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교사 샘터
32. 발람과 나귀
(민
강단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유창하게 전파하던 전도자로서 백성들은 그가 결코 강단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강단을 떠났을 때 그의 행실은 극히 악하여 백성들은 그가 다시 강단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발람이 이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23, 24 장에 기록된 발람의 선교는 참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워서 성경의 일부로서 마땅하다. 그러나 그의 행실에 대하여 성경에서 거듭 거듭 경고해 주고 있다. 이에 관한 실례로서
그가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던 당시(신
발람의 나귀가 매우 늙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30절에서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는 말씀을 보면 짐작이 간다.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는 표현 속에는 태어날 때부터임을 암시하고 있다. 과거에는 발람이 선한 주인 노릇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전에도 나귀를 때려 주었다면 28절에서 세번을 때렸다는 사실이 그리 놀랄만한 사건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발람의 기분이 몹시 상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는 나귀를 때렸을 뿐 아니라 칼을 들어 죽이려고 했던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사람이 무엇인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을 지적하려 들면 몹시 흥분하게 된다.
칼을 든 천사가 세번이나 발람을 대해 마주 섰다 그때마다 어떤 일이 일어났든가? 처음에 나귀는 밭으로 뛰어 들어갔다(23절). 두 번째 나귀는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비비어 상하게 했다(25절). 세 번째로 나귀는 발람의 밑에 엎드렸다(27절). 그러나 세번씩이나 경고를 받고서도 발람이 계속해 나아갔을 때에 주님은 그를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셨다. 다시 말해서 더 이상 범죄하지 못하도록 막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싸움에서 죽게 하셨다(민 31:8). 그가 천사의 칼날은 세 번이나 피할 수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칼날에 죽임을 당했던 사실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누구나 죽음이 아주 가까이 있지만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발람은 여호와께서 그의 눈을 여시기까지 깨닫지 못했다(31절) 그가 눈을 열어 보게 되었음에도 중지하기는 고사하고 자신은 하나님을 눈으로 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라고 자만하기에 급급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이랴!
욕심을 부리다가 그 보응을 받았던 사람들은 또 누가 있을까? 아간, 게하시, 유다. 아나니아, 나귀와 관련된 또 다른 사람은 누구일까? 그 중에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셨었다. 그리고····?
(197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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