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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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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6. 10:44 횃불/1979년

주 교사 샘터

45. 어리석은 나발

(삼상25: 1-19,25,36-39 / 26: 21 /삼하 3:33)

다윗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임을 알게 되었으리라. 마지막으로 다윗의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들어 다윗을 그들의 지도자로 추대하게 되었는가를 상고하면서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죄인들에게 주님께서 지워주시는 멍에가 무엇인가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다윗을 반대하는 무리들이 있었고 그 말로(末路)가 비참했음을 거울로 보여주고 있다. 위의 요절들을 읽게 되면 이들 중에서도 세 사람을 가리켜 바보’,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라 불리우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나발을 가리켜 태어날 때부터 미련한 자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그가 어렸을 때에 나발이라 이름한 것을 보아 짐작 간다. 히브리어로 바보라는 뜻의 낱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25절에서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의 설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누구나 부모가 어린 자녀를 바보라 이름한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재롱삼아 바보라고 부르며 웃었을는지 모르겠다

다음으로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하다가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하였도다라고 26 21절에서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발이 태어나면서부터 바보였다면 사울은 자신의 행실로 말미암아 바보가 된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윗이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던 아브넬을 슬퍼하면서 아브넬의 죽임이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삼하 3:33)라고 탄식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보처럼 죽은 사람을 보게 된다. 바보로 태어난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딱한 일이다. 그러나 행실로 인하여 바보가 된다는 것은 더욱 딱한 노릇이다. 그렇지만 바보로서 죽는다는 것은 가장 비참한 일이다.

이 세 사람이 모두 다윗에 대한 처신으로 말미암아 바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다윗은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으므로 다윗에 대한 태도는 다른 어느 것 보다 중요한 것이었으며 그를 대적한 뭇사람들은 마침내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께로부터 돌이키는 자들은 장차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4절 말씀을 통하여 나발은 갈렙 족속이었음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그의 조상들과는 판이한 사람이었다. 갈렙은 여호수아로 더불어 광야에서 주께 충성스러웠기 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간 믿음의 사람이었다.

10절에서 다윗이 누구며····근일에 각기 주인에게 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라고 다윗을 피상적(皮相的)으로 알고 있었음은 중대한 착각이었다. 다윗이 블레셋의 침략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한 사실에 대하여 모든 이스라엘을 백성들이 알고 있었건만 나발은 다윗을 사울에게서 뛰쳐나온 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11절에서 내가 어찌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내 고기라는 말씀은 누가복음12 16절로 21절에서 내가····내 곡간을····내 모든 곡식과(내 모든) 물건을····이라고 말하고 있는 농부와 흡사하다. 그 사람에게도 어리석은 자라 불리웠고 나발처럼 그가 자랑한지 얼마 지나지 못해서 최후가 다가왔다. 그는 여러해 동안 더 살게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생각과 같지는 못했다.

16절에서 그들이····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고 말한대로 다윗의 부하들은 도둑이나 아랍인들이 약탈을 못하도록 그들과 그 가축들을 보호해 주었다.

17절에서 아비가일은 나발을 가리켜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라고 나발의 인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기에 3절에서도 행사가 악하더라 했고 9절에서 다윗의 사환들의 말을 중동무이 해버린 것을 보아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때에는 구제불능이 되어 버린다.

36절에서 나발은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배설하여 마치 왕처럼 행세하려 했지만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접대하지 않으려 했다. 나발의 이 장면은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하던 누가복음 12장의 부자와 잘 어울리지 않는가?

나발은 다윗을 주인에게서 달아난 종으로 취급했지만 아비가일은 다윗을 가리켜 28(개역)이나 내 주라고 부르고 있음을 주목할만한 대조이다.

이들 부부의 다윗에 대한 태도가 이들을 영영토록 헤어지게 만들어 버렸다.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었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서 수많은 부부와 골육친척이 영영토록 헤어지게 될 것이다.

*기억해 둘 말씀 / 1:32

 

(79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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