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2)
R. G. 로포트
요한복음 5:19 에 관한 묵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아버님(성부)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요
순종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사랑과 새로운 게시를 더욱 많이 받게 만든다는 이 원칙은 우리의 삶에도 역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는 그분 자신과 그분의 능력에 관하여 새로운 계시들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계시들은 주님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더욱 깊게 해줍니다. 요한복음
우리는 충성스런 종이 되어 그분의 권위에 순복하고, 그분이 우리의 삶과 교회 안에서 이루시는 모든 일에 그분을 찬양하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중생치 못한 사람은 자기 뜻을 다른 사람에게 굴복시킴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것이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압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축복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취와 만족
주님은 아버님 (성부)의 뜻을 행하시는 일에 만족을 찾으셨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이 음식을 구해 가지고 수가의 우물로 돌아왔을 때 주님의 굶주림은 이미 만족되어 있었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는 말씀은 그분이 아버님의 뜻을 행하시는 일에 기쁨과 만족을 찾으셨음을 암시합니다(요
분별
주님께서는 어떤 일을 판단하심에 있어서 치우침이 없이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자기 개인의 소원이나 욕심 따위를 전혀 생각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의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
편벽됨(치우침)은 교회 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편벽됨은 친구들로 이루어진 조그만 편당들이 생길 때 나타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교회안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가 축소됩니다. 우리의 편애가 같은 국적이나 교육 배경, 수입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세상적인 표준에는 용인(容認)될지 모르지만 만일 그것이 교회 안에 있는 어떤 성도와의 교제를 막거나, 혹은 주님이 다른 성도를 통해 계시해주신 것을 듣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그릇된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편애와 두려움을 넘어서서 다른 모든 형제 자매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들임으로써 복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기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명쾌한 분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쉼(안식)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쉼(안식)을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영적인 성장
영적인 성장 역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첫째 단계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자 하는 헌신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다른 성도들과의 복된 교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는 동일한 소원을 가진, 다른 성도들과 복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연합(하나됨)을 강조하는 말을 종종 들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필요한 연합도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동일하게 분별하여, 서로 의지하는 가운데 그 가르침을 순종해갈 때에만, 강하면서도 영구적인 연합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할 때에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 사이에 강한 사랑의 유대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때때로 우리 자신의 뜻이 우리에게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 삶 가운데서 어떤 사항들을 고쳐야 한다거나, 혹은 어떤 습관이나 관계를 끊어야 된다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자신의 완고한 뜻(고집)이 그것을 거절할 때 갈등을 겪게 됩니다. 심지어 우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 사도 바울처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롬
“그분은 나의 뜻을 거스려 강제로 가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나로 하여금 기쁜 마음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온전히 헌신케 하셔서 우리가 주님처럼 고백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이렇게 될 때에 우리는 성취와 만족, 분별, 쉼, 영적인 성장 및, 같은 마음을 가진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은 우리의 구주와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
(1989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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