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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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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10. 15:06 횃불/1991년

주의 만찬 - 훌륭한 전도

- H. A. 아이언사이드 -

너희가 이 백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이 말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중의 한 가지는, 거듭난 성도들이 함께 모여 떡과 잔을 나누면서 주님의 영원한 속죄(贖罪)”를 기념할 때마다 이것이 불신자들에게는 훌륭한 전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에 인용할 사례는 그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여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그들은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단지 의()를 위한 순교였을 뿐만 아니라 죄인들을 위한 희생, 곧 그분이 죄인들을 위해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것 입 니 다.

어떤 친애하는 일본인 한 사람이 캘리포니아의 세크라멘토에서 열린 집회에 몇 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영혼에 관하여 갈등을 겪게 되었지만 돈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습니다. “만일 제가 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다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좋을지 걱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한테, 이 땅에서는 부자가 되고 영원의 세계에서는 가난하게 되든지 아니면 이 땅에서는 가난하게 되더라도 영원의 세계에서는 부자로 지내든지 선택해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우리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그 당시에 한 일본인 전도자가 저와 함께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저는 바로 이 일본인 전도자를 통해서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 년이 지나 저는 세크라멘토로 다시 돌아가 집회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노방(路傍)에서 복음을 전하던 중, 청중 가운데 섞여 있는 작은 일본인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표정에는 근심이 어려 있었고 이것은 제 마음을 동요시켰습니다. 전도시간이 끝나자 그는 가까이 다가와 제 손을 잡고 흔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다시 뵙게 되어 저도 반갑습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아직은요. 저는 그분에게 대항하고 있습니다. 저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제가 만일 그분을 영접한다면 저는 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여기 어떤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그에게 집회 장소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어떻게 죽으셨는지를 보여주는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그런 집회가 일요일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다음 일요일 오전에 있습니다. “

그 때 가겠습니다.”

일요일 오전에 우리는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려고 모였으며, 집회가 시작할 때 그 일본인이 들어와 안쪽 가까이에 앉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해 주시도록 기도했고, 집회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우리는 그가 크게 동요되고 있음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떡과 포도의 소산을 나누었고, 이 이방 일본인은 그대로 앉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남은 떡과 포도주가 상()에 다시 놓이자마자 그가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 지금 기도하고 싶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런! 이 집회에서는 저 분이 저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미리 말을 해줬어야 하는건데!’

하지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하나님, 저는 이제 완전히 부서졌습니다. 일 년 내내 저는 하나님과 싸워왔으며, 그 싸움은 실로 격심한 것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저를 산산이 부수었습니다. ! 하나님, 오늘 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므로 예수님이 저와 같은 죄인들을 위하여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 하나님,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셔서 저를 위해 죽게 하실 정도로 저를 사랑하십니다. 저는 더 이상 하나님과 싸울 수 없습니다. 이제 저는 굴복하고 그분을 저의 구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기도는 우리의 집회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단순한 규례(, 주님의 만찬을 가리킴-역주)가 그에게 전도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집회가 끝났을 때 우리는 그의 주위에 모여 함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저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그분을 믿으면 물 속에 장사지내므로 옛 생활은 지나갔고 새 생활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침례를 받고 싶으신 모양이지요? 일 주일 동안 선생님을 살펴보고 아마 다음 일요일쯤 침례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에 그는 일본인 전도자를 기리키며 말했습니다. “일 년 전에 저분이 말씀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고 하더군요. 과연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말은 사실입니다. “

그분은 곧 오십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그분은 다음 주 일요일까지 안 오실까요?”

글쎄요. 저는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데요. 그분이 그 전에 오실지도 모르니까요.”

그렇다면 저는 다음 일요일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 장사되고 싶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다음으로 미루려 했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우리는 오늘 오후에 강으로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날 오후에 그는, 우리가 일본인 거류지 내에서 가장 부자라고. 말하는 일본인 시장(市長)과 함께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나타났으며, 그의 뒤에는 40명이나 되는 일본인 상인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했고, 그는 간증을 나누었으며, 그런 다음 침례의 물 속에서 장사되었습니다.

주님의 만찬은, 우리의 구주께서 의도하신대로 마땅한 위치를 차지하기만 한다면 세상에게 계속 전도할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어떠한 말보다 더 강력하게 말할 것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수년 동안 알아 오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궁금히 여 기는 것은 이 규례가 여러분에게도 귀중한 것이냐 아니냐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그저 율법적인 의식으로서,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냥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여 떡과 잔을 나눈다는 느낌을 갖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명령이라기보다 오히려 부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구주께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실 때 그분은 이것을 반드시 행하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는 너희가 이것을 행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랑하는 부모 중의 한 분이 임종하기 전에 자녀들을 침상 곁으로 불러 모으고 각인에게 사진을 한 장씩 건네 주며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일반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 내 사진이 있다. 이제 나는 너희를 떠날 것이므로 너희는 잠시 동안 나를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희가 각각 이 사진을 소중히 보관하면서 때때로 꺼내 보고 나를 기억해 주기 바란다.” 사랑하는 어머니나 귀중한 아버지 혹은 귀여운 자녀가 이런 부탁을 했을 때 남은 가족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의무이겠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임종한 가족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기쁨으로 그 사진을 자꾸 꺼내어 보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분은 나를 사랑하셨지. 이제 이분이 나를 떠나셨지만 이렇게 사진을 꺼내 보니 추억이 새롭구만.”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주님의 만찬이 차지해야 할 위치입니다. 여기에 율법적인 것은 없으므로 만일 여러분이 원치 않는다면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주를 의뢰하기만 한다면, 그분의 고난과 죽으심을 잘 말해 주는 잔에 단 한번도 참여하지 않고서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이 그분을 향한 사람으로 가득찬다면 여러분은 때마다 그분의 백성들과 함께 모여 그분을 기념하기를 기뻐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을 받지 않으셨다면 혹시 주님의 만찬이 구원을 얻는 하나의 수단이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만찬상 앞으로 나아오는 것으로 여러분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증거를 얻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만찬이 전하는 멧세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3)!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규례가 아닙니다. 성례전(聖禮典, sacrament,”주의 만찬을 가리킴-역주)이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저 복되신 구주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의뢰해야 할 분은, 여러분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저 구주이시며, 주님의 만찬이 묘사하는 바는 이분의 죽음입니다.

 

(1991 9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