우리의 이름이 수취인으로 지명된 유언장의 전문적인 용어들을 설명해 주는, 인정이 많은 변호사처럼 성령님께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後嗣)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로서 영원한 유업을 물려받을 자들임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십니다(롬
감정
성령님께서는 감정을 소유하고 계실까요? 그분은 사랑하시며, 미워하시며, 그리워하시며, 슬퍼하실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우리는 에베소서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또 책망도 하시며, 경고하시기도 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사도들의 선교여행에 관한 설명에서 분명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들이 어떤 지역으로 들어가려 할 때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행 16: 6-7).
의지
성령님께서는 의지를 가지고 계실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인도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성령님께서는 거룩하게 하시며, 의롭게 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성령님이 비개체적인 영향력이 아니라 하나의 개체(a Person)라는 사실은 그분의 활동에서 분명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십니다(갈
요한복음
“ ‘보혜사’(영어로는 ‘Comforter’)라는 단어는 구주께서 사용하신 헬라 원어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합니다. 보혜사에 해당한 동일한 헬라 원어가 요한일서
어떤 번역자들은 “보혜사”(Comforter) 라는 단어를 “상담자”(Counselor) 또는 “대언자”(Advocate), 또는 “변호사”(Solicitor)로 번역합니다. 이 모든 단어들은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개념을 잘 이해하게 해 줍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현재 믿는 자들의 천상(天上) 대언자이신 반면(요일
– 다음 호에 계속
(198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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