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승천(1)
복음서 및 사도행전에서
- 시드니 멕스웰 -
우리의 영광스런 주님의 하나님 보좌에로의 승천은 구주와 그분의 백성과의 관계에 있어 하나의 신기원을 이루었습니다. 그분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의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요
주님은 그들 가운데서 올리워 가실 그 마지막 이별에 앞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확증하셨습니다. 부활 후 40일간의 그분의 행적에 대해셔 누가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그러면 우리 마음과 영혼에 복된 깨달음을 가져다 툴 우리 주님의 승천을 다음 몇몇 제목 아래 살펴보기로 합시다.
승천에 관한 예표와 예언들
구약의 영감받은 기자들에게로 눈을 돌려 그 영화롭게 된 몸에 갈보리의 흔적을 지니신 영광 중에 계신 인자에 대한 상징적이고 예언적인 그림들을 본다는 것은 커다란 확신을 줍니다. 그것을 경이감을 가지고 바라보노라면 우리의 심령으로부터 예배의 향기가 피어오르게 될 것입니다.
이삭은 제단에 올려졌으나(창 22장) 살았습니다. 이삭이 그 산에서 내려온 것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들판에서 묵상하고, 그런 다음 그의 사랑의 대상, 즉 광야를 지나서 오는 신부를 맞으러 가는 모습을 볼 때까지 다시는 그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없습니다(창 24:62).
속죄일(레 16장)의 핵심 장면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생명이 바쳐졌음을 증거하는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베드로의 표현을 봅시다.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벧전
끝으로, 시편과 선지서들을 통해 우리는 그분이 승천하시고(시
승천에 관한 주님 자신의 선언
요한복음은 주님의 승천에 관한 주님 자신의 선언들을 보여줍니다. 이 선언들은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아버지께로서 오신 분의 말씀입니다(요
끝으로, 요한복음
승천과 관련된 구주의 위치
마가복음은 주 예수님의 승천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막
여기에 여호와의 종으로 오셔서(사 42:1~3)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며(빌
누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은 영적인 암시로 가득합니다. 그분은 목자로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셨습니다”(눅
주 예수님의 승천은 경배를 가져왔으며, 이는 우리에게도 그러해야 합니다. 또한 그것은 기쁨을 가져왔으며,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우리에게 동일한 영향을 줄 것입니다.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눅
사도행전
승천에 관한 메시지들
사도행전, 혹은 적절한 표현인바 성령행전은 신약의 복음전파 기록을 풍성히 담고 있습니다. 그 거룩한 원리들은 오늘날의 전도 계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인위적인 장식물들을 떨쳐버리고 영적인 단순함을 좇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 아니며,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부활의 위대한 사건을 확증하는 세 사람의 메시지를 대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으로 높임을 받으셨으며 그 결과 성령의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전파합니다(행
스데반의 마지막 메시지는(행 7장) 하나님의 이스라엘 섭리에 대한 통찰력 있는 설명으로 대단원을 이루며 영광 중에 계신 인자에 대한 위대한 사실로 절정에 이릅니다. 이 첫 순교자의 확신에 찬 증거는 얼마나 큰 격려를 주는지!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끝으로 바울의 복음전파에 귀 기울여봅시다. 그의 메시지의 중심에는 승천하신 인자에 대한 복스런 사실이 자리합니다. 바울도 스데반처럼 그분께서 영화롭게 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행
승천을 통해 재확인된 성도의 전망
이것은 확실히 이 놀라운 사건에 대한우리의 묵상을 결론 내리는데 적합한 항목입니다. 사도요한은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라고 우리에게 확증해 줍니다(요일
그분께서 하늘로 가시는 것을 목도했고 우리에게 그분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베드로는, 이 땅에서 그분이 아버지 집에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나그네와 행인인 우리에게 권고하기를, 그분의 영광이 나타나서 우리가 그분과 함께 즐거워할 때까지 기꺼이 그분의 능욕을 지고 고난을 당하라고 합니다(벧전
“오 주님, 눈을 들어
주님께서 보좌에 계신 것을 뵙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헤아리고
주님의 복스런 이름을 부르고
주님의 피의 효험을 노래하는
그 기쁨이 어떠할지요.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
(199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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