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히
그러나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영적인데 마음을 두고 힘쓰는 모든 영혼의 바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모든 행동의 동기요 목적이어야 한다. 그분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 모든 충성된 심령의 궁극적인 목표여야 한다. 그러나 그런 심령을 소유한 자들은, 짐승의 제사 자체는 하나님께 그런 기쁨을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이 그런 제사를 요구하셨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분이 그것을 명하고 규정하고 인정하셨으나, 그러나 그것은 상징적인 가치만 있었다. 기자는 곧 이 제사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여기서는 두 종류의 제사, 즉 향기로운 냄새가 있는 제사와 향기로운 냄새가 없는 제사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 제사든 문제되지 않는다. 번제나 속죄제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지 못했다. 제사는 예물을 드리는 자 편에 뭔가 부족과 죄가 있음을 말해주었으며, 이것은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없었다. 헌신된 심령으로 드린 번제 조차도 개인적인 실패를 자각한데서 드려졌다. 예물을 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위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굴복된 살을 살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생명을 가져와서 하나님을 위해 단에 온전히 불살랐다. 그는 자신의 삶이 그렇게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것을 받으셨으나 거기에는 기쁨이 없었다. 참된 기쁨은 예물을 드리는 자 자신의 삶이 하나님을 위해 온전히 바쳐질 때 올 것이다.
속죄제의 경우에는 그 모든 것이 아주 분명했다. 모든 속죄제는 죄의식으로 인해 드려진 제사였다. 사람이 죄를 범했다. 그에게는 양심이 있었다. 그는 제물을 가져왔다. 여호와께서 그것을 요구하셨고 그것을 받으셨다. 그러나 거기에는 기쁨이 없었다. 그 사람이 전혀 죄없는 삶을 살 때, 그래서 제물을 가져올 필요가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여호와의 기쁨이 충족될 것이다. 요컨대 제사 제도 전체에 대한 평결은 “기쁨이 없다!”는 것이다. 제사는 필요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더 나은 것을 원하셨다. 그분은 제사가 필요 없는 참을 원하셨다.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지는 몸을 원하셨다. 이것이 그분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지 옛 유대교와 율법의 무수한 짐승 제사는 기쁨을 드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분이 오셨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내가) 왔나이다. “그분은 자발적으로 오셨다. 오랫동안 약속되고 예언되고 기다리던 그분이 오셨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셨다”(딤전
주님의 성육신과 사역은 그분의 고난과 죽음과 함께 모두 “성경대로” 되어졌다(고전
그분은 세상에 오실 때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라고 선언하실 만했다. 이 사랑스런 분의 전체 생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바쳐졌다. 그분만이 진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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