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창조된 여성
(창세기 1,2장)
창세기 1장에서 우리는 지혜로우신 창조주께서 구상하고 설계하신 대로 일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으며” (창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행복하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비결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데 알맞게 해주셨는지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설계상 자신의 위치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에 대해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면, 나에 대해서도 목적을 가지고 계심에 틀림 없습니다.
여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창
여자의 창조
하나님이 아담을 먼저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창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생명으로 가득차 있는 에덴 동산에서 홀로 외로움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창조 이래 처음으로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아담은 과연 사회적인 존재였고, 사교적 피조물이었기에 누군가와의 사귐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창조된 모든 동물 중에서는 그로 더불어 사귈 수 있는 대등한 존재가 없었습니다(창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그의 옆구리에서 뼈와 살을 취하셔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하와는 흙으로(원어상 Adamah)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서(원어상 Adam)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 최초의 여인은 최초의 남자와 동일한 체질이었습니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었습니다(창
창조의 순서에서 배우게 되는 교훈
남자를 먼저 창조하시고 다음에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어떤 중대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임을 명기했습니다(딤전
먼저 지음을 받아 머리가 된 남자의 위치와 나중에 지음을 받아 권위를 침해해서는 안되는 여자의 위치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보실 때, 여자가 인격적으로 부족 하거나 무가치하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남녀는 평등하지만, 지도적 권위는 우선적으로 남자에게 있음을 가리킵니다.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돕는 배필”이 되는 것입니다. 원어상 “돕는다”는 말은 연약하거나 부족하다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이 낱말이 구약성경에서 21회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도우신다”는 경우에도 흔히 사용되었습니다(창 49:25, 출
그 여인은 세상을 다스리는 아담의 존귀와 영광에 동참하게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도와주게 된 것입니다(창
하나님께서는 남녀 간에 서로 다른 특성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에 이성간에는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도와주는 보완적인 관계이지 경쟁적인 것이 아닙니다.
여성의 특권과 자랑스러운 신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아울러 우리는 여성을 창조한 목적이 남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다시금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여자는 세상에 홀로 존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아담은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며, 여자는 아담의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아담의 버금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아담에게서 지음을 받았고, 아담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녀가 없이는 아담도 불완전했던 동시에 아담 역시 그녀에게 보람 있는 삶을 이룩해주는 존재였습니다. 그 여인이야말로 그의 보필자였고, 그의 온전함을 위해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남녀를 창조한 순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내지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권위의 순서를 나타내줍니다. 먼저 지음을 받은 자가 인도하면, 나중에 그에게서 지음을 받은 자는 따르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여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여자가 남자를 돕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질서입니다.
하나님은 아내가 남편을 어떻게 돕기를 원하고 계실까요? 이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지혜와 명철을 다해서 당신의 남편을 도와주십시오. 당신의 남편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사람이 되고자 할 때 돕지는 못할지라도 장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결혼
여자를 창조하신 것과 아담이 그 여인을 그의 확실한 반려자로 흔연히 맞이한 사실에 이어, 우리는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을 보게 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창세기 2장 24절에 기록된 결혼 지침에서 “떠나라”는 말과 “연합하라” 는 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결혼에는 배타적인 요소와 지속적인 요소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몸”이 될 때에 그 남녀는 사회에서 새롭고 영원한 관계를 수립하게 됩니다. 그들은 새로운 관계의 수립을 위해서 이전의 관계를 청산하게 됩니다. 일부일처는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경륜입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와 연합하여 일상 생활 전체에서 상호보완 해줌으로써 마치 한 사람과 같은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배타적인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주 예수님께서 창세기 2장 24절의 원리를 다시 말씀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4∼6절과 마가복음 10장 6∼9절을 읽어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말씀으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께서는 지속적인 관계를 특성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혼이란 결코 함부로 성혼하거나 파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부 상호간에 평생동안 지켜야 할 엄숙한 서약입니다. 바울도 에베소서 5장 31절에서 창세기 2장 24절을 다시금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은 이미 말씀하셨던 그 원리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확증해 줍니다.
이러한 제약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시거나 우리의 행복을 감소시키시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들에게 있어서 무엇이 사회를 안정시키고,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이룩하게 할 것인지를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
(199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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