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상징에 관한 해석④
7. 요나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
삼페이(John. R. Sampey)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나 선지자는 두 가지 면에서 우리 주님을 상징하고 있다(마
케네디 (J. Kennedy)는 이를 설명하면서 “요나서의 기록이 그저 단순한 비유일진대 이를 기록한 사람은 한 선지자를 모독하는 죄를 범한 것이며, 아울러 그러한 자가 그 선지자의 주님의 감동을 입었을 리 만무하다”라고 말했다.
(1) 요나는 전도하라는 하나님의 분부를 받았다(욘
(2) 요나는 전적으로 자신을 버렸다(욘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스스로 버리셨다(마 26:50, 고후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요나가 주님께 순종치 아니하고 도망함으로 그처럼 파도가 흉융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요나는 그로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자신을 제물로 내어주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멸망 중에 있는 인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그 생명을 버려 주셨다. 요나서
(3)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았다(욘
하나님은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려고 그를 다시 살려주셨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도 복된 소식이 전파되게 하기 위안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만으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파해야 할 뿐 아니라 부활하셔서 이제도 살아계신 주님을 전파해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며 우리의 믿음도 무의미할 것이다.
(4) 유대인이었던 요나는 이방인에게 복음의 사신이 되었다 (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물려받게 된 데에는 유대인의 숨은 공로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요나는 베드로처럼 애국자였다. 그는 어째서 이방인도 구원의 반열(班列)에 참여하게 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책망하셨다(행
8. 도피성(민 35장, 수 20:6 )
히브리서
(1) 도피성은 쉽게 달려갈만한 곳에 있었다. 도피성에 관하여는 민수기 35장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국내 어디에서든지 하룻길 밖에 되지 않았다. 도피성은 골짜기가 아닌, 언덕 위에 있었기 때문에 잘 보였다. 우리 주님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 이제 가까이 나아가서 구주를 쳐다보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을 것이다.
도피성의 성문은 항상 열려 있다. 지금은 죄인들에게 은혜와 구원의 시대이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들어올 수 있도록 은혜와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2) 도피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거주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정해져 있어서 미리 따로 젖혀 놓았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약속하셨다. 사람이 범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즉시 구주를 약속하셨다(창
(3) 도피성에는 절대적으로 안전이 보장되어 있었다. 무죄한 사람은 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 성에서 보호를 받았다. 그 후에 그는 그가 사랑하는 처자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 대제사장이신 주님에게는 죽음이 없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 숨어있는 성도는 영원토록 안전한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 함이 없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제사장 직분은 일시적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제사장 직분은 영원 불변하다.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 해 주실 제사장은 죽음을 맛보셔야만 했다(히
(4)도피성은 그 지명이 뜻하는 대로 완전무결한 곳이었다.
① 가데스는 ‘거룩하다’, 또는 ‘의롭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신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겉옷을 입기 위해 우리의 더러운 누더기를 벗어야 한다. 그 옷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며 만족히 여기실만한 그런 의의 옷이다. 인생에게는 이러한 의로움이 없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어주셨다.
② 세겜은 ‘어깨’란 뜻이 있다. 어깨는 힘의 상징인 동시에 짐을 질 때에 긴요한 부분이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 갈 때에 그의 양 어깨에는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이름이 있었다.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에도 어깨에 메고 갔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짐을 완전히 져주시는 분이시다. 우주 만물을 붙들고 계시는 주님의 능력의 팔은 지극히 연약한 성도일지라도 능히 붙들어 일으키실 수 있다.
③ 헤브론은 ‘교제’를 의미한다. 헤브론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의 화목이 깨어진 이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된 교제를 상징한다. 주님은 우리를 친구로 삼으시려고 홀로 하늘로부터 내려 오셨다.
④ 베셀은 ‘요새’(要塞)란 뜻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요새이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안전하기 이를데 없다. 사단은 강하지만 우리 주님은 사단보다 훨씬 강하신, 전능하신 분이신다.
⑤ 라못은 ‘존경을 받는다’,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보다 낮게 여김을 받으시며 심지어는 벌레와 같은 취급을 받으셨다. 그러나 후에 주님께서는 모든 천사들 보다 높임을 받으셨다. 우리 의 중보자는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앉아계신다.
⑥ 골란은 ‘기쁨’을 뜻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셨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시 16: 11).
이상 도피성과 그 이름의 의미를 상고해 볼 때 도피성이 되시는 우리 주님은 완전무결하시며 하나님과 모든 인생들에게 만족할만한 분이심을 깨닫게 된다(창 17: 1). 주님은 엘 샤다이 (EL Shaddai),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어떠한 부족도 채우실 수 있는 분이시다.
(7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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