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J. M. -
성령으로 행하고 성령으로 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내(오래참음, 갈
“낙심하다”의 원어는 ‘엔카케오’(enkakeo)이며, “피곤하다”의 원어는 ‘에클루오’(ekluo)인데 이 두 원어는 ‘녹초가 되서 포기하다’(become exhausted and give up) 라는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다음의 말씀에 반대적인 개념을 갖고 있다 하겠습니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때때로 문제는 영적인 피곤이 아닌 영적인 나태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을 행함으로 피곤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선도 행하지 아니함으로 피곤해진다는 뜻입니다. 또 때로는 문제가 영적인 위선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을 섬기는 일에 관하여 듣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면서 실행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약
바울은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일에 낙심하거나 피곤해지지 않을지 그 비결을 알고 있었습니다. 밀레도 부근의 해변에서 그는 에베소로부터 온 장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바울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까닭에 이 세상에서도 축복을 거두었으며, 자신의 생을 마감하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義)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위의 말씀은 심고 거두는 원칙에 동반되는 실제적이고도 최종적인 명령이며, 성령으로 행하는 성도들의 지침으로 주어졌습니다
“기회”로 번역된 원어 ‘카이로스’(kairos)는 문자적으로 어떤 일정한, 구분된 기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 개념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기회 있는 대로”이며, 이것은 다시 말해서 믿는 자의 온 생애가 곧 주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유일하고도 제한된 기회라는 뜻입니다. 그 개념은 또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섬길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을 하되 “라는 표현의 원어 ‘에르가조마이’(ergazomai)는 적극적으로, 효과적으로,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심을 기회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을 뜻합니다.
“선”(善)의 헬라 원어 ‘아가딘스’(agathos) 앞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바울이 그 선(善), 곧 어떤 특정의 선(善)을 가리키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에 한정된 ‘선’(이것에 대한 원어는 ‘칼로스’(Kalos)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의 하나로써(갈
이러 한 ‘선’(양선)은 또 무조건적으로, 무제한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지며 여기에는 불신자들도 물론 포함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벧전
그런데 불신자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만큼 중요한 사항은 믿음의 가정들에게 더욱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 번째 시험은 그분의 자녀들,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며, 이것에 대하여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199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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