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쉬 스미스
“계시들이 넘침으로 말미암아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게 육체 안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사 나를 치게 하셨으니 이것은 내가 분량 이상으로 높여지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 일로 인해 그것이 내게서 떠나도록 내가 주께 세 번 간청하였더니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되느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7-9).
저는 최근 지역 고등학교에서 35명의 크리스천 운동선수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학생들은 매주 수요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영감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연사의 프레젠테이션을 듣습니다. 저는 그날 아침 부분의 제목을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나는 세 번이나 암에 걸렸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 중 가장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관심을 끌 수 있는 제목이길 바라며 몇 가지 사항을 빠르게 정리했습니다. 우선,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운”을 믿지 않습니다. “복”이라는 단어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암에 세 번이나 걸린 사람을 왜 “복받은 사람”이라고 부를까요? 간단히 말해서, 저는 이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충분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라면서 저는 항상 은혜는 회심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은 복음 집회에서 강조되었습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사실이자 적절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은혜가 구원의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혜는 특히 인생의 어려운 시기에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의 구체적인 고난 중 하나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보고 들은 놀라운 계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타임라인에 따르면, 이러한 위대한 경험을 한 직후 그는 “육체의 가시”를 받았습니다. 난파, 구타, 돌팔매질, 채찍질, 투옥, 노숙, 음식과 의복 부족 등 그가 겪은 일들을 간단히 살펴봅시다. 이를 염두에 두면 바울이 불평불만이 많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그런 정당한 고난의 역사를 가진 바울에게 이 육체의 가시는 언급될 만큼 중요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소위 가시는 바울이 하나님께 떠나가게 해달라고 간청할 만큼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7-10절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봅시다:
성경 이야기 | 배운 교훈 | 함 의 |
가시가 주어짐 | 하나님이 여전히 통제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가시에 직면합니다 - 빈칸을 채우세요. |
육신에서 | 우리의 몸/삶은 일시적이다 | 영원한 마음가짐을 유지한다 |
사탄 마귀의 사자 |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 발판을 찾습니다 | 적의 공격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의 차이를 인식하십시오. |
세 번 | 고난과 고통 속에서 일관된 기도 | 매 순간 하나님께 절대 항복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
그는 하나님께 진정성을 남김 |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 그는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
그분은 나에게 말씀하심 |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 그는 우리의 미래를 미리 아신다 |
내 은혜가 충분하다 | 그분의 은혜가 만족스럽다 | 가시가 제거되지 않았다 - 약함 속에서 능력이 완전해졌다 - 그분의 임재를 경험했다. |
저는 개인적으로 바울처럼 고난이나 사탄의 사자를 다루는 전문가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 곳의 병원과 응급실에서 “암”이라는 단어를 선지자 나단과의 대화처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저는 건강 관련 문제에 대한 불안으로 상당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화학 요법은 폐에 영구적인 흉터를 남겼고 발에는 신경 병증을 남겼습니다. 저는 450개 이상의 약을 복용했고 주사 바늘로 280번 이상 찔렸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암이 생기길 바라지 않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충분한 은혜를 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솔직한 질문 중 하나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입니다. 저는 바울의 경우처럼 복음을 위해 이런 역경이 저에게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슷한 육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항상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고통에 대한 정확한 과학은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여러 시점과 그리스도인 성숙의 여러 단계에서 고통을 겪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관점을 제공한 것 같습니다. 그는 특히 이 '가시'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말하며, 6절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암시했습니다. 바울이 이 사실을 하나님이 계시해 주셔서 알았는지 아니면 백미러를 통해 요약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왜”가 항상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처럼 우리도 자신의 연약함과 자신의 힘이 얼마나 약한지를 깨달음으로써 최선의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 가시를 자신을 괴롭히는 사탄의 사자라고 묘사했습니다. 이 가시로 인해 바울은 세 번이나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안심할 만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가시는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교훈은 기도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응답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세 번의 암 진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런 시련이 없었다면 저는 하나님의 충분하신 은혜의 깊이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읽은 모든 책에서, 제가 들은 모든 간증에서, 그리고 성경 자체에서 이 은혜의 경험에 관한 반복되는 개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주께서 나와 함께 서셔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으니”(딤후 4:17)라고 말하면서 이를 잘 설명합니다. “그분께서 나와 함께 하셨다”는 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진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연약함 속에서 힘을 얻기 위해 의지했던 것이 바로 이 말입니다. 저는 동산에서 고뇌의 기도를 드리시던 주 예수님께서 육체적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아버지로부터 힘을 얻으시고 그 과정을 완주하신 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충분한 은혜는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해, 그 순간부터 성령님을 통해, 그리고 아낌없이 주시는 아버지를 통해 경험됩니다. 하나님은 가시를 주시는 동시에 충분한 은혜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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