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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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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9. 11:18 횃불/1980년

사라져가고 있는 것 일곱 가지

(Seven Things Ready to Die)

런던에서 J. B. Watson

1세기가 채 지나가기 전 사데 교회에는 벌써부터 영적 타락의 징후가 현저하였습니다. 참 신앙을 대변해 주던 경건한 생환습성이나 선행들은 차츰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사라질 위기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있는 주님의 백성들을 향해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사라져 가는 것)을 굳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며 신약교회들의 교제 형태를 본받아 모임을 갖는 무리 가운데서 일찍이 그들 가운데 번성했던 바람직하고 덕을 세우며 거룩하게 하는 것들이 하나씩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일깨워 이와 같이 사라져가고 있는 은혜로운 일들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원하면서 우리들 가운데 사라져 갈 위기에 있는 몇 가지에 관해서 우리의 주의를 환기코자 합니다.

 

1. 기도 집회

많은 주님의 교회에서 기도집회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설교를 들으려 집회에 참석하는 성도들이 기도회에는 잘 나오려 하지 않습니다. 교회 명부에 등록돼 있는 교인 중에 소수의 성도만이 항상 기도회에 참석합니다.

장로들의 대다수가 자주 기도회에 불참합니다. 한둘의 예외가 있기는 합니다만 젊은이 층은 기도회에 마음이 없습니다. 기도회는 빈번히 무미건조하여 싫증을 느끼게 합니다. 장황하고 의미 없으며 틀에 박힌 기도나 이름을 부정확하게 말하는 기도 등으로 침묵이 깨뜨려지기는 하지만 오랜 침묵의 공백은 시간을 지루하게 합니다. 기도회에 참석한 얼마 안되는 성도마저 맥이 빠져 집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따라서 이런 기도회는 의무감에서 참석하는 몇몇 충실한 성도들에 의해서만 유지돼가며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무기력한 기도집회가 어떻게 하면 힘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첫째. 장로들은 모두 정규적으로 기도회에 참석해야 합니다. 모범을 보이는 것은 곧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침묵대신 보다 많은 기도가, 많은 말보다는 마음의 표현이 그리고 졸음대신 더 많은 참여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 속에서 설교하는 것을 삼가고, 반복을 피하며 틀에 박힌 용어의 사용을 버리고, 각자가 솔직하게 고하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수 많은 것들 대신 참으로 마음에 부담이 되고 있는 한 두 가지만 분명하게 구하여야 합니다.

젊은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에 참여케 하고 나이 많은 성도들은 젊은 성도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기도회를 시작하기 전에 책임 있는 형제가 기도해야 할 특별한 문제가 있으면 이를 알립니다. 기도회에 불참한 형제나 자매를 다음에 만났을 때 기도회에서 뵙지 못했습니다라고 권고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개인 기도 생활을 통해서 기도회를 위해 기도 해야 합니다. 나 자신부터 철저한 기도의 사람 (man of player) 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나는 항상 기도회에 참석하게 됩니다. 기도회가 힘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회가 힘이 없는 교회는 다른 교회 활동이 제아무리 활발하다 하더라도 죽은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2. 개인전도

개인전도는 우리들 가운데 오로지 생명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영적 부흥을 말해주는 하나의 표시는 우리가 기회 있을 때마다 구원의 축복을 개인적으로 증거하는 열심입니다. 기쁨에 넘친 새로 거듭난 성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구세주에 대해서 증거하려 하는 진지한 열심을 가집니다. 자기 안에 있는 생명수의 샘에서 물이 넘쳐나고 있음을 말해주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잃어진 영혼들을 위한 열심히 우리 가운데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단순히 모임에 가는 습관에 젓어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주님의 만찬상에 앉아있는 성도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일주일에 한번씩 교회가 모이는 곳에서 약 한 시간 반 동안 자리를 함께 함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모든 책임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천국이나 지옥이 실제라는 입증을 보일만한 생활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잃어진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거나 지옥으로부터 구원해내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이들은 나는 구원받았으니(그렇기를 바라지만) 그것으로 만족하다, 다른 동료들은 천국을 가든 지옥을 가든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살고 있습니다.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33:8).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루에 한번씩 어떤 영혼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대화를 한다면, 일주일에 한사람씩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복음을 듣도록 진실된 노력을 한다면, 그리고 일년에 적어도 한 사람 이상 구세주에게 평소의 인도하는 것을 기도요, 생의 목표로 한다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의 일에 힘과 생동력이 얼마나 넘치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젊은 성도들이 모임으로 몰려들겠는가!

바로 나부터 시작하여 사라져 가는 이 덕행을 내 안에서 소생시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는 사람(영혼: soul)을 얻느니라”( 11:30).

 

3. 가정예배

가정예배가 우리 가운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가정에서의 경건”(딤전 5:4)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경건의 일에 있어서 가정예배보다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없습니다, 가정예배는 수천의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고 기도에 대한 신뢰를 하게 합니다.

오늘날 전세계를 통하여 주의 일에 열심을 다하는 유명한 사역자들의 대부분이 그들이 어렸을 때 혹은 젊었을 때, 가정에서 정규적으로 성경을 대하므로 그들의 생활에 경건의 기초가 놓여졌던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하나님 말씀의 한 부분을 읽고 함께 모인 식구들과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기억은 훗날 어떤 기억보다 강렬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숨쉴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도록 강요합니다. 또한 마귀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예배의식이 사라져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마귀는 아마 우리들 가정에서 가정예배를 중심으로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로 가르치는 것을 제일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의 선지자는 말합니다. “아버지들이여, 당신은 바쁜 것을 핑계로 당신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겨를조차 가지지 못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열심을 다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뜻 아래 교육시키고 있지 못합니다. 자녀들에게 훗날 저주가 될지도 모르는 재산을 쌓는 일에 온갖 심혈을 기우리고 그들의 마음에 양식이 되고 참된 재산인 영적인 일에는 가정에서 본을 보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비극입니다.”

 

4. 말씀의 묵상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 역시 사라져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 상태가 어떠한가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23:7).

한 개인의 공중생활이 거룩하게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또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어떤 대화의 시간을 갖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신앙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은 모름지기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대화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푸른 초장에서 말씀의 순을 먹으며 이를 되새김질하는 것은 큰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빛나는 얼굴은 오로지 산에서 하나님과 은밀한대화를 나눈 자의 소유입니다. 오늘날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발하는 빛나는 얼굴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이와는 반대로 근심걱정에 찌들은 이맛살과 슬픔에 쌓인 얼굴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진리의 샘물에서 영혼을 소성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러한 작업 곧 말씀을 상고하고 이를 통해 마음을 새롭게 하며 그 생각을 순화하고 새로운 각오를 하는 일이 없이 허겁지겁 세상일에 몰두합니다. 그들은 조용히 속 사람을 날로 새롭게 하고 자기 생각들을 정리하려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들이여, 이 모든 일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구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생활에 사라져갈 위험에 있는 말씀의 묵상을 생활화 합시다. 의도적으로 그리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일정한 시간을 내어 주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이를 묵상함으로 나의 영혼에게 필요한 영적 양식을 취하도록 합시다. “종일 주의 법도를 묵상하는 자가 됩시다.

 

5. 신앙에 관한 대화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말하기를 기독교란 하나의 비밀 단체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공식적인 집회나 예배시간을 제외하고서는 결코 자기들의 신앙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정의할 정도입니다. 오늘날 소위 구원받았다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들의 일상생활 중에서 자기 신앙 생활에 대해서 말하기를 두려워하거나 꺼려하고 있는가!

세상의 다른 화제에 대해서는 그것이 과학이든 발명에 관한 깃이든, 예술, 정치, 취미생활, 유행 등 어떤 것이든 유창하게 얘기하지만 유독 무엇보다 확실히 믿고 의지한다는 자기신앙에 대해서는 또 우리의 갈 천국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하기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레이톤은 개탄하여 명백히 더 좋은 나라로 가고 있는 우리들이 함께 만나거나 대화를 할 때 같이 갈 천국이나 그 천국의 영광이나 축복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서로 나누지 않고 헤어지게 되니 어찌된 것일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이 세상이 너무나 차지하고 있어 장차 올 세상에 대해서는 결코 얘기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와 너무나 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염려, 추구, 이해관계, 야망, 세상의 소식, 문학, 사업, 재미거리, 유행, 스포츠 등이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 유혹을 떨쳐버릴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바를 입으로 말하게 되어 있는 법입니다.”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며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3:16).

 

6. 손님대접

손님을 대접하는 일이 우리 중에 시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집에 평안을 빌라이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규례입니다. 주님을 위해 자기 집을 개방하고 성도들의 출입을 자유롭게 한 가정에는 주님의 특별한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외로운 영혼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직장의 이동 등으로 전혀 낯선 도시에 전입해서 그리스도의교제를 그리워하는 영혼이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따뜻한 교제의 장소가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세상은 인정이 없고 냉정합니다. 많은 사람이 온정을 찾아 방황합니다. 나를 반겨주는 집이 있다면 그는 포근한 교제의 장소에서 낙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교제의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손 대접하기를 잘하는 그리스도인 부부입니다. 이들 덕택에 외로운 영혼들이 마음의 휴식을 찾아 즐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초대해서 환영해주고 따스한 온정을 베푸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사역하는 형제들이 타향에 가서 여관에 머물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곳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수치입니다. 주님의 사역자를 초대하여 자기집에 묵게 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형제 하나가 간증하기를 자기에게 강퍅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하루는 자기 집에 주님을 사모하는 사역자가 와서 묵고 간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룻밤 묵고 갔지만 이 주님의 사역자는 강퍅한 자기 아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간증을 보여줘서 그 후로 자기 아들도 주님을 믿고 거룩한 성도의 생활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라”(벧전 4:9).

이 은혜(손 대접하는 일)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후 8:7).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13:2).

하나님께서 안락한 집을 주셨을 때 이 집이 과연 나 혼자만의 안락을 위해 주셨는지 자문해보고 성도를 위한 교제의 장소로 제공하며, 좋은 것을 서로 나눔으로 축복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7. 재림의 소망

한때는 성도 마음에 불타올랐던 재림에 대한 소망이 차츰 식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오해되고 큰 힘이 되지 못해 왔던 재림에 관한 가르침이 약 1세기 전에 다시 부활되어 이 나라(영국)에 영적 부흥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영혼을 얻기 위한 열심과 새로운 헌신, 그리고 새로운 기쁨의 생활들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재림에 대한 소망이 다시 식어가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재림에 관한 여러 희한한 이론들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날짜를 정하는예언, 영국-이스라엘, 애굽-피라미트 산식, 부분 휴거설, 전 천년 및 후천년설 등 여러 학설들은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분명했던 소망을 흐리게 합니다.

이상 언급한 7가지 외에도 성도들의 신앙을 약화시키고 있는 많은 요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들이여! 잠에서 깨어 일어나 우리 안에 사라져가고 있는 앞에서 언급한 이 귀중한 것들을 다시 회복합시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 하시리라”( 10:37).

 

 (1980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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