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올바른 해석(17) - 예언
성경의 진리 중 예언의 해석이 다른 어떤 영역보다 가장 많은 논란이 된다. 예언에 접근하려면 효율적이고 통일된 체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경해석의 황금률인 예언 구절의 문자적, 문법적, 역사적, 문화적 이해를 따르면서 동시에 알레고리적 해석을 할 수는 없다.
성경의 예언을 황금률을 따라 해석하면, 필연적으로 성경의 세대주의적 관점에 도달하게 된다. 즉 전천년, 후천년, 무천년적인 견해를 애매하게 섞을 수는 없다. 먼저 관점을 결정해야 한다. 아니면 차라리 해석의 결과로 관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모든 예언적 진리를 다 포함할 만큼 포괄적이어야 하고 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예언을 문법적, 문자적으로 접근하면 균형잡힌 세대주의가 되고 세대주의를 올바르게 전개시키면 예언의 전천년적 관점에 이르게 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평이한 언어와 강력한 용어로 그리스도가 통치하실 다가올 황금시대를,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의 머리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이 세계의 수도가 되고, 평화, 진보, 번영이 보편적 규범이 될 것을 예언했다. 예언을 문자적으로 접근하면 곧바로 이런 관점에 이른다.
성경의 예언에 접근할 때 그 의미에 대한 여러 의견을 살피기 전에 다음과 같은 질문에 먼저 대답해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이 예언은 문자적, 비유적, 시적, 상징적 언어로 표현되었는가? 이 구절의 문자적 해석은 무엇인가? 이 선지자는 언제 살았고 그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이 예언은 완전히 실현되었는가,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는가, 혹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는가? 이 예언은 선지자 자신의 시대에 즉각 실현되었으나, 또 다른 혹은 그 이상의 완전한 실현이 미래에 남아 있는 측면이 있는가? 이 예언은 유대인, 이방인, 하나님의 교회와 관련되는가? 예언에 조건이 덧붙여져 있는가? 예를 들어 니느웨의 운명에 관한 요나의 예언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성경의 다른 부분이 이 예언에 대해 어떤 조명을 주고 있는가? 예언에 신비로운 요소가 있는가? 예를 들어 호세아의 예언에 “내가····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호
거의 모든 예언은 네 개의 커다란 산봉우리의 실현 중 하나와 관련된다.
(1) 구약의 많은 예언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스도의 탄생, 생애, 사역, 고난, 죽으심, 부활, 승천, 오순절 성령강림, 이 모두가 예언되어 있다.
(2) 성경의 수많은 예언들이 기독교의 마지막 시대 사건과 관련된다. 교회의 휴거와 기독교계의 일반적 배교로 절정에 달한다.
(3) 또 다른 예언들은 그리스도의 지상재림과 관련된다. 사단의 메시아인 짐승이 나타날 것과 그가 전세계적인 권력을 가질 것을 예언하며, 대환난, 아마겟돈 전쟁, 열방의 심판을 예언한다.
(4) 또 다른 예언은 천년왕국과 관련된다. 지상에 그리스도의 문자적 왕국이 세워지고 새 하늘과 새 땅에 영원한 나라가 세워짐으로 절정에 달한다. 성경의 예언을 해석할 때 이 네 가지 주요 영역을 마음에 두면 쉽다.
성경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정확히, 전혀 틀림없이 예언하는 능력 때문에 다른 책과 구별된다. 순수한 예언에는 기본 조건이 있는데 성경은 이 요구를 다 만족시킨다. 예언은 이루어지기 전에 쓰여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즉 사람의 예측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야 한다. 예를 들어 혜성이 언제, 어디에 나타날 것을 예고하는 것은 예언이 아니라 수학이다. 또한 예언은 자세해야 한다. 델피 신전의 유명한 신탁 예언인 “리디아의 부자이고 승승장구한 왕인 크로에수스(Croesus)가 페르시아와 전쟁을 한다면 그는 큰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다”라는 예언은 참된 의미의 예언이 아니다.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암호같은 발언이다. 크로에수스왕은 이 말을 자신이 페르시아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 그러나 그가 멸망시킨 나라는 자기 나라였다. 진정한 예언은 예언과 그 실현 사이에 충분한 시간이 경과되어야 한다. 그래야 예언자나 다른 이해 관계자가 가짜 실현을 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예언은 정당한 절차를 따라 분명하고 확실하게 성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주 예수께서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예언하신 부분을 살펴보자.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마
이 예언에는 12개의 특별한 세부 사항이 나와있고 이 모두가 실현되었다.
성경 해석 원칙 중 어떤 것은 보편적 성격을 띠고, 다른 어떤 것은 예언에만 적용되기도 한다. 반복하게 되지만, 12개의 기본 원칙을 다시 한번 가볍게 살펴보자.
1. 예언적 전망의 원칙
많은 성경 예언은 두 개의 결정적 사건, 즉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초점을 산의 두 봉우리로 비유할 수 있다. 한 봉우리 뒤에 두 번째 봉우리가 있고 그 사이에 커다란 계곡이 있다. 선지자들은 그 봉우리를 분명히 보았으나 그 사이의 계곡은 볼 수 없었고 그 계곡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긴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구약 예언에는 그리스도의 두 번 오심이 겹쳐져 있다. 오늘날 숨겨진 계곡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두 번 오심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구약 성도는 교회시대를 전혀 몰랐음을 에베소서
시편 22편은 그리스도의 두 번 오심이 겹쳐진 예이다. 다윗은 시편에서 이 위대한 메시아의 갈보리에 관한 두 가지 사실을 자세히 말한다. 처음에 갈보리의 끔찍한 현실을 말하고(1∼21절) 십자가 죽음을 마치 바로 옆에서 본 것처럼 분명히 묘사한다. 그 후 갈보리의 놀라운 결과를 말한다(22∼31절). 즉 메시아를 (1) 제사장으로(22∼26절), (2) 왕으로(27∼31절) 말한다.
그 다음에 다윗은 세대를 뛰어넘어, 다가올 나라가 세워질 때 이방 민족이 주님을 경배하는 모습을 본다.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의 전환은 급작스러워서 마치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후의 영광 사이에 아무런 간격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윗이 보기에는 없었을 것이다.
해석의 이 원리를 잘 이해하면, 다니엘의 예언, 특히 다니엘 11장의 길고 복잡한 예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선지자는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의 사건에서 바로 시리아 침략자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죽음까지 연속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단
2. 파노라마(연속해서 바뀌는 진술)의 원칙
성경의 예언은 이미 언급한대로 세 종류의 사람, 유대인과 이방인과 하나님의 교회와 관련된다(고전
3. 시적 표현의 원칙
어떤 예언은 시적, 비유적, 상징적 언어로 표현된다. 가끔 예언이 이런 방식으로 표현되어 그 의미가 의도적으로 숨겨진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가 이 경우다. 이러한 비유는 진리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감추는 동시에 믿는 자에게는 계시된다(마
성경 최초의 예언은 그 성격이 시적이고 비밀스럽다. “내가 너(뱀)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성경의 예언을 이해하려면 상징, 언어의 비유적 표현, 모형, 비유, 알레고리 등을 알아야 한다.
많은 성경 예언이 시적인 형태로 쓰여졌기 때문에 이 형식 뒤에 숨어있는 문자적 진실을 찾으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상징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계시록의 예언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상징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성령께서 상징을 어떻게 다루셨는지 잘 봐야한다. 어떤 말씀을 문자적으로 볼 것인지 상징적으로 볼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상징으로 사용된 많은 것들이 또한 문자적 실체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계
4. 점진적 계시의 원칙
자주 예언적 진리는 다른 성경 진리처럼 한번에 계시되지 않고 몇 단계로,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일부는 이사야에서, 또 예레미야에서 약간씩 계시된다. 이같은 원리의 대표적인 예가 “씨”에 대한 예언이다. 그리스도의 두번 오심의 진리는 조금씩 성경 전체에 걸쳐 나온다. 똑같이 적그리스도의 출현도 한꺼번에 성경의 한 부분에서 다 주어지지 않고, 점진적으로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방법으로 주어졌다.
예언적 진리가 점진적으로 감동되었다는 사실은 이 진리가 역시 동일하게 점진적으로 조명될 것을 말해준다. 예를 들어 다니엘은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단
또한 예언적 진리에 대한 우리 자신의 개인적 이해도 자주 점진적이다. 때때로 우리가 취했던 관점을 바꿔야 하며, 더 많은 빛을 받을수록 전체적 모습을 더 잘 파악하게 된다.
5. 당혹케 하는 세부사항의 원칙
호세아
예언 해석은 마치 큰 그림 맞추기 같다. 우리는 예언 조각을 들고 어디에 맞추어야 하나 하고 생각한다. 전체 그림을 맞추는데는 하나가 중요하다. 하나라도 맞지 않는 곳에 억지로 맞춰서는 안된다. 혹은 어떤 조각이 이상하게 생겼다고, 내 생각과 어긋난다고, 그 조각을 치워버려도 안된다. 우리가 인내하면서 정직하게 예언적 진리를 다루면 성령께서 곧 그 조각들이 어디에 맞는지 보여주실 것이다.
바벨론, 앗시리아, 이집트 그 외 다른 나라를 다루는 구약 예언에는 많은 난처한 세부사항들이 있다. 어떻게,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 불분명한 경우도 자주 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신하기로는 이 그림 맞추기가 결국 쉽고 자연스럽게 될, 즉 예언이 성취될 날이 오리라는 것이다.
6. 기본적 연합의 원칙
선지자들은 우선 자기 세대 사람들에게 예언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배교하던 시대에 나타났다. 선지자들은 우선적으로 이 민족이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관심을 쏟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메시지가 분명히 예언적인 경우 선지자들이 살던 시기를 살펴보아 그 시대가 이 예언에 어떤 빛을 던져 주고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사야는 이사야서의 처음 5장을 이스라엘의 도덕적, 영적인 죄악을 꾸짖는데 쓰고 있다. 그가 말한 상당 부분은 자신의 시대와 관련된다. 왜냐하면 앗시리아의 무서운 힘이 점점 자라나 지평선 위에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북왕국의 10지파가 앗시리아에 의해 흩어지는 것을, 그리고 유다 역시 앗시리아 군대의 힘을 느끼게 될 것을 이사야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의 경고의 상당한 부분은 이런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유다를 공격하기 위해 동맹을 맺은 것이 이사야 7장의 배경이다.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작은 나라인 유다를 공격하기 위해 연합군을 형성했고 이때 유다 왕 아하스는 어쩔 줄을 몰랐다. 이때 이사야가 그에게 징조를 주겠다고 하자, 이 우상 숭배한 고집스런 왕이 거절한다. 그래도 이사야는 징조를 준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마태복음
이사야 8장에는 더 정교한 예언이 나온다. 이사야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붙인다. 이는 “빨리 빨리 약탈하라”는 뜻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긴 바 될 것임이니라”(사
아하스 왕 3년에 다마스커스는 약탈 당하고 르신 왕은 죽고 앗시리아 군은 사마리아에 접근한다.
예언의 원래의 연관성이 자주 예언 자체에 빛을 던져준다. 예를 들어 많은 구약의 예언은 앗시리아와 바벨론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곧 침략할 것을 말한다. 이 예언들이 가끔 마지막 시대를 연상시키는 것도 사실이나 예언된 것 중 상당수가 선지자 당대에 이루어졌다.
7. 부분적 성취의 원칙
성경의 많은 예언들은 가까운 시간에 혹은 상당한 시간 후에 성취되었다. 처음에는 최초의, 지역적, 부분적, 모형적 성취가 있다. 그러나 세부사항 중 얼마는 성취되지 않거나 일부만 성취된다. 그 이유는 나중에, 더 넓은, 완전한 성취가 있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멸망과 관련된 몇몇 예언들은 역사상 부분적으로만 성취되었다. 따라서 바벨론은 마지막 시대에 다시 세워지고, 바벨론에 관한 시간의 태 속에 잠자고 있는 이 예언들이 성취되기 위해 깨어날 것이다. 요한계시록 18장(바벨론에 관한 추가적 후속 예언)은 바벨론이 다시 세워져 짐승의 전세계적 제국의 경제 중심지가 될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성령 강림에 대한 요엘의 예언도 오순절에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욜
교회의 휴거 후에, 상황은 오순절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유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부어 주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령의 강력한 부으심이 있을 것이고 셀 수 없는 수백만의 이방인이 구원받을 것을 말한다. 이 때 요엘서에 예언된 심판의 표적이 이루어질 것이다.
8. 명백한 성취의 원칙
우리는 예언의 문자적 성취를 기대하며, 성경의 명백한 진술을 알레고리로 만들고자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 말씀하셨으면 이스라엘을 의미하신다. 교회를 말씀하셨으면 교회다. 그리스도의 처음 오심과 관련된 예언은 문자적으로 역사상 실현되었다. 그와 똑같이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과 관련된 예언도 때가 되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오늘날 국가 이스라엘이 문자적으로 다시 세워진 것은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이 가깝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떤 특정한 예언적 약속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 가를 항상 볼 수는 없어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있다. 사마리아의 기근은 하나님께서 상황을 다루시는 단순하고, 직선적이고, 자연스런 방식의 예이다(왕하
시리아 군대가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성의 기근이 매우 심각해서 백성들이 자기 자식을 잡아먹기까지 했다. 왕이 이 끔찍스러운 이야기를 듣고는 선지자 엘리사를 비난한다. 엘리사의 답변은 예언적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때 한 장관이 엘리사를 비웃는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그러자 엘리사가 말한다.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왕하
구약의 많은 예언이 애굽과 관련된다. 사실 에스겔은 애굽을 치는 7개의 연속적 예언(29장, 30장)을 하면서 애굽의 미래에 관한 수십개의 진술을 한다. 이 예언들 중 얼마는 바벨론 침공시에 문자적으로 이루어지나, 나머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사야, 예레미야, 요엘도 애굽의 미래, 애굽과 이스라엘과의 적대 관계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도 아직 실현되지 않은 세부사항이 보인다. 예를 들어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애굽 해고(tongue of the Egyptian sea)를 말리우시고”(사
9. 그림같은 모형의 원칙
많은 구약의 전기(傳記), 역사, 종교는 그 성격상 모형적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인물, 사건, 의식(儀式)에 관한 기록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하실 일을 보여주기 위해 성령께서 계획하신 일종의 예언인 것이다.
예를 들어 다윗과 솔로몬 같은 사람의 생애는 예언적 교훈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먼저 다윗처럼 모든 원수를 굴복시키실 것이고 그리고나서 솔로몬처럼 번성, 화려함, 평화 가운데 다스릴 것이다.
레위기 23장에 나오는 “여호와의 절기”는 모형적이고 예언적이다. 이 절기는 매년 지켜야 하지만 표면상 나타난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이 절기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등 네 개의 절기는 연초(年初)에 지켜졌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실제 오순절날 성령강림으로 예언된 대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히브리 달력으로 7월까지 비어있다가,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을 지킨다. 이 두 그룹의 명절 사이에 빈 시간이 `현시대’를 예표한다. 남은 세 개의 절기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 모이는 것, 이 민족이 깨끗하게 되어 그리스도에게 회개하는 것, 영광스럽고 기쁜 천년통치를 보여준다. 처음 세 절기의 상징처럼 남은 세 절기도 똑같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다.
모형 속에 숨겨진 예언은 구약의 도처에서 발견된다. 요셉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놀랍게 예표한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단
모형은 일종의 예언이다. 모형 위에 교리를 세울 수는 없으나 모형이 신약의 진리를 분명히 예시해 주고, 성경의 예언에 빛을 던져주는 것도 사실이다.
10. 번역 문제의 원칙
성경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쓰였기 때문에, 성경을 번역본으로 읽게 된다. 어떤 번역도 모든 상세한 면까지 정확할 수는 없다. 어떤 히브리어나 헬라어 단어는 다른 언어에는 그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기도 한다.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번역할 때 한 단어나 한 구절을 삽입하게 되기도 한다. 엄밀하게 번역해 놓으면 딱딱하고 읽기 어려우며, 좀 더 자유롭게 번역하면 어느 정도 해석을, 그리고 가끔은 번역자의 개인적 편견이 포함되어 버린다.
데살로니가후서
11. 개인적 해석의 원칙
아무도 모든 진리에 대해 다 알고 있지는 못하다. 우리 모두는 맹점이 있는데도 자기 견해만 옳다고 생각하는 경 향이 있다. 특히 예언을 다룰 때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만일 우리 견해가 유별나고 억지스럽거나, 대부분의 보수적인 성경학자, 특히 종말론 분야의 전문가들의 견해와 어긋나면 우리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다수 의견에는 유의해야 할 교리적, 종파적 경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종말론이라는 회전목마들 중에서 특정한 것만 골라 타고 있다면, 즉 유별난 예언 해석을 지지하고 있다면,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중요한 진리를 발견했을 수는 있으나 우리가 틀렸을지 모른다. 새로운 개념을 더 끌고가기 전에 우리 입장이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확실히 일치하는지 조용히 살펴봐야 한다.
12. 완전한 정돈의 원칙
우리는 “일관성 있는 성경 해석”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성경을 공평하고 통일성 있게, 성경 본문과 우리 자신에게 지적으로 정직하게 해석해야 한다. 우리의 해석 체계와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 부분에 대해 더 많은 빛을 갖게 될 때까지 기꺼이 기다릴 필요가 있고, 필요하다면 우리의 입장을 바꿔야 한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 13장의 한 곳에 나오는 짐승을 적그리스도라 해석하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두 번째 짐승도 적그리스도라 할 수는 없다. 이같은 견해는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예언의 전체 모습을 잘 이해하면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다음 호에 계속>
(1998년 5월호)
'횃불 > 1998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의 발자취-그리스도를 만난 윌리(8) (0) | 2014.10.06 |
---|---|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 (0) | 2014.10.06 |
사도행전 나타난 기도 (0) | 2014.10.06 |
레위기의 다섯 제사(1) (0) | 2014.09.29 |
노아-그의 생애와 그 시대(9) (0) | 2014.09.29 |
우리가 진정 드려야 할 것 (0) | 2014.09.29 |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에(8) (0) | 2014.09.23 |
모든 스승보다 명철함 (0) | 2014.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