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만찬
A. G. 클라아크
주의만찬의 거행
단순성-우리는 성경의 본을 따라 주의만찬을 단순하게 거행해야 합니다. 기독교계에서 볼 수 있는 이탈, 심각한 오류들, 형식적인 습관들은 모두 원래의 의미를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또 이 의식을 엉성하게 준수하는 것도 역시 그 참된 의미를 망가뜨립니다(고전
날짜와 시간-주의만찬의 날짜와 시간에 대한 명령은 “종종, 자주”(as often, 고전
떡과 잔-주의만찬용 떡과 잔의 성분에 관한 논란은 피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 주님께서 주의만찬을 제정하신 것은 유월절 식사 때이긴 했지만 우리는 이 둘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한 덩이의 떡과 한 잔의 포도주를 단순한 재료로 취하여 제자들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주님의 대속적인 죽음에 대한 상징물로서, “떡”과 “포도주”가 강조되어 있지 아니하고 언제나 “(떡) 덩어리”와 “잔”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떡의 성분이나 잔의 내용물에 관하여 아무런 교훈도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이것이 현명한 배려라는 사실은 밀가루떡과 포도즙을 구할 수 없는 지역에서 실감됩니다. 그러나 얇게 썬 떡 조각(cut wafer)과 개인용(작은) 잔(individual cup)을 사용하는 현대적 관습은 주의만찬이 지니는 “교제”(communion)의 의미를 크게 상실합니다(즉, 그리스도인들이 한 떡과 한 잔에 참예하는 의미를 상실한다는 뜻임. 고전
떡과 잔의 분배-주의만찬 집회의 순서에 관하여 고린도전서 11, 14장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 집회를 관장하는 장(長), 예를 들면 수석장로(首席長老)나 다른 어떤 “공적(公的)인” 사람 따위를 전혀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중요한 점입니다. 따라서 누가 떡과 잔의 분배를 담당하는 특별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만찬의 성격을 완전히 변조시키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명백히 위배됩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심지어 사도들조차 공적인 지위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단지 다른 성도들과 자리를 같이했을 뿐입니다. 사도행전
준비-만일 우리가 한 주일을 지내는 동안 성령님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주의만찬 집회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자극과 고무(鼓舞)는 어떤 초자연적인 충동에 의한 것도 아니고. 은사를 무시하고자 하는 육신적인 욕심에 의한 것도 아니며, 또 순전히 감정적인 행동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신령한 사람의, 신령한 이해와 신령한 분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고전
주의만찬에 관계된 미신
이미 지적한 대로 많은 그릇된 교리와 관습이 원래는 그처럼 단순했던 규례 주위에 운집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 -A D. 831년에 도임된 로마 카톨릭의 이 교리는 다음과 간이 가르칩니다. “떡과 포도주를 봉헌하는 그 순간, 겉으로 보기에는 떡과 포도주가 그대로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들은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그 몸으로 변한다.” 이렇게 하여 기념의 측면이 우상숭배적 미사의 거행으로 변하게 되며,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성체(聖體)가 거양(擧揚)되면 성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실제로 현현(顯現)하신 것으로 여기고 그분을 경모합니다. 이 교리를 더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위해 참되고 적절한 대속제사가 하나님께 드려진다.” 육(肉)의 눈을 몹시 끄는, 매우 아름답게 장식된 의식(儀式)이 이 미사에 수반됩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성체공존설(聖體共存設, Consubstantiation) – 루터교의 교리인 이 성체 공존설은 그 기원을 16세기에 있었던 종교개혁에 두고 있습니다. 이 개혁은 비록 많은 업적을 쌓았을지라도 성직자 제도에서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리에 있어서나 관습에 있어서 어떤 오류들이 아직도 그 “개혁교회들” 안에 남아 있었습니다. 성체 공존설의 교리는 사람들이 떡과 잔에 참여하는 순간에 그리스도께서 이 떡과 및 잔과 함께 육체로 계신다고 가르칩니다.
주의만찬에 관한 그릇된 개념들
어떤 성경 말씀들이 주님의 만찬에 잘못 적용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요한복음
(199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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