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11)
발람의 교훈(2)
많은 사람들은 베드로후서 2장과 유다서의 유사점을 지적하는데 개중 어떤 이들은 한 기자가 다른 기자의 글을 옮겨 적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것은 옳지 않다. 성경의 다른 대목에서도 그렇듯이 기자마다 각기 하나님의 성령으로 주어진 자신의 글을 지니었다. 베드로는 특히 종교 지도자들의 악함( “교회” 역사 가운데 풍부하게 증명된)을 다루고 있으며 유다는 그들의 배도를 염두에 두고 있다.
“발람의 교훈”은 계시록
“발람의 길” -벧후
“발람의 어그러진 길” -유 11절
“발람의 교훈” -계 2: 14
버가모는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주 예수님에 의해 선택되어 서신을 받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 하나였다. 주님께로부터 그 멧세지들이 주어진 당시에 그 도시들에는 분명 교회들이 있었으며, 각 교회는 그들에게 보내진 바로 그 멧세지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그 장들은 예언서의 일부이며 따라서 계시록 1장3절의 우리 주님의 말씀의 범위 안에 들어 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2장과 3장은 뒤에 이어지는 19장과 동일하게 예언적인 성격을 지닌다. 주님의 전지하신 눈이 사도시대로부터 그분의 강림시까지 교회가 밟게 될 길을 내다보았다. 그분은 햇살과 그늘, 충성과 배신을 바라보셨으며 들을 귀가 있고 그분의 뜻을 기꺼이 행하고자 하는 자들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펼쳐놓으셨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버가모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
계시록에 나오는 교회들 중에 버가모 교회는 서머나 교회 뒤에 나온다. 서머나에서는 핍박을 볼 수 있다. 예언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로마 황제들이 사단의 부추김을 받아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살하려 했던 교회 초기 역사의 2,3세기를 가리킨다 콘스탄틴 황제가 4세기 초에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기로 결정함과 더불어 변화가 생겨났다. 우리는 적어도 2백년 동안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모진 고난을 당해왔던 그 시기의 성도들을 동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제국의 권세자가 대적하기를 멈추고 오히려 친구가 되기로 고백했을 때 그 성도들은 얼마나 안도감을 느꼈겠는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더 이상 불명예롭고 위태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 되었고 감독들과 성직자들은 황제의 궁귈에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일반 대중은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사단의 궤계가 그 모든 과정에 침투해 들었다. 개중에는 물론 변화된 상황의 심각한 경향을 간파하고 그들의 주님께 충성하기 위해 위로부터 오는 은혜를 겸손히 구한 소수 영적인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은 눈이 가리웠다. 교회는 더 이상 세상과 구별되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의 대리자요 협력자였다. 심지어 어떤 신학자는 교회를 가리켜 “종교적인 측면에서 본 국가”라고 정의 내리기까지 했다. 주님께서 버가모 교회에게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고 말씀하신 것은 조금도 이상할게 없다 (계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들임을 기억하자. 교회는 이 악한 세상에서 나그네요 외인이다. 죽으시기 전날 밤 주 예수님은 제자들이 듣는 가운데 이렇게 아버지께 말씀하셨다.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 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요
또 제자들 자신에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사도 바울의 갈라디아서 1:4말씀은 얼마나 명명백백한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그 말씀과 일치하여 그는 같은 서신
여기서 어떤이들의 마음에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성경이 말하는 세상은 어떤 의미일까? 육신의 천박함과, 많은 고상한 사람들이 증오하는 육욕과 가증스런 것들을 가리킬까?”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은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창세기 4장에서 묘사된바 가인과 그 가족이 하나님과 별개로 세운 모든 질서 체계를 내포한다. 그 질서는 정치, 종교, 사회, 경제, 과학 등등의 지류로 발전, 확정되었다. “세상”은 지역마다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는 있으나 그 원리 -하나님과 별개로 생각하고 행 동하는 것 -에 있어서는 어느 곳이든 동일하다. 사람들이 영원한 파멸을 자초하며 사랑하고 추구하는 이 땅의 모든 질서 체계에 대해서 성도들에게 경고하면서 요한일서
어떤이는 “기독교가 들어와서 인류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는가? 오늘날 우리는 기독교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가?”라고 물을지 모른다. 그 답은 정반대이다. 기독교가 들어옴으로 전체 상황은 전보다 더 악화되었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하나님 없이 일을 행하는데 단호했으며, 그들의 죄와 어리석음 위에 은혜로 말미암아 보냄받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거절하는 잘못을 추가했다. 십자가의 그늘이 온 인류의 행위 위에 드리워 있으며, 그 무서운 죄는 여전히 처벌되어야 한다. 갈라디아서
만나-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는 스스로를 낮추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한 오멜의 만나가 금항아리에 담겨 성소에서 여호와 앞에 두어져야 했다(출
그것을 받는 자에게 비밀스럽고 개인적인 새 이름을 지닌 그 흰 돌은 주님의 인정에 대한 표현이다. 하나님께로 성별된 가운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가운데 그분의 발자취를 힘써 좇은 모든 이들에게 얼마나 큰 보상이 주어지는지!
계시록의 일곱교회에 보내진 서신들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파괴적인 교훈들이 얼마나 일찍부터 뿌리를 내렸는지를 보여준다. “니골라당의 교훈”과 “발람의 교훈”, 그리고 여선지자 이세벨의 사악한 가르침을 보라! 도덕적인 악과 교리적인 악 모두에 대해 기록되기를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고 했다(고전
(199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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