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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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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6. 10:02 횃불/1999년

빌레몬에게 쓴 바울의 편지

 

― 제 1 부 복 음 ―

(4) 구 원

 

내게 하듯 그를 영접하라

 

17절에서 바울은 다시 그를 영접하라는 말을 하고 있으나 더욱 더 자세히 덧붙인다. 빌레몬에게 말하기를 나를 환영하는 것처럼 오네시모를 영접하라고 한다.

우리가 느끼기에 분명히 빌레몬은 바울을 매우 존경했던 것 같다. 바울이 골로새에 올 때마다 빌레몬은 그를 자기 집에 머물게 하기를 원했다. 그는 집에서 가장 좋은 객실로 모시길 바랐을 것이다. 만찬석에서도 그를 명예로운 자리에 앉히고자 했을 것이다. 존경하는 사도 바울을 위해서는 어떤 좋은 일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바울은 빌레몬에게 쓰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빌레몬이여, 내가 당신의 집에 갈 때면 나를 팔로 감싸 안겠지요? 이제 오네시모에게 이를 행하십시오!

애정의 따스한 입맞춤으로 나에게 인사하시겠지요? 이제 오네시모에게 이를 행하십시오!

대문에서 나를 보고 내 가방을 집안으로 들이겠지요? 이제 오네시모에게 이를 행하십시오!

나를 위해 제일 좋은 방을 준비하시겠지요? 이제 오네시모에게 이를 행하십시오!

나를 위해 큰 잔치를 준비하시겠지요? 이제 오네시모에게 이를 행하십시오!”

 

다른 말로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야기했다.

 

나를 영접하는 것과 똑같이 오네시모를 영접하십시오!

나를 환영하는 것처럼 그를 환영하십시오!”

우리는 보증자인 바울이 죄인인 오네시모를 대신하였다는 점을 전장에서 묵상하며 살펴보았다. 지금 우리는 그 사랑의 행위의 결과를 보고 있다. 빌레몬의 마음과 집에서 바울이 차지했던 자리가 오네시모에게 주어졌다. 이 모두는 우리의 보증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자리를 대신하셨으므로 이제 우리가 그분의 영광된 자리에 참여케 되었음을 묘사해 준다. 우리는 이를 크신 거래라고 부른다.

첫째 : 내게로 회계하라. 내가 갚겠다(그분은 나의 죄와 빚을 대신하셨다. 그분은 이를 모두 갚으셨다).

둘째 : 그를 영접하라. 나를 맞는 것처럼 그를 환영하라(나는 지금 그분이 차지해야 합당한 자리에 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주 예수여,

당신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신기한지!

이를 다 알아낼 수 없나이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에게 이것이 뜻하는 바를 좀 더 생각해 보자.

무엇보다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은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는 것과 똑같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이는 참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길, 그 안에서 우리로 믿고 기뻐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17장에서 그리스도는 당신의 아버지께 기도드렸다. 기도 가운데 그분은 많은 놀라운 일들을 말씀하셨다. 23절에서 말씀하시길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믿는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셨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누가 감히 하나님께서 아드님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측량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 사랑은 무한하며, 영원하며, 완전무결하다. 그런데 믿는 우리들도 그와 똑같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내가 사랑받을 수 없을 만큼

사랑하시도다.

아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당신의 그 사랑이

그렇게 내게 이르렀도다(C. Paget.).

 

또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우리는 받아들여졌다. 에베소서 1 6절은 이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접되었고, 환영받았으며, 받아들여졌다. 이유는? 우리가 할만해서?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은혜를 우리 무가치한 죄인들에게 부어주신다. “나를 맞듯이 그를 영접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마치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신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나의 구주를 보시며

그 때 나를 보신다네.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나를 받으시고

자유롭게 하셨네(Mrs. CD. Martin).

 

나를 맞듯이 그를 영접하라, 환영하라.”

이를 더욱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구절을 살펴보자.

그리스도 안에서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구절은 신약의 서신에서 60회 이상 발견된다. 이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믿는 자들의 신분에 대해 매우 귀중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 작은 책자의 크기로는 이 모든 구절들을 살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중요한 구절 속에 포함된 몇 가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간단한 개요를 사용해 보도록 하자.

 

동일시 됨 ― 우리는 이제 아담 안에서또는 죄 안에서의 존재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졌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소유된 자들로 알려져 있다. 골로새서 1 13,14절을 보라.

 

새로운 피조물 ― 고린도후서 5 17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가르친다. 새 생명이 그 안에 있다( 2:10).

 

완전한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충만한 생명으로 가득차 있다. 그분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시간과 영원의 전부이다( 2:9,10; 고전 1:30, 31).

 

거룩한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었다( 1:4). 요한일서 4 17절과 비교하라.

 

의로운 ― 이미 고린도후서 5 21절을 읽었다. 그러나 다시 살펴 그것을 읽고 즐거워 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의가 되었으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

 

가르침을 받은 ― 우리는 무지의 흑암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4: 21; 1:9).

 

굳게 선 ―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지위를 얻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아들여졌음을 말하고 있다( 1:6).

 

승리한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승리함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는 많은 적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강력하고 사악하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승리자 이상이다. 로마서 8 31-39절을 주의 깊게 읽어 보라.

 

그를 영원히 영접하라

바울은 오네시모를 환영하는 것에 대해 빌레몬에게 더욱 강조하여 덧붙인다. 새롭게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정말로 놀란다. 그는 충만한 마음으로 노래한다. “놀라운 은혜, 나 같은 비천한 자를 구원하다니, 그 소리는 얼마나 달콤한가!” 구원의 값을 지불한 그러한 사랑에 놀라고 하나님께서 그를 영접한 놀라운 방법에도 놀란다. 그는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안에서 가진 새로운 신분 가운데서 기뻐한다. 이는 진정 너무 기이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이는 너무 좋아 사실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자도 있을 수 있다.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깨어 나면 단지 달콤한 꿈으로 끝나는가? 그런 모든 것들이 지금처럼 매우 값진 것일까, 아니면 나로부터 떠날 수도 있는 걸까? 그것은 오늘 가지고 있는 비싼 다이아몬드나 값진 금화처럼 부주의로 잃게 되지는 않을까?

15절에서 바울은 매우 중요한 말을 그의 간청에 더한다. “그를 영원히 영접하라. 그가 돌아온 것을 선을 위하여 환영하라(14). 일생동안 그를 네 자신처럼 여기라.”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가 가진 영원한 안전에 대한 암시 이상을 본다. 값진 진리에 대한 분명한 실례(實例)이다.

무엇보다도, 큰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네시모는 집행유예에 처해 있지 않았다. 곧 재판 진행 중에 있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자가 아니었다. 빌레몬에게 그를 한 두 주간 시험해 보고 만족스럽지 않으면 감옥에 보내라고 하지 않았다.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오네시모의 빚을 다 갚았기에 그는 영접되어야 하고 완전히 용서되어야 했다.

그가 영접됨은 부분적이 아니었다. “불완전한 조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하지 못한다.” 그의 받아들여짐은 일시적이지 않고, 잠시 동안만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에 대한 선한 그림이 전혀 아니다.

대신 말씀은 그를 영접하라고 한다. 이 영접은 분명하고, 영원하며, 값지다. 우리 주 예수께서 그분의 구원에 관해 사용하시던 말씀과 똑같다. 끝없는 생명, 영생.

요한복음 3장에서 그분의 말씀들을 읽어 보라.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36).

또 요한복음 5 24절에서는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구절들은 그를 영접하라. 영영토록이라고 바울이 빌레몬에게 쓴 말씀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이 영원함을 드러내 준다. 영생은 영원하며 분명하고 변치 않으며 값진 생명이다. 다음 구절들을 보라.

영원하신 하나님( 16:26)께서 영원하신 사랑( 31:3; 개역에는 무궁한 사랑으로 나옴 ― 역주)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영원하신 성령( 9:14)을 통하여 아들을 보내시고 친히 하나님께 온전한 희생제물로 드리셨다.

영원한 언약의 피로써( 13:24) 그분은 우리를 위한 영원한 속죄( 9:12)를 이루셨다.

영원한 심판( 6:2)에서 구원하시고,

이제 그분을 믿는 우리 모두는 영생을 가졌다( 3:15,16).

그분은 영원한 구원의 근원( 5:9)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벧후 1:11)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영광(벧전 5:10)으로 부르셨다.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3:14).

 

이러한 참고 구절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참된 위대함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히브리서 2 3절에서 이같이 큰 구원이라고 불리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를 영원히 영접하라함은 영원한 구원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안전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러한 말씀들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가 진정 그분이 의도하신 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거나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는 동안만 지속된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우리의 찬양할 주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를 자세히 살펴보자. 그분은 27절에서 내 음성을 들으며 나를 따르는 이는 내 ’”이라고 한다. 그분은 친히 자기 목숨을 그들을 위하여 주시는 선한 목자이시다(11).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자기 생명을 주신다(28). 그분은 이 생명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부르신다. 이는 그분의 것이며,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거룩한 생명이다. 또한 그분은 결코 멸망치 않을 것이라고 말씀을 더하신다. 그들이 결코 잃어지거나 멸망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자는 멸망하다라는 말이 죄인이 지옥 속으로 영원토록 황폐히 통과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두려운 경험인가! 그러나 주 예수께서는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결코 멸망치 않으리라.” 이 일이 어찌된 연고인가? 그분은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부언하셨다.

아무도 ― 제일 힘센 자라도 안되고

아무도 ― 믿는 자 자신도 안되고

아무도 ― 어떤 천사나 천사장이라도 안되고

아무도 ― 지옥의 마귀들까지도 안되며

아무도 ― 사단도 안되고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이 얼마나 놀라운 안전인가!

나아가 주께서는 몇 가지를 부언하신다. 그분의 아버지께서 믿는 자들을 그 아들의 손에 주시며, 또한 그들은 아버지의 손 안에 있다! 아무도 우리를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29,30).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가르치는 것을 잘못이라고 할지 모른다. 즉 그렇게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고, 그래도 여전히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뜻이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다. 주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정으로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순종할 것이라 하셨다( 10:27).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 15:2). 대신, 주께서 그에게 바라는 대로 살며 그분을 기쁘시게 할 것을 항상 찾고 있다( 1:10).

 

그러므로 그를 영원히 영접하라는 말은 우리에게 영생이요, 영원한 안전을 의미한다. 또한 영원한 축복이요, 행복이다. 누가복음 15장에서, 고집센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왕 같은 환영을 받았다. 그의 회개는 기쁨을 낳았다. 굶주림은 잔치로 바뀌었다. 즐거운 축복이 시작되었다(24). 이는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진정한 축복과 행복을 우리에게 그려준다. 죄는 용서되었고, 이제 죄의 종이 아니기에 그들은 기뻐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함으로 잔치를 베푼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들과 함께 놀라운 가족의 교제로 즐거워한다. 성령의 열매는 그들의 것이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 5:22).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복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하다. 이들을 지금 누리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의 찬양할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온전히 누리게 될 것이다. 또 이 복들은 쇠하지 않을 것이다. 죄의 낙은 잠시 동안뿐이며 부패한다. 지상의 혼인 잔치의 포도주(즐거움)는 곧 떨어진다( 2:3). 또한 너무나 밝은 지상에서의 한낮은 밤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분복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의 집에서 많은 믿는 자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함께 즐겁고 행복한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주님과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들의 화제는 곧 천국으로 옮겨지고, 앞으로 다가올 복스런 소망에 대해 따뜻하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갑자기 한 사람이 천국에서는 어떤 존재가 가장 놀라울까?”라고 물었다. 이에 한 사람이 대답하되, “, 예수께서 천국에 계실 거네라 했다. 물론 이것이 천국에 관하여 가장 귀중한 사실이다. 그분이 거기에 계시지 않다면 천국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이에 동의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무엇이 가장 놀라운 것일까?” 다른 한 사람이 말하되, “나는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게 영광스러울 것이니까요!” 어떤 사람은 말하되 내게는 그분 곁에 있는 일이 놀라운 것이겠죠. 멀리 떨어져 뵙지 않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바로 저의 기쁨이죠.” 더 깊이 생각한 다음에 한 사람이 말했다. “나를 가장 감동시키는 일은 제가 그분과 같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겠죠”(요일 3:2). 이 말에 그들은 다음과 같이 찬송을 하였다.

 

제가 당신의

아들과 같이 될 거라는 게 그건가요?

이것이, 그분이

나를 위하여 승리하신 은혜인가요?

영광의 아버지,

모든 생각을 초월하신 생각으로,

영광 가운데서

그분을 닮게 하셨도다!(J. N. Darby)

 

그들 모두가 그런 축복된 진리들을 묵상하고 나서, 한 형제가 부드럽게 말하였다.

형제여, 그 일이 영원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귀한가.”

 

참으로 그렇다! 천국의 큰 복을 누린 후에 우리가 떠나야 한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백만 년이 지난 후 언젠가 하나님께서 일어나 말씀하시기를, “지금 내 집을 모두 떠날 때가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러나 주님을 찬양하라. 그러한 일들은 결코 없을 테니까! 그분의 사랑은 항상 마르지 않는다. “무궁한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31:3). 그러기에 그분의 말씀은 그를 영원히 영접하라이다. 우린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할 것이다(살전 4:17).

 

나 이제 예수님 것이고

그분은 나의 것이라네.

단지 여러 해 동안만이 아니라

영원토록 그러하다네!

(Norman J. Clayton)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다음 호에 계속>

 

(1999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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