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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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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8. 07:09 횃불/1977년

노동은 귀하다

 

B. 핫피일드

이 글은 오늘 날 중대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청소년 범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한 바 있어 적은 소고(小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부형 제위께서는 무슨 쓸 데 없는 잠꼬대나 하실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기 결론부터 말하고 싶다. 아동 훈육에 있어서 적당히 일 시키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말이나 이미 50고개를 넘었을 때에도 나 역시 이 일함으로써 받는 축복에 대하여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 생애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전 4 30 전에 기상하여 11 취침하기까지 나는 거의 쉴새없는 나의 일의 댓가로 그 모든 축복을 만끽하고 있다. ‘이 육체적 노동이 내게 준 댓가를 이를라 치면 한정이 없어 책이라도 쓸 정도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하위에 둘만한 축복을 말하라면 그것은 건강이라 하겠다. 노동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육체적 건강은 어떤 의약으로도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모님들께 감히 권하고 싶은 것은 자녀들로 하여금 일하는 것을 즐길 수 있도록 그렇지 않으면 최저한 어떤 어려운 일에 부닥칠 때 그것을 불안없이 자신하여 감당한 수 있도록 훈육 해주라는 것이다. 그들을 기독교적 교리와 교양으로 양육하는 것도 중요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중생케 하는 것도 물론 선결 문제다. 그러나 저들에게 노동하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나 그들 자신에 대해서나 부모님들에게 대해서나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나태한 그리스도인은 아무데서나 쓸모없는 존재이다.

지식은 책을 통하여 얻고 지혜는 힘든 노동을 통하여 얻는다. 노동으로 말미암아 얻는 지혜란 실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중요한 것이다.

맡겨진 어떤 일 한가지를 완성시키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심 주의하여 작업해 나가는 과정은 인격 형성에 있어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막중한 가치를 부여한다. 장성기의 왕성분방한 정력을 제멋대로의 방종에 발산시키기 쉽고 그리하여 도가 지나치면 후에 그 자신이나 부모들이나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르게 되는데 이와 같은 것을 노동으로 조화 훈육할 때 그에 수반되어 생기는 효과는 여러가지 면으로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자녀에게 일을 시킬 때에는 그 일이 아무리 지루하고 또 귀찮다 하더라도 짜증을 내거나 이의 변명 같은 것을 말하여 어떻게 해서든 그 힘든 일을 모면해보려고 하는 일을 결코 방임해두지 말라는 것이다. 이 점 부모로서 엄하게 대하지 않으면 결국엔 이와 같은 기질이 차차 장성함에 따라 뒤에 성인이 되어서 어떤 힘든 일 꼭 해야 할 일에 부닥쳐 기피하려고 들고 그리하여 종내는 낙오자가 되고 만다. 아이들은 어릴 때에 길들여진 습관대로 장성해서도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구리가 올챙이 적 일을 잊어버린다는 속말도 있듯이 부모들이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너무나 쉬이 잊어버린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겠다.

젊은이들이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타락하고 무법한 궤도에서 굴러다니는 이 가슴 아픈 형상에 대하여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저들은 세상에 나온 후 젖꼭지 때고 자란 18여 년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고 또 노는 것밖에 배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년이 되어 생활 전선에 나가서 양심적이고 떳떳한 생계를 유지해 가기 위한 그 모든 고해(苦海) 속에서는 자신을 앓고 극복할 힘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노동은 육체를 피곤하게 만들고 참된 휴식을 즐길 줄 일게 하며 진정한 여가의 선용으로 인도한다. 실내의 휴지통을 매일 비우게 한다든지 여아들 같으면 자기가 입는 옷은 자기가 세탁해서 입게 한다든지 집안 일을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돕게함으로써 책임감을 양육하고 희생 정신을 함양시킨다. 고난을 견디고 나가는 내구력을 갖도록 단련한다. 어렸을 때의 이러한 훈육없이 어떻게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길러 낼 수 있을 것인가? 일을 시키는 것이 애처롭다 하여 혹은 학업에 지장 된다 하여 혹은 자녀들의 의사를 강박하지 않는다는 등등의 이유로 집안의 소소한 잡일에 까지 부모들이 하고 아이들의 손을 거치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 자녀의 장래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작은 일에 순종하는 것을 배워 버릇해야 후에 큰 일에 있어서도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연한 순 같을 때에야 교정할 수 있는 문제지 이미 뻣뻣하여 뻗을 대로 다 뻗은 다음엔 제아무리 눈물을 흘리고 탄식해 보아야 헛일일 뿐이다.

오늘날 문제화 되고 있는 청소년 범죄는 거의 어렸을 때에 노동을 경시한 부모님들의 방심상태에서 빚어진 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30세까지 목수 일을 하심으로써 가족을 부양하신 것도 부하건 가난하건 부모들은 그 자녀에게 반드시 어떤 직업적인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유대인의 관례에 따라 목수 요셉의 직업을 전수하신 것이라고 한다.

신문 지상에 보도되는 바와 같은 그 엄청난 무법한 행실과 방종도 결국은 그들이 어렸을 적부터 부모에게서 배운게 그것이 고작이었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제 마음대로 하도록 방임되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자녀들이 하는 짓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는 않으면서도 차마 견제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런 것을 못하게 하면 난 그 애를 영영히 잃어 버리고 말 거에요.”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 애는 이미 부모에게서 이탈해 버리고 만다는 것을 부모들은 모른다. 오직 그 실상이 드러나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어렸을 적부터 쉽고 간편하고 힘 안드는 일만 해버릇 하고 제 마음대로 놀기만 한 자녀들은 이 복잡하고 수고로움이 많은 사회에서 능히 모둔 난관을 극복하여 생활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훈육은 자녀들의 연령을 불문하고 처음 몇 년간은 만사 제쳐 놓고라도 이 일에 전념해서 그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사실상 이렇게 길들이기 시작하는 시초는 힘들다. 그러나 장래에 맺어질 결과를 생각하면 그 수고야 아무것도 아니다.

단호하게 그리고 부드러운 태도로뿐만 아니라 권위를 세워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밤낮으로 간구하면서 즉시 시작할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일하는데서 순종하기를 배우게 되고 자제하기를 배우게 된다. 따라서 모든 것이 질서 있게 진행됨으로써 부모 대 자녀, 자녀 대 부모의 사랑이 언제나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어릴 때 일수록 길 들이기 좋다. 10살 또는 12살쯤 되면 문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 때에 가서 교정하기에는 너무 늦다

연주회에 나가는 피아니트는 오랜 시간을 연습함으로써 비로소 대중 앞에 나가게 된다. 아이들은 반복함으로써 일하기를 배우게 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는 다 이와 같은 반복의 과정을 통하여 모든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침부터 밤까지 진종일 일만 시키라는 말은 아니다. 진정한 노동 이후에는 진정한 휴식이 따르는 법이다. 이것은 심히 유익한 것이다. 자녀들로 하여금 궂은 장난을 못하게 하느라고 일만 시키는 것은 금물이다. 건전한 노동 뒤에 따르는 건전한 오락은 아동들로 하여금 딴 짓궂은 일을 꾸밀 여유를 주지 않는다. 오직 그런 것은 아이들이 과도한 게으름을 익힐 때에만 따르는 문제이다. 나태는 바로 사단의 작업장(作業場)인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녀들 중의 첫째 둘째는 이와 같이 철저히 훈육시킬 것이다. 대게 동생들은 형들의 본을 따르기 마련이다.

노동에 관한 하나님의 여러 말씀들을 숙고해 본 일이 있는가?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땀흘려 노동하기를 원하셨는가? 수고로움이 없는 인간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무서운 마귀의 형상을 닮기 때문이다. 고로 하나님은 인간의 생활에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을 주셔서 스스로 겸비해져 모든 환난을 체험하여 자기의 종국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다음 성구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지혜를 얻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3:19).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2:24).

게으른즉 석가래가 퇴락하고 손이 풀어진즉 집이 새느니라”( 10:18).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6:6).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10:26).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13: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12:24).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 하는 자의 형제니라”( 18:9).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살후 3:10~12).

-기타 참고 절-

16:5,18, 19:13,24, 26:15, 20:4, 21:17,25, 22:6,29, 29:19,23, 25:28,28:20, 4:28, 딤전 5:6, 25:21.

 

(197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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