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올바른 해석(20)
죤 필립스
성경의 숫자
숫자의 상징성에 대한 믿음은 초기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는 과학이었던 것이 곧 미신으로 타락해서 결국 숫자점(点)으로 발달했다. 유대인의 신비 철학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 알렉산드리아의 애호가들, 영지주의자들-이 모두가 숫자에서 신비한 의미를 보았다. 현대의 숫자 신비연구가들은 숫자에 있는 모든 종류의 이상한 의미를 발견했다.
여기 나오는 것은 숫자학의 신비술을 축소시켜 놓은 것은 아니다. 사단은 항상 하나님을 모방한다. 또한 성경의 숫자에 관한 연구도-이것도 성경 연구의 한 분야이긴 하나-아니다(히브리어나 헬라어는 모든 스펠링이 또한 숫자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가 하려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숫자의 의미일 뿐이다. 견해가 다양하기는 하지만, 여러 숫자들이 일반적으로 어떤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 누구나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가 매우 자주 나온다는 것을 볼 수 있고 특히 요한계시록은 7로 가득 차 있다. 숫자 5와 그 배수는 성막에서 두드러지게 나오며, 40이라는 숫자도 가끔 의미심장하게 쓰일 때가 있다.
성령께서 숫자를 어떻게 세밀하게 사용하셨는지를 전망할 수 있는 해석구조는 없다. 다만 여기서는 명백한 것 몇개만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의 숫자가 가진 의미 위에 교리를 세울 수는 없으나 성경 진리에 어떤 단서를 제공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숫자를 붙이셨고(첫째날, 둘째날···· 등으로) 또한 말씀에 숫자를 엮어 짜셨다. 식물학자들은 식물의 숫자의 순환 패턴에 익숙하다. 줄기에서 잎이 자라나오는 방식은 특정 법칙을 따르고 있을 뿐 아니라 엄격한 숫자적 순서를 따른다. 몇개의 잎이 나온 후에는 처음 잎이 나온 그 줄에서, 처음 잎의 바로 위쪽에 잎이 난다.
자연의 다른 부분에서도 그러하다. 악보의 음표도 각 음의 차이를 숫자화한 것이다. 각 음이 최대로 차이가 나면 11까지 벌어진다. 도처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여하심을 본다. 성경에서 숫자는 매우 엄밀하게 쓰인다. 성경 기록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초자연적인 계획을 이 숫자를 보면 알 수 있다. 각 숫자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그 의미는 나타난 주제와 일치한다.
1은 기본수이다. 다른 숫자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모든 숫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1은 하나님, 가장 위대한 최초의 근원, 모든 것에서 독립되어 있으면서 모든 것의 근원인 하나님을 나타낸다. 숫자 1은 모든 차이를 배제한다. 유대인들의 위대한 신앙 신조인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
2는 차이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두번째 사람’(고전
3은 완벽을 나타낸다. 공간을 묘사하거나 기하학적인 그림을 그리려면 3개의 선이 필요하다. 어떤 물체든 3차원이 있으며 문법의 인칭,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를 포함하는 인칭이 셋이고, 시간을 표시하는데도 현재, 과거, 미래 셋이고 모든 물질을 동물, 식물, 광물 셋으로 나누고, 사람의 능력도 생각, 말, 행위 셋으로 나눈다. 3은 분명히 매우 중요한 숫자다.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들, 성령 세 분이심이 계시되었고 성막의 지성소는 완벽한 치수, 즉 10규빗 x10규빗 x10규빗이다. 그리스도는 3개의 직분을 가지셨다-선지자, 제사장, 왕. 그분의 부활은 3일째에 일어났다. 성경에는 3명의 고대 배교자가 나온다-가인, 발람, 고라. 사람의 3가지 적(敵)은 세상, 육신, 사단이다. 가장 중요한 3가지 은혜의 선물은 믿음, 소망, 사랑이다. 주 예수께서 3명의 죽은 자를 살려 주셨다- 방금 죽은 어린 아이, 장사지내러 가고 있는 사람, 죽은지 나흘 된 사람.
4는 이 세상 것, 땅의 것과 특별한 관련이 있다. 4는 세상의 숫자, 물질적 완벽함의 숫자이다. 나침반에 가장 중요한 4개의 점은 동, 서, 남, 북이며 하루를 4등분하면 오전, 낮, 오후, 밤이며, 1년의 4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4개의 중한 벌은 칼, 기근, 사나운 짐승, 온역(瘟疫)이다(겔
5는 은혜의 수이다. 넷에 하나를 더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분의 손으로 만든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과 축복을 더해 주셨다. 성막과 그 부속품들은 5와5의 배수로 되어 있다. 바깥 뜰의 길이는 100규빗x 50규빗이다. 기둥 사이의 간격은 5규빗이고 성막의 크기는 10규빗×30규빗×10규빗이다. 성막의 옆쪽에는 20개의 널판이 있고 이 널판은 5개의 띠로 연결되는데 네 개의 띠는 보이고 한 개는 보이지 않는다(하나님께서 은혜로 낮아지셔서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다). 거룩한 관유를 5개의 재료로 만들었고 향도 5개의 재료로 되어 있다. 주님께서 배고픈 무리를 은혜로 먹이실 때 5개의 떡으로 5천명을 먹이셨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5가지의 은사를 주셨다-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자, 교사. 이들을 통해 은혜의 복음을 나타내신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5개의 매끄러운 돌(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워진 인간의 약함)을 들었다
6은 인간의 숫자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사람은 6일에 창조되었다. 하루 12시간과 1년 12달은 6의 배수이다. 가인의 후손 목록은 6대(代)까지 기록되어 있고, 골리앗의 키는 6규빗이었고, 6조각으로 된 잠옷을 입었고, 창은 쇠 600세겔의 무게였다. 느부갓네살의 우상은 높이가 6규빗, 넓이가 6규빗이었다. 이 우상에게 숭배할 시간을 알리기 위해 6개의 악기가 동원되었다. 짐승의 이름의 숫자는 666이다. 사람이 본질상 죄인이므로 6은 자주 죄와 관련된다. 사람은 7일 중 6일을 일해야 하며 제6계명은 사람의 이웃에 대한 가장 심각한 죄인 살인을 다루고 있다.
7은 영적인 완벽과 관련된다. 일곱째 날은 하나님께서 따로 구분해 놓으셨고 후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 언약의 표시이자 인(印)침으로서 안식일이 된다. 7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어원은 “가득차다”,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히브리서에는 7개의 ‘더 좋은 것’이 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7마디의 말씀을 하셨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워 간 최초의 사람인 에녹은 아담의 7대손(代孫)이다. 이스라엘의 속죄의 날은 7번째 달에 있는 절기이다. 900년 이상을 산 사람이 7명이다: 아담, 셋, 에노스, 게난, 야렛, 므두셀라, 노아. 그 중 7번째 사람인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했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777년을 살았다.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 7번 몸을 담가야 했다. 성경의 첫 구절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히브리어로는 7개의 단어로 되어 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7로 가득차 있다. 일곱 교회, 일곱 인(印), 일곱나팔, 일곱 대접, 일곱 천사, 일곱 왕, 일곱 심판, 7개의 새로운 것. 레위기에서는 피를 일곱번 뿌렸고 성막의 성소의 등대엔 7개의 등잔이 있다.
8은 새로운 시작, 그러므로 부활과 관계있다. 음악에서 8번째 음은 다시 처음 음과 같아지고 새로운 음계가 시작되는 더 높은 옥타브로 올라가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8번 언약을 맺으시고 8번째 언약은 부활의 축복과 관련된다(창
9는 마지막 심판을 나타내고, 6과 비슷하다(3+3=6,3×3=9). 히브리어의 알파벳이 22개인데 이를 숫자로 고쳐 더하면 4,995(5 x 999), 즉 은혜와 마지막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10은 성경의 완벽한 숫자 중 하나이다. 수학 10진법의 토대이고 질서의 완전함, 어떤 것으로 가득참을 표시한다. 모든 의무를 기록한 십계명이 있고 주기도문은 10개의 절로 되어 있고 십일조는 하나님의 요구 전체에 대한 사람의 온전한 인식으로서 마땅한 바를 나타내며 애굽의 열 재앙도 하나님께서 그 땅을 다루시는 완벽함을 나타낸다. 짐승의 세계 권력은 10나라의 연합에 기초하며 이는 우상의 10개의 발가락(단
12도 성경의 완전한 숫자 중 하나이다. 12는 하나님의 통치의 온전하심을 나타낸다. 통치와 관련된 모든 것에는 12나 12의 배수가 꼭 나온다. 이스라엘 12지파-사실상 13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목록에서 12로 세셨다. 주님에서 막 탄생할 교회, 그리고 언젠가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기 위해 13사도를 세우셨다. 완벽한 통치의 모델인 새예루살렘에는 12개의 문이 있고 12종류의 보석으로 장식된 12기초석이 있다. 이 성의 길이, 넓이, 높이는 12,000스타디온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실 때 주님께서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 아느냐”고 말씀하셨다. 즉 인간의 잘못된 통치를 즉시 끝낼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 중 태어나시고 침례 받으시는 그 사이에 한 번 나타나신 것은 12세 때였는데 주님께서 하나님에 의해 온전히 통치되고 계심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13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숫자이고, 성경에서도 나쁜 징조를 나타내며, 반역이나 배교를 상징한다. 13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는 장면도 매우 함축적이다. “이들이 십이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삼년에 배반한지라”(창
40도 성경에 자주 나오는데 금지와 시험의 숫자이다. 8×5이므로 은혜와 부활을 합쳐놓은 모습이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며(신
666은 적그리스도의 숫자이므로 나쁜 뜻을 갖고 있다. 유대인인 키신저(Henny Kissinger)가 미국 국무장관이 되었을 때 여러 혼란스러운 추측이 일어나기도 했다. 사람들은 여러 숫자적 책략을 써서 666에서 키신저의 이름을 끌어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교황, 엘렌 화이트, 그래드스토운(영극 빅토리아 왕조의 수상), 히틀러의 경우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666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영적인 의미를 빼더라도 묘한 숫자임에 틀림없다. 36(6×6)을 기호로 해서 666개의 점으로 완전한 삼각형을 만들 수 있다. 1과 36사이에 있는 모든 숫자를 더하면 666이 나온다. 로마자의 처음 6개(I. V. X. L. G. D)는 거꾸로 쓰면(DGLXVI) 아라비아 숫자 666이 된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것을 성경적 해석이라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이 숫자론을 흥미있게 만들어 주긴 하나, 결국 신비술에 탐닉하고 있는 시대에 인기있는 많은 사이비 과학 중 하나일 뿐이다.
666은 교회 휴거 후에 살게 될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짐승의 우상을 만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이 우상을 숭배하게 할 것이다. 또한 이 제국에 대한 충성심의 표시로써 그리고 경제적 조정 수단으로써 누구나 짐승의 이름 혹은 그 이름의 숫자를 표시해야 할 것이다. 그 수가 666이다. 아마도 짐승의 이름은 맨 마지막에 계시될 것이고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쓰게 되면 이 숫자가 나올 것이다.
이반 파닌(Ivan Panin)이라는 학자이자 비평가가 있었는데,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모든 글자에 숫자의 의미가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그는 1890년에 성경 본문의 표면 뒤에 수학적 구조가 있음을 발견했다. 파닌은 이 발견을 성경 본문의 진실성과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내는데 사용했다. 성경 원문을 이같이 연구하는 것은 우리 대부분의 능력 밖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용된 숫자를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음 호에 계속>
(199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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