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3. 6. 18. 14:19 횃불/1993년

그리스도의 무오하심(3)

서신서에서

- 죤 스탑스 -

여기서는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무죄하신 완전이라는 복스럽고 중대한 주제를 밝히 드러내고 있는 네 구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고후 5:21)

바울은 깊고 성숙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가 그리스도의 내면의 순수함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대해 놀라지 않게 됩니다. 알다”(knew)로 옮겨진 헬라어 단어는 파악하다”(noted)로 옮겨져야 하는데 이것은 그분이 충분하고도 완전히 죄를 알지 못하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죄를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죄를 전혀 의식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주님의 마음 속에 일말의 죄의식이라도 있었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구주의 품행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제자들은 그분 안에서 악한 양심의 징후들을 관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감지되었다면 그것은 분명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평가를 수정하게 했을 것이며 그 결과가 서신서에 알 수 있게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신서 어디에서도 우리는 우리 주님의 무죄하심에 대한 의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주님의 무죄하신 삶에 대한 믿음이 분명히 진술된 것만을 발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무죄하심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대리적인 성격과의 중요한 관련하에 진술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인격적으로 죄에서 자유롭지 않으셨다면 그렇다면 그분은 나를 대신하여 죄인이 되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이 절의 후반부는 이어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죽음과 그러한 희생에 가치를 부여하는 그분의 무죄하신 성품의 결과로서 신자는 그리스도안에서 현재적인 열납을 발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 도덕적으로 절대 완전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면 하나님 앞에서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신자의 위치는 완전히 무너질 것이며 실로 우리는 소망 없는 자로 전락될 것입니다.

 

2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혹은 죄에게서 떠나 계시니라) “( 4:15)

여기에서 강조된 그리스도의 무죄하심은 그분의 모든 시험은 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죄를 초래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죄에 의해 시험당하지도 않으셨으며 죄를 범하도록 시험당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유혹받다”(tempted, 우리말 성경에는 시험받다로 되어 있음-역주)는 말은 시험받다”(tested) 혹은 시련당하다”(tried)로서 분명 죄의 유혹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유혹에 대한 야고보의 정의에 의하면 각 사람이 시험(유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1:13~14). 이것은 주 예수님의 복스런 성품에는 전혀 적용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분 안에는 타락하고 죄악된 본성이 없으며 따라서 그분은 결코 유혹에 반응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유혹은 외부에서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오는데 우리는 종종 실패하며 그 결과는 죄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결코 시험에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달리 결코 굴복하지 않으신 까닭에 시험의 유인력이 얼마나 강인한지를 아셨습니다. 오직 주 예수님만이 시험의 완전한 힘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동정하실 수 있는 이유입니다.

어떤 이는 그분의 동정심을 완전케하는 것은 그분의 무죄하심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그분께서 조금이라도 시험에 굴복하셨다면 그것은 그분의 동정의 능력을 무너뜨렸을 것입니다.

 

3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벧전 2:22)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행동의 사람 베드로에게 죄를 범치 않으신 분에 대해 기록하도록 하셨습니다. 앞 구절에서 우리는 주님의 자취를 좇으라는 권면을 듣게 되는데 이는 본문이 그리스도를 신자의 완전한 본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분은 육체적으로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과 동일한 참 인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도덕적으로는 모든 사람과 다른 독특한 인간이셨습니다! 그분은 무죄하신 면에서 독특합니다. 그 흠 없으신 분께서 죄 많고 타락한 인류가운데 거하셨던 것입니다. 어떤이의 표현대로 그분의 삶은 시커멓게 오염된 세상의 은빛 강줄기와도 같았습니다.”

그분 안에는 어떤 악의 성향도 없었습니다. 그분 안에는 옛범죄로 인한 어떤 연약함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인정할 어떤 결함도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셨으며 죄에 대해 승리하셨으며, 그 무죄하신 인성이 그분을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듯 보이지만 우리는 그분의 본을 좇는데서 위로와 도움을 발견한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그분을 좇고 있습니까?

J. G 벨레트는 나는 어떤 신자가 사복음서에서 주님의 영화롭고 복스런 모습을 관찰하고는 깊이 감동이 되어 눈물을 글썽이며 오 주님, 내가 주님과 함께 있다면!’라고 외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고 말했는데,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4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 3:5)

묵상의 사람 요한은 그리스도의 무죄하심에 대해 위와 같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여기서의 강조점은 라는 낱말에 있으며 따라서 본문은 그에게는 죄가 전혀 없느니라”(Sin in Him, there is none)고 옮겨져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죄를 담당하신 분 자신은 인격적으로 죄로부터 자유로우셨습니다. 요한일서에 나타난,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시며(2:20) 깨끗하시며(3:3) 죄 없으시며(3:5) 그리고 의로우시다(3:7)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그의 깨끗하심과 같이라고 언급되어 있는 것은 흥미로운데(3:3) 이것은 주 예수님이 이 땅에 머무시는 동안만 깨끗하신 것이 아니라(요한은 주님이 깨끗하셨다고 하지 않고 깨끗하십니다고 표현하고 있다) 부활하여 영화롭게 된 상태에서도 깨끗하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지금도 여전히 깨끗하십니다! 아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성경이 예수께서 죄를 범하실 수 없으셨다고 특별히 진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참 신자는 그분이 죄를 범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불가능했다고 확신하리라고 단언하게 될 것입니다.

동일한 서신에서 주님은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5:18)로 언급되어 있는데 3:9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혹은 죄를 지을 수 없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구절을 결합할 경우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분이 죄를 지을 수 없으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상의 네 구절에 담긴 교리적인 의미를 요약해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무죄하시며 다음 사실들은 그분의 무죄하심에 의존한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1)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현재적으로 열납되는 축복(고후 5:21)

2)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분의 동정의 능력( 4:15)

3) 그분의 완전한 본의 실제성(벧전 2:22)

4) 그분의 갈보리 구속사역의 가치(요일 3:5)

 

죄없으신 구주께서 죽으셨으니

내 영혼의 죄값 다 치러졌고

의로우신 하나님, 그분을 보시고 만족하사

나를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네.

 

(1993 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