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사들에게
누가 주의 재림을 더디게 하였는가?
먼저 이 글을 통하여 성도들과 교제케 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내게 주신 소명을 다시금 감당케 하시려는 주님의 뜻으로 겸허히 받는 바이다.
내가 처음 어린이 전도에 대한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에서 제외되어 있는 어린이들을 보았을 때였다. 나 역시도 어린이들의 구원문제를 심각하게 생각지 못한 때였다. 그때 주님은 다른 많은 전도자들이 성인들을 위하여 전도하듯이 이 어린 영혼들을 위해서도 구령의 사역이 절실함을 보여 주셨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기에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어른이나 어린이 모두가 동일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가라사대····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마
사람들은 종종 “어린 아이도 거듭날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 어떤이들은 “그렇다”, 어떤이는 “두고 봐야 안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주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안으신 채 “나를 믿는 이 소자”(마
당신은 분명히 거듭난 일꾼인가? 언제, 어떻게 성령으로 거듭났는가? 확신이 없다면 당신은 주님의 일에서 손을 떼고 먼저 거듭나는 은혜를 입어야만 한다. 주님은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우리는 또한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 중에 어린 나이에 구원을 받은 많은 사람을 알고 있다. 스펄젼은 17살에, 무디는 15살에, 찬송가 작가 아이작 왓츠는 9살에, 진젠돌프 백작은 4살에, 빌리그래함은 5살에, 이 외에도 얼마나 많은 신앙의 위인들이 어린 나이에 주님을 믿고 일생을 주님께 드렸던가?
무디는 어느날 “두명 반”을 전도했다고 했다. 그 중 “두명 “은 어린 아이를 “반”은 어른을 말한 것인데, 어린 아이를 전도하는 것은 그의 영혼뿐 아니라 전 생애를 건져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린이를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인 것이다.
인생은 많은 무리가 그 위에서 떨어지는 절벽에 비유할 수 있다. 절벽 밑에는 죄로 상한 많은 영혼들이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절벽 밑에 신령한 병원을 세워 상처난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치료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중 어떤 이들로 하여금 병원을 세우는 대신 절벽 꼭대기로 올라가 벽이나 담장을 쌓도록 부르고 계신다. 이렇게 함으로 죄가 저들에게 너무 깊은 상처를 주어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기 전에 저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절벽 위에 벽을 쌓는 것, 이것이 어린이 전도이다. 당신은 이런 일에 부르심을 받았는가? 그렇다면 부지런히 이 일을 하라!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릇된 가르침과 나쁜 본보기와 잘못된 태도를 아이들에게 나타냄으로 수많은 아이들을 실족케 하고 있다. 아이들을 꾸중하기 전에 먼저 나를 고쳐야 한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우리는 종종 감상적인 눈으로 아이들을 보고 있다. 하지만 주님께서 오늘 재림하신다면 이 귀여운 아이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저들은 영영한 불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기에.
당신은 어린 자식을 잃어 보았는가? 그 자녀를 찾기까지 다른 일을 할 수가 있던가? 자식을 찾아 헤매는 불붙은 엄마의 사랑을 누가 끊어 놓을 수 있으랴? 아이들은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으로 둔감하여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주님은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12만”의 방황하는 어린 영혼들을 위하여 그 선지 요나를 니느웨로 보냈다. 우리가 요나처럼 니느웨나 아프리카 오지에 가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골목마다 집집마다 방황하는 아이들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늘 아버지는 아이들이 잃어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신다.
14절의 “뜻”이란 낱말은 “소원”(딤전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고후
“내 백성이여····귀를 기울일지어다····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시 78:1~8).
우리가 어린 세대에 전하지 않는다면 그들 역시 열조처럼 완고하고 패역한 세대가 될 것이다. 오늘날 패역한 세대에 대한 책임은 전세대의 믿는 사람들이 어린 세대를 하나님께로 이끌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인 것이다. 이것은 명령이다. 하나님의 전도 계획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소홀히 하고 어린 세대를 주님께로 이끌지 못하여 97%의 기독교인을 두었던 영국은 15%도 못되는 패역한 세대로 전락했고 미국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어린이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 대한 희망은 없는 것이다. 만일 이 세상에 주님의 전도 계획과 명령을 순복하는 1000만 성도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들이 한 달에 두명의 어린이를 주님께로 이끌어 들인다면 10년 후엔 24억의 신(新)세대를 볼 것이다. 이 믿음의 세대가 그의 자녀들에게 믿음을 전한다면 다음 세대는 전세계가 믿음의 가족들로 가득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요엘
누가 주의 재림을 더디게 하였는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어린 세대를 구원치 않은 믿는 자들의 불순종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울어야 한다. 선지자 예레미야처럼.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물처럼 흘릴지어다‥‥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애
잘못된 자녀로 키우는 10가지 비결 1. 어려서부터 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주어라. 2. 아이가 버릇없는 말을 할 때에는 그냥 웃어 넘겨라. 3 크면 다 알아서 할 것이라며 아무 영적 훈련이나 교훈도 하지 말라. 4 잘못된 품행을 책망하지 말고 그냥 두어라. 5. 아이 물건을 모두 정돈해 주어라. 5. 어떤 TV프로나 책이나 그림이든 마음대로 보고 읽게 놔두어라. 7. 아이들 앞에서 자주 가족 싸움을 하라. 8. 달라는 용돈은 얼마든지 주어라. 9. 먹고 싶다는 것, 마시고 싶다는 것, 좋다는 것은 다 주어라. 10. 다른 친구나, 이웃, 어른과 다툼이 있을 때는 언제나 아이의 편이 되어 주어라. - 텍사스 주 휴스턴 경찰국 - |
(199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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