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명령-거룩하라
윌리암 맥도날드
제6장: 하나님의 전신갑주
신약성경에는 거룩에 대한 다양한 예들이 있다. 거룩은 옛 것 그리고 더러운 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골
사도 바울은 한 때 거룩을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 그리고 그 후에는 신자들 안에 있는 사랑으로 보았다(고전 13장). 그 후에는 그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군인들의 갑옷을 통해 영적 진리를 설명하였다(엡
우리에게 갑주가 필요한 이유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싸움이며 각 신자들은 군인이다. 싸움은 때로 그 강도가 다르기는 해도 계속되고 있다. 특별히 대장 즉 주님 가까이 서있는 사람들은 특별한 표적이 된다. 사단은 그의 힘을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허비하지 않는다. 최종적인 싸움의 결과는 이미 보장되어 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그런데 우리는 왜 우리 동료들이 전장에서 시체로 변하는 것을 본단 말인가? 왜 그 많은 유명한 전도자와 설교자들이 전장에서 쓰러져간단 말인가? 왜 우리도 위험성이 높은가? 이에 대한 해답은 물론 대적은 우리가 무장하지 않은 급소를 찾아 이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도 실패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우리 자신들의 보호장구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우리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능력
먼저 우리는 주님과 그 능력 안에서 강해야 한다(10절). 우리가 우리의 힘을 의지한다는 것은 사망과 함께 장난하는 것과 같다. 적(Mo)은 초능력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힘으로는 그를 이길 수가 없다. 우리의 자원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능력을 힘입는 것이다. 바울이 말한 의미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전신갑주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띠와 흉배, 깃발, 방패, 투구, 검 그리고 많은 기도에 대해 살펴보게 될 것이다. 아마도 바울은 이 말씀을 기록할 때에 그를 지키고 있는 로마 군인의 군복을 바라보면서 영적인 것과 대조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 군인들의 무장이 영적인 무장과 어떤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하여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고후
우리는 여기에서 묘사하고 있는 갑옷들이 강한 그리스도인의 특성에 대한 요소들이라고 믿는다. 만일 그리스도인 군인이 흠없는 삶을 산다고 하면 사단이 그를 공격할 곳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가 해야 할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분류의 군인이며 어떻게 행동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마귀의 계략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우리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할 수 있게 해준다. 사단은 아주 교활한 자로서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하여 상상을 초월한 아주 교묘한 계략을 사용한다. 우리는 우리의 적을 알고 그의 흉악한 책략에 대해 지속적으로 방비해야 할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다(요
그는 속이는 자이다. 그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의의 일꾼으로 가장된 그의 일꾼들을 내보내고 있다. 그는 때로 성경을 잘못 인용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또 큰 이적이나 거짓 기적을 통하여 사람들을 속인다(살후
그는 형제를 이간하며 송사하는 자이다(계
그는 성도들로 용기를 잃게 만든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만일 회개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그 형제가 너무 낙심하여 사단으로 덕을 보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고후
그가 흔히 잘 사용하는 전략은 분리시켜서 이기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분쟁하는 집마다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신자들 가운데도 “분쟁”을 심기를 원한다.
사단은 때로 삼킬 자를 찾는 우는 사자로 나타나기도 한다(벧전
마귀가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행을 막으려 했던 것처럼(막
사단의 무리들
우리는 때로 거짓 선생들과 이단자들, 악한 정부, 그리고 진리의 적들과 싸우기는 해도 진정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싸움은 바울이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로 말하고 있는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과의 싸움이다(12절). 악령들-아마도 범죄한 천사들-이 많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들은 군대처럼 조직과 명령체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들은 모두사단의 지배 아래 있다. 이 악의 권세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또 그분의 종들을 핍박하기 위해 악한 사람들을 그의 도구로 사용한다.
바울이 우리의 씨름의 대상이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우리의 적이 모두 그 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의 세가지 기본적인 적은 세상과 육 그리고 마귀이다.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마귀와 그 추종자들과의 싸움이다.
굳게 서라
우리가 굳게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필요하다. 우리의 적은 전지하지는 않아도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의 가장 약한 곳이 어디인지를 알고 있다. 우리의 삶이나 인격에 있어 방심할 수 있는 곳은 전혀 없다. 사무엘하
진리의 띠
첫째 병기는 진리의 띠이다. 일반적인 띠의 사용 목적은 병사가 싸우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겉옷을 잡아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도 그가 선한 싸움을 싸우는데 있어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치우는데 진리의 말씀을 사용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방탕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에 대하여 경고하셨다(눅
띠는 또한 우리가 진리를 고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말씀의 절대적인 영감을 믿으며 이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말씀은 오류가 없으며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을 판단해서는 안되며 성경이 우리를 판단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진리가 우리를 붙잡아야 한다. 진리가 우리의 삶을 통제하여야 한다. 실질적인 의미에서 이 말은 우리는 매일 말씀과 보내는 시간이 있어야 하며 이를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책망 또는 고소하는 말씀만 순종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우리에게 준 모든 명령들을 순종해야 한다. 아마도 그리스도인들이 싸움에 지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성경에 등한히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이 당신을 죄에서 멀게 해주든지 아니면 죄가 당신을 성경에서 멀게 해 줄 것이다”라는 말은 사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에 지속적으로 매달리고 순종하며 또 정직과 성실을 통하여 진리를 나타낼 때 그 삶은 가장 안전하다
의의 흉배
두번째는 의의 흉배이다. 간단히 말해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무엇이든 그릇된 것이나 음침한 것 또는 의문스러운 것들을 피하는데 예민한 양심을 의미한다. 우리는 의의 흉배를 붙이고 있을 때 어떤 더 큰 욕을 허용할 수 있는 조그만 타협도 거절하게 된다. 우리는 사람을 매수하거나 뇌물을 받지 않으며 떼어먹지 않는다. 우리는 세금을 내는데 있어서도 정직하다. 그리고 차라리 낙제할 망정 다른 사람들의 답안지를 훔쳐 보지 않는다. 우리는 법을 준수하며 지불을 꺼려해 편법을 쓰고자 하는 유혹을 물리친다. 주 예수님은 언제나 의의 흉배를 붙이고 다니셨으며(사 59:17) 그분은 우리의 모범이시다.
복음의 신
다음에는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발”이 있다(15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과 준비를 의미 한다. 우리는 “주여,오늘 저를 영혼들에게 인도해 주소서.문을 열어주셔서 누구에겐가 당신을 전하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함으로 매일 아침 이 신발을 신는다.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깊은 필요성을 느끼는 것을 보면 흐를 한걸음씩 주님께 인도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죄나 그리스도의 사역, 죄인들의 책임들에 대한 말씀을 암기하여 성령님께서 때에 합당한 말씀을 사용하시도록 하여야 한다.
한 노성도가 심한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다음날 그 식구들이 그를 방문하여 “좀 어떠십니까?” 라고 물었다. 그는 “아주 좋아! 이 병동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했지! “라고 말했다. 그의 발은 “평강의 예비한 복음의 신”이었다.
믿음의 방패
네번째 병기는 믿음의 방패이다. 이 방패는 모든 화전을 막기 위한 것이다(16절).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선하심, 우리의 구원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며 낙심하게 만들고 시험하며, 거짓 송사하고 악하고 헛된 공상을 하게 만든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또 그 약속들을 믿고 나아갈 때에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사단의 화전은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게 된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로마로 가는 여행 중에서 배가 파선될 위기에 있었으나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바울은 믿음의 방패를 굳게 잡고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말했다(행 27:25).
구원의 투구
“구원의 투구를 가지라”(17절상).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대한 지적 인 공격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성경은 모순을 담고 있다는 고등비평가들과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 맨 처음 죄가 들어오게 된 것도 뱀이 이브의 마음에 심어준 말씀에 대한 의심 때문이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날까 염려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이같은 공격에 대한 바울의 반격을 우리는 고린도후서
구원의 투구는 또한 부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성령의 검
마지막 병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이다(17절). W. E 바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여기에서의 말씀은 성경전체의 말씀이 아니라 때에 적절하게 사용하도록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각나게 하시는 부분적인 성경말씀, 즉 우리 마음속에 숨겨(쌓아)두었다가 때에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필수적인 말씀을 의미한다.”
성령의 검을 아주 적절하게 잘 사용한 예는 바로 우리 주님께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사용하신 예이다. 주님은 닥치는대로 말씀을 사용하시지 않고 정확하게 그때 때 필요한 말씀을 사용하셨다. 그분은 세번이나 “기록되었으되”라고 말씀하시고는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사단의 끈질긴 유혹을 물리치셨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때에 합당한 말씀을 주시기 위해서는 우리는 적어도 그분의 말씀을 암기하거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성경말씀 암송에 대한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한 대학생이 그 친구에게 그의 교수들이 자꾸 자기의 믿음을 약화시킨다고 말했다. 그때 그 친구는 그에게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고 말해주었다. 만일 그가 전에 잠언
기도
곧바로 따라오는 병기는 낭랑한 부름의 기도이다 우리는 기도를 단순히 병기의 하나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군인들이 본부와 갖는 필수적인 대화통로이며 또한 군인이 싸우고 사는 삶의 대기이다. 그는 기도를 통하여 그날에 대한 하나님의 뜻(계획)을 알고 또한 보이지 않는 천군을 부르기도 한다(왕하
결론
때로 그리스도인들의 무장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 군인들을 무장시키실 때 전면만 무장시키고 후면은 무장시키지 않으셨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은 뒤로 물러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군사는 절대로 뒤로 돌아서서 달아나서는 안 된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적군과의 접전에서 참패한 후에 나폴레옹은 북치는 자에게 뒤고 퇴각하는 군인을 죽이라고 명했다 그는 “폐하. 당신은 한번도 제게 후퇴하는 자들을 죽이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나폴레옹은 그 말에 감명을 받아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고 나아가서 결국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후퇴는 없지만 적을 피해야 할 때는 있다. 음란을 피해야 하는데 이는 모든 성 적 인 부도덕에서 피해야 함을 의미한다(고전
우리 모두는 기도가 필요하다. 우리 중 누구에게도 그러한 일은 일어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믿음에 있어 파선할 위험을 지니고 있다. 죤 돌세이(John Dorsey)는 사단의 공격에 대한 신자들의 방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나는 오늘 기도처에서 사단과 처절한 싸움을 싸웠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 이야기 하기 위해 그곳에 갔지만 그곳에서 만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단이었다. 그는 내게 ‘너는 기도할 수 없어. 오래 전부터 벌써 틀렸는 걸. 무릎을 꿇고 무어라고 말은 하겠지만 네가 알다시피 너는 진정한 기도를 할 수는 없어’ 라고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나는 내 투구를 귀까지 내려오도록 깊숙이 내려 썼는데 그로 인해 그의 소리가 적게 들렸으며 두려움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나의 다른 갑옷들을 점검해 보았다. 발에는 신발을 신고 있었고 허리에는 진리의 띠 위에 하나님의 말씀의 검이 꽂혀 있었으며 가슴에는 내 의의 흉배가 가슴을 보호하고 있었다. 나의 믿음의 방패는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있었고 그의 화전은 방패에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사단이 부끄러운 얼굴로 슬그머니 물러가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 중에서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거룩이란 학교의 선생이시며 우리는 분이 내주신 숙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의 진실은 또한 성결이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은 또한 우리 없이 일하시지 않을 것이다. 다음 장에서 더 다루기로 하겠다. ♠
(199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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