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
제7장 독이 들어간 국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왕하
엘리사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수넴에 사는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리자 곧 그는 흉년이 들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길갈로 갔습니다. 이러한 기근은 길갈에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길갈은 하나님께서 놀랍게 축복해 주셨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로부터 약 6백년 전에 길갈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그들은 요단 강가에 서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요단에 들어서라고 명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수
지금 길갈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있어서는 안될 흉년이 길갈에 임한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길갈의 다른 면을 살펴봅시다. 여러분은 길갈에서 돌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세히 상고해보면 그 돌은 정확히 열 두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요단물이 맑다면 여러분은 요단 가운데 있는 또 다른 열두개의 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돌들은 무슨 뜻을 지니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왜 그곳에 돌들을 두었는가 하는 의심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그 돌들은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기념해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길갈은 애굽에서의 수치를 굴러가게 한 곳입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길갈에서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를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다른 곳에서는 흉년이 있을지라도 길갈에는 흉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다른 이유가 남아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길갈에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을 지킨 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유월절 이튿날에 그들은 그 땅의 소산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그들은 만나를 먹었습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만나는 우리가 영생을 얻도록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육체를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소산(所産)은 다시 살아나사 하나님 우편에서 믿는 자를 위해 간구하시는 영광을 받으신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 줍니다.
이러한 사건이 모두 길갈에서 일어났었습니다. 길갈은 기적의 장소였으며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신 곳입니다. 길갈은 세상과 분리된 곳입니다. 그곳은 유월절을 지켰던 장소였으며 소산이 풍성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길갈에는 흉년이 들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열왕기하 4장 38절에서 그 답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오늘날에도 땅에는 흉년이 들었음에도 가만히 앉아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전파하지 않습니다.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앉아 있을 시간이 있겠습니까!
독이 들어 있는 국
엘리사는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고 명했습니다.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서 야채 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 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서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저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왕하
여기에서 우리는 독이 들어간 국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야채덩굴에 독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버섯을 생각나게 하는데 우리는 들에 있는 버섯을 보고 독버섯인지 여부를 확실히 분별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들 외는 들 포도가 아닌 신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독이 있는 식물입니다. 그것은 아마 야생의 포도넝쿨이나 들 포도나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참 포도나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있었으며 또한 그들은 기독교의 이름으로 많은 잘못된 것을 전파하였습니다. 다시 주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음식이 준비되어 퍼다가 선지자의 생도들에게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무리가 국을 먹다가 거의 공포에 질려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사람의 뜻이 사망을 초래한다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영생을 줄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자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그들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 엘리사와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운 가루
이제 우리는 선지자의 처방을 보게 됩니다. 열왕기하 4장41절에서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害毒)이 없어지니라.” 여기서 우리는 “해독(害毒)이 없어졌다”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필요한 기적이 하나님의 사람에 의하여 일어났습니다.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는 도전을 오늘날에도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들도 받게 될 것입니다.
길갈에 흉년이 들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가루는 그리스도를 말해줍니다. 소제는 고운 밀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리고 또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모든 소제는 기름을 붓고 소금을 치고 유향을 더하게 되어 있지만 누룩이나 꿀을 넣어서는 안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름답게 잘 묘사하고 있습니까! 예수는 볶아 찧어진 고운 가루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시고 조금의 흠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지만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첫 이삭이 볶아진 것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고통을 참으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버리신 것을 나타내 줍니다.
소제는 기름을 붓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기름은 그리스도께 넘친 성령님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하셨고 성령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으셨습니다.
소제에는 소금을 쳤습니다. 성경에서 소금을 친다는 것은 우리의 대화를 말해줍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이 사람같이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소제는 유향을 더하게 되어 있습니다. 유향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아마 유향은 향은 아니지만 향의 혼합물 같습니다. 유향은 그리스도의 비밀과 하나님과 사람에게 향하신 그분의 생활의 향기를 말해줍니다.
소제에는 누룩이나 꿀을 넣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죄를 상징하며 특별히 바리새인들의 가르침 같은 잘못된 가르침을 말해줍니다. 의심할 것 없이 엘리사는 고운 가루를 국에 들어간 독을 제거하기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꿀은 본성적인 즐거움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영적인 것보다 감정적인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성령님의 도움으로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소제는 화제(火祭)로 드려져야만 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죽음의 독이 제거되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은 희생을 당했을 것입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제사장은 소제물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를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자로서 주님의 말씀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생도들은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충만했던 하나님의 사람이 처방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사의 이와 같은 면은 주님에 대한 하나의 모형입니다.
(198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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